[보충수업 받는 학생의 일기]
“으악”
조용한 교실에 느닷없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애들이 뒤를 돌아보자 들리는 소리가,
“자다가 큰 개 세 마리가 자기한테 달려들었대! 푸하하.” 그 비명소리도 웃겼는데 개꿈 꾸다 나온 비명이라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선생님 오실까봐 걱정된 반장이 조용히 하자고 했지만, 웃음이 나오는 걸 어쩌랴. 나는, 지금 19살이다. 그리고 ‘고3’이다.
‘삐빅’거리는 알람소리에 짜증 한번 내주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8시에 시작되는 0교시는 항상 힘들다. 연필을 손에 쥐고 쥐도 새도 모르게 조는 내 짝꿍. 고개 들고 눈을 반쯤 감고 자는 우리 반 섹시걸(?). 앉아서도 누워서도 잘 자는 우리 반 잠순이는 졸 때마다 옆에서 꼬집어 팔에 멍이 여기저기 들었다. 항상 커피 한잔 마시고 세수 한번 더 하고 나서야 정신이 드는 것 같다. 분명 여름방학인데 달라진 건 없다. 해야 할 공부가 늘어났고, 수업대신 자습시간이 늘어났다는 거 빼고는…. 오늘은 아는 후배가 불만을 털어놓는다. “언니 보충수업이 왜 이렇게 강제적이야?” 자기 불만을 선생님한테 솔직히 말했다가는 학교에서 겨날 것 같아서 못 하겠다며 웃는다. 나는 해줄 말이 없었다. 보충수업 안 하면 담임선생님이 좋지 않게 생각하니까 했고, 친구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는 건 이상해서 말없이 해왔다. 언제부턴가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졌다.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들 예쁨도 많이 받는 내 친구는 답답하다고 자꾸 운다. 천원을 아까워하는 친구가 몇 만원짜리 변비약을 사놓고 돈 아까운 표정은커녕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는 내 친구에게 내 머리카락 좀 가져가랬더니 대학교 가면 안 빠진다며 걱정 말랜다. 밥만 먹으면 화장실에 가서 토하는 내 친구는 “내가 걱정하면 원래 그런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그냥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좀더 편하게, 좀더 자유롭게 하면 안 되는 걸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며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걸까.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스스로 결정하기보다는 누군가의 결정에 따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 우리에게 지금 자유가 주어지면 그건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른이 됐을 때는 좀더 편하게, 좀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학교였으면 좋겠다. 더 이상 대학이 탈출구 같은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종종 대학만 통과하면 될 것처럼 말한다. 어쩌면 시작일지도 모르는데. 매미가 또 울기 시작하면서 날 유혹한다. 어차피 지고 가야 할 짐이라면, 꼭 걸어야 할 길이라면 열심히 걸어보려고 한다. 현재에 대한 모든 생각과 판단을 잠시 유보한 채로 말이다.
전남 ㅅ고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