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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홍세화와함께하는예컨대 등록 2003.10.22(수) 제481호

[예컨대] 남의 ‘서리’ 도와주려 하는가/ 이선호

[홍세화와 함께하는 예컨대 | 파병과 국익]

이선호/ 인천고 2학년

옛말에 ‘과전에 불납리요 이하에 부정관’이란 말이 있다. 오이밭에선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자두나무 아래선 갓끈을 고쳐 매지 말란 뜻으로 공연히 의심받을 짓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의 파병 문제도 어찌 보면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나라로선 딱히 명분도 없는 ‘남의 밭’에 들어가서 미국의 ‘서리’를 도와주려는 격이다. 그 때문에 중동 국가뿐 아니라 파병을 반대하는 많은 국가들에게 침략전쟁을 돕는다는 눈총을 사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인데도 말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파병에 대해 찬반이 팽팽한 상태이다. 많은 국민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에서도 찬반의 근거는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찬성쪽도 ‘국익’, 반대쪽도 ‘국익’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그토록 국익을 추구하며 남의 ‘서리’를 도와준 대가가 궁금하다. 우리가 1차로 파병한 비전투부대 서희·제마부대에는 연간 564억원가량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파병하고 나서 얻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후 복구사업에 선정된 기업은 거의 100% 미국 국적의 기업들이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자국은 둘째치더라도 영국 같은 국가들은 전투병을 수만씩 파병했는데 비전투병을 조금 파병한 우리나라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오길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또 다른 이유로 북핵 문제를 들고 나오는데 이 또한 설득력이 부족한 주장이다. 우리가 파병을 거부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미군이 철수하고, 미국이 북한 핵을 빌미 삼아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갈 듯 말하는데 이것은 지나친 억측이다. 다수의 국민에게 파병을 안 하면 위기가 찾아온다는 식의 잘못된 언론 보도가 큰 몫을 한 듯싶다.

우리가 파병을 안 한다면 미국과의 무역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에게 지장이 있을 것이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국익도 국익이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이번엔 전투병을 파견 안 한다 해도 이것을 초석으로 제2, 제3의 미국의 전쟁에 수많은 전투병을 파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이 경제압박을 무기로 들고 나온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세계의 많고 많은 국가 중에 전투병을 파병한 나라는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덴마크 등 몇몇 국가뿐이다. 미국의 경제에 의존하는 국가가 어디 이들 국가뿐이겠는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도 노(No)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왜 내키지 않는 전쟁에 참가 요청을 노라 할 수 없는지 안타깝다.

우리는 강대국의 사이에서 철저한 자기 목소리를 낸 스위스의 역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땅도 크지 않고 인구는 남한의 5분의 1 정도인 이 작은 나라가 중세와 근대, 현대에 어떻게 중립을 지켜왔는가는 스위스의 정신에서 볼 수 있다. 스위스는 딱 한번 침략전쟁을 시도해 실패했고, 그 뒤로는 어떠한 침략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또 스스로 침략당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의 강국 사이에서도 목소리를 내가며 외교를 펼쳤고 국가 일에 어떠한 타국의 간섭을 배제하면서 중립국으로서의 위상을 세웠다. 그 모두가 스스로가 독립을 쟁취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의 힘을 빌려 일제에서 독립한 현실 자체가 우리를 미국에 구속받게 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젠 그 역사적 잔재를 탈피하여 비록 상대가 강대국일지라도 떳떳이 목소리를 내는 국가가 되어야만 한다.

우리도 우리나라의 일에 다른 국가들이 병사를 파견해 우리 땅을 쑥대밭으로 만든 일을 겪었다. 바로 청일전쟁이다. 일본과 청나라는 서로 텐진조약을 맺고 당사국의 의견도 묻지 않고 마음대로 파병 조항을 만들었다. 일본과 청은 파병을 구실로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지금 미국이 이라크에 맘대로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우리 근현대사의 뼈아픈 일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여기서 파병을 결의하는 것은 결국 미국의 전리품을 나눠가지겠다는, 옛날의 청과 일본을 본받겠단 소리일 뿐이다.

파병은 오늘날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도움으로 독립할 때부터 이어져온 상하적 대미관계의 연장선이다. 항상 우방이란 말로 부당한 전쟁에 참여할 수는 없다. 이는 우리가 우방임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종속국임을 알리는 것일 뿐이다. 우리도 이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국제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라면 그들의 잘못됨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반대의사는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칭찬과 아쉬움 ]

뿌듯한 한주였다. 지난주와 달리 이번주에는 수준 높은 글들이 넘쳐났다. 수원 영덕고 허혁, 예산고 이찬우, 전주고 이우용, 서울 보문고 유성민, 인하대 부속고 전해준 등 여러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다른 때 같으면 충분히 예컨대 글로 뽑힐 만한 글을 써보냈으나 경쟁이 치열한 탓에 아쉽게 탈락한 학생들이다. 앞으로도 꾸준한 참여를 부탁드린다.

비록 정부가 추가 파병 결정을 내렸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반전’ 여론이 우세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파병에 반대하는 논지를 펼치며 파병론자들의 주장인 ‘국익’ 논리를 비판했다. 파병이 장기적 관점에서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파병 비용 또한 주요 반대 논거였다. 다만 탄탄한 논리에 비해 자신만의 사고를 보여준 글이 드물었다는 점이 아쉽다.

그런 면에서 이번주 ‘예컨대’에는 인상적인 비유로 파병 반대 논리를 펼친 인천고 이선호 학생의 글을 뽑았다. 이선호 학생의 글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석유 ‘서리’에 비유하며 시작한 첫 단락부터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울며 겨자 먹기식’ 파병을 서리꾼 근처에 얼씬거리다가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적절하고 통쾌한 비유였다. 이처럼 사회적 사건을 일상생활에 빗대면 훨씬 현실감도 살아나고, 확실한 논리도 세울 수 있다.

이어 이선호 학생은 이라크 파병 이후 벌어진 일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과대포장된 국익론을 비판했다. 우선 실제 1차 파병을 통해 별다른 국익을 얻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추가 파병을 하지 않으면 마치 한-미 관계와 북핵 문제에 결정적 타격이 생길 것처럼 떠드는 것도 ‘부풀리기’라고 비판했다. 현실을 뒤집어서 생각하면서도 논리적 설득력을 잃지 않는 균형감각이 돋보였다. 파병 문제를 ‘이라크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논리를 청일전쟁 당시 우리의 처지에 빗댄 역지사지 단락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신문 등에 실린 기존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른 글에 비해 ‘자신의 사고’로 글을 써내려간 흔적이 역력했다.

수원 영덕고 허혁 학생도 한국인의 관점이 아니라 이라크인의 입장에서 ‘국익’ 문제를 생각해보자고 제안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라크인에게 파병은 주권 침해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인하대 부속고 전해준 학생은 오직 미국과 관계만을 변수로 놓고 파병 문제를 생각하는 태도를 비판했다. 파병 문제를 한-미 관계를 넘어 국제관계의 틀로 넓혀본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한-미 관계만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오히려 국가신용도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한 부분 등은 현실감이 떨어져 보였다. 오히려 국가신용도 하락보다 더 큰 측면에서 ‘도덕성 훼손’이 가져올 국가 위상 추락을 언급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정신여고 김지현 학생 등은 경제적 실리와 한-미 관계 등을 고려해 파병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기존의 파병 반대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학생들의 뜨거운 반전 열기에도 아랑곳없이 추가 파병이 서둘러 결정된 점은 더욱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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