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오지혜 칼럼 목록 > 칼럼내용   2005년11월02일 제583호
[이은미] 문화혁명을 노래하는 잔다르크

‘문화예술회관’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문광부를 쳐들어갔던 가수 이은미
“립싱크 가수는 가수 아니다”라는 말로 실망을 줬던 그녀와의 오해를 풀다

난 그녀가 좋았다.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노래야 뭐 설명할 것 없이 여전히 좋았고 라이브의 무대가 많아질수록 디바로서의 매력은 더해만 갔다. 하지만 ‘아티스트’로서도 좋아하던 맘이 어떤 계기로 인해 크게 한풀 꺾였던 적이 있었다. 뮤지컬은 연극이 아니라는 아버지 말씀에 대들다가 집에서 쫓겨날 뻔한 적도 있었을 정도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심지어 그것을 남에게도 강요하는 아티스트는 이미 진정한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것이 내 예술관이다. 한데 어느 날 내가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라고 믿었던 이은미 그녀가 TV 인터뷰에서 “립싱크하는 가수는 가수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은미씨, 왜 그러셨어요?

인생엔 여러 가지가 있듯이 우리에겐 디바도 필요하지만 군바리들에겐 노래 따윈 중요치 않은 가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은미 ‘씩이나’ 되는 가수면 굳이 저런 말은 안 해도 되는 거 아닌가? 저런 얘긴 다른 사람이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적잖이 실망했던 터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서로 싸운 사이도 아니고 오로지 팬으로서 나 혼자 좋아했다가 실망한 거면서도 화해(?)의 절실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런 말은 팬들이 해줄 테니 당신은 그냥 무대 위의 디바로 남아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내게 화해의 기회가 왔다. 그녀의 이번 새 앨범에 리드멘트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 것이다. 짧은 멘트였지만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즐겁게 녹음을 한 뒤 기회는 찬스다 하고 인터뷰를 부탁했다.

조용하기만 했던 학창시절과 디스크 환자로 몇 년을 누워 보냈던 이십대 초반, 그리고 그저 음악이 좋아 음악하는 친구를 따라갔던 카페에서 영업 뒤 장난스레 부르던 노래 때문에 우연히 가수가 된 사연들을 들었다. 그 누군가를 키운 팔할이 바람이었다면 그녀를 키운 팔할은 좋은 선배들이었다 싶을 정도로 이름만 들으면 진짜 쟁이다 할 음악인들이 모두 그의 스승이자 선배였다. 노사모 회원이 됐던 이유는 이 썩은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들어줄 사람’인 거 같아서였다는 얘기도 들었다. 무대 위의 열정은 다른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정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확인 또 확인할 수 있었을 정도로 그녀는 이 세상이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데에 너무도 순진하게 그러나 무섭게 화를 내고 있었다.


△ 오지혜씨(왼쪽)는 이은미씨에게 실망했노라고 고백했고, 이씨는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

이쯤에서 난 고백을 했다. 좋아했다가 실망했었단 고백을, 그리고 왜 그랬냐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단호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철학을 조목조목 설명해줬다. “얼굴과 몸매로 승부하는 가수도 필요하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너무 심하게 편중되어 있는 게 문제다. 음반 녹음할 때 딱 한 번 노래해보고 평생 그 노랠 직접 부를 기회를 갖지 않는 걸 어떻게 ‘가수’(사전: 노래하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필자)라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하도 떠들고 다니니까 방송국에서 나를 보는 ‘붕어’들은 쪽팔려서 90도 각도로 인사하고 도망가기 바쁘다.” 난 반론을 제기했다. 자본의 논리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대중이 그런 가수를 원하는데 그럼 어떡하냐고. 그녀는 “그래도 가수는 노래를 하는 걸 가수라고 하는 거다”라고 대답했다. 마치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외치는 갈릴레이를 보는 것 같았다.

