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혜가 만난 딴따라]
‘최민식의 동생’이라는 부담감을 훌훌 날려버린 한때 최고의 앨런
60: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빨간 도깨비>에서의 활약을 기대한다
▣ 오지혜/ 영화배우
내가 그를 사적으로, 아니 공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단둘이 만난 건 처음이었다. 그가 선택한 장소는 나 역시 대학로에서 연극하던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던 카페 ‘학림’이었다. 백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것 같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장님은 나 대신 늙은 모습으로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백년 전에도 그 카페 바로 그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을 법한 모습으로 최광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늦은 건 아니다. 일찍 오는 인터뷰어보다 더 일찍 오는 성실한 인터뷰이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최광일의 정체성을 잘 설명해준다.)
최민식이 아닌 송영창에 필 꽂히다
경력 15년차인 그의 연기를 처음 본 것은 정말 미안하게도 5년 전 <에쿠우스>를 보러 가서였다. 그런데 역대 앨런 중 가장 앨런 같은 모습으로 열연한 무대 위의 그의 모습은 내게 좀처럼 잊기 힘든 매력 있는 배우로 다가왔다. <에쿠우스>는 자기가 사랑하는 말들의 눈을 쇠꼬챙이로 찔러 죽인 뒤 정신치료를 받는 한없이 불안한 영혼을 가진 열일곱의 앨런을 위한 연극이다. 주인공이 바뀔 때마다 최고의 앨런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공연이지만 내가 보기엔 작고 마른 몸에 동안인 외모로 보나 정확하고도 힘있는 연기력으로 보나 그가 최고의 앨런이라고 생각된다. 이 역할을 거쳐간 당대 최고 배우인 강태기, 송승헌, 조재현보다도 난 그의 앨런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역시 그가 더 멋진 앨런이었다고 생각하게 하는 선배 앨런 중엔 그의 친형인 배우 최민식이 있었다. 그랬다. 그는 세계가 인정한 배우 최민식의 동생인 것이다.

△ 형 얘기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듯 되레 담담해하는 배우 최광일. 쉬지 않고 관객과의 짜릿한 소통을 이어온 15년의 연기 생활에 그 이유가 있다. (사진/ 윤운식 기자)
|
누구누구의 동생. 이런 수식어만큼 프로 딴따라를 김빠지게 하는 표현이 또 어디 있을까. 나 또한 너무도 유명한 배우를 부모로 뒀기에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내 이름 앞엔 ‘누구누구의 딸’이 항상 딸려 나온다. 그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가 원한다면 형 얘긴 한마디도 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형제끼리 수박 장사하는 거랑 다를 거 없는 거 아니냐면서 형 얘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며 되레 담담해했다. 부모님 이름표를 떼고 그저 ‘배우 오지혜’로 찾아주길 원하는 건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진리를 긴 가슴앓이를 지나 한참이나 늦게 깨달았던 나에 비해 그는 그런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뛰어넘은 듯했다. 가족 중에 비교대상이 되는 딴따라가 있다는 건 부모보다 형제의 경우가 더 힘들었을 텐데도 말이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냐고 물었다. 15년 전 처음 연극을 시작했을 땐 솔직히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힘든 것이 자존심과 관련이 있었다기보다 심할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 탓에 그저 쑥스러워서였다고 하니 내심 놀랍다. 한데 연극을 시작한 동기를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삐리 시절 형이 연극을 한다고 보러 오라 해서 별 생각 없이 대학로를 찾았다. 형은 현대사의 비극인 의문사를 다룬 연극에서 운동권 학생을 연기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그 연극의 어머니로 나온 사람은 나의 어머니였다. 그때 그와 나는 객석에서 각자 자신의 어머니와 형의 연기를 보고 있었던 거다.) ‘평범했던 고삐리가 천재적인 형의 연기를 보고 머리에 번개를 맞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형의 뒤를 이어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뭐 이런 이야기가 전개될 줄 알았다. 그때 그 공연을 본 것이 ‘번개’를 맞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게 ‘번개’를 내려준 배우는 형이 아니라 냉철한 검사로 나왔던 송영창이었다는 거다.
왜 이름을 세번이나 바꾸었나
너무 뜻밖이었고 당혹스럽기까지 한 그의 고백을 듣고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꺾어가며 웃어댔다. 최민식이나 송영창이나 명배우이긴 마찬가지지만 그를 배우로 만든 것이 친형이 아닌 다른 배우였다는 사실이 왜 그리도 나를 통쾌하게 했을까. 그때의 내 감정을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참 재밌는 해석이 나올 거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기사화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어디선가 한번 기사화가 이미 됐고 형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다. 형의 반응은? “네가 