한데 계속 ‘화해’를 시도하다 보니 오해가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도 당신은 노랠 잘하니까 그런 얘길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물으니 예전에 그렇게 대드는 후배의 따귀도 때린 적이 있다면서 펄쩍 뛴다. “노랠 ‘잘’하라는 게 아니다. 어떤 노래가 잘하는 노래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언제 나처럼 노랠 잘해야 진짜고 못하면 가짜라고 했는가? 노래 스타일엔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춤을 추든지 성형을 하고 광고에 나오는 표정을 짓든지 간에 일단 무대 위에 섰으면 직.접.노.랠.부.르.라.는 얘기다. 그게 뭐가 어렵나? 그냥 ‘열심히’ 부르면 되는 거고 그게 가수의 기본 아닌가?” 그랬다. 난 오해를 했던 거다. 난 그녀가 일종의 ‘잘난 척’을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외모로만 연예인을 판단하는 것을 ‘안 예쁜 여가수’로서 시샘하는 줄 알았다. 이은미를 잘못 봤어도 한참 잘못 본 거였다. 사람은 모든 걸 자기 기준으로만 재단한다더니 내가 그랬다. 내가 ‘연기도 못하면서 얼굴만 이쁜 것들이…’ 하는 못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녀도 그런 줄 알았다. 그녀의 아티스트로서의 자질과 순수성을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오해했던 것이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가 악을 써대며 주장하는 것들은 그런 게 아니었다. 못하든 잘하든 제발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사기치지 말자는 거였다.

오해가 풀리는 건 당연하고 팬들이 왜 그녀를 좋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존경’까지 하는지를 알게 됐다. “적이 많으시겠어요” 하니 “당연하죠”라는 대답이 오버랩으로 날아온다. 반면 자신을 끔찍이 아껴주는 음악인들과 팬들도 많기 때문에 그 힘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렇게 적을 스스로 생산하며 가는 곳마다 ‘붕어’들을 혼내키는 삶이 피곤할 법도 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닐까요” 하고 물으니 “그래도 바위에 계란 물이라도 묻잖아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자긴 여전히 무대 위의 가수로서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잃게 되는 날은 가수를 그만두는 날이 될 거라고 했다.

계란으로 바위에 물을 묻히더라도…


△ (사진/ 류우종 기자)

방송국 ‘윗선’들에게도 주먹질을 해댔다. 언제까지 그렇게 대중에게 질질 끌려다니기만 할 거냐, 그게 지식인이 할 일이냐, 창피하지 않은가라고…. 아, 멋지다! 얼마 전 문광부 장관이 주는 젊은 예술가 상을 받은 사연도 그녀다웠다. 전국에 있는 ‘문화예술회관’들이 권위적이고 행정 위주로 운영돼서 그 지역 출신의 이름 모를 바이올린 연주자에겐 대관을 해도 ‘딴따라’에겐 너무도 인색한 관행에 대해 문광부에 직접 ‘쳐들어가’서 따졌단다. 정책 과시용 건물은 이제 제발 그만 지어라, 큰 극장 하나 지을 돈으로 작은 극장 여러 개를 지어달라, 한꺼번에 수천 명을 매회 채울 가수는 우리나라에 서너 명밖에 안 된다. 그럼 그 밖의 가수들은 어디 가서 노랠 하란 말인가, 지방 사람들에게도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문화혁명 아니겠느냐고, 왜 이 좋은 극장들의 빗장들은 이리도 쓸데없이 무겁냐고….

그녀는 내달부터 6개월 동안 전국의 ‘문예회관’ 투어 공연을 한다. 내가 박수를 치니까 “지혜씨, 거봐요. 계란으로 바윌 쳤는데 이렇게 됐어요. 우린 자꾸 외쳐야 해요”라며 쑥스럽게 그러나 뿌듯하게 웃었다. 지난 공연 땐 그녀가 문화혁명이라고 쓴 깃발을 높이 쳐들고 있고 그 뒤를 군중이 따르는 그림이 포스터로 그려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팬들이 맞춰입은 티셔츠엔 ‘문화혁명’이라고 쓰여 있었단다. 그랬다. 그녀의 전생이 잔다르크였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훗날 그녀의 혁명이 성공하는 날이 왔을 때 부끄럽지 않게 나도 오늘부터 계란 몇 개씩을 좀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잔다르크와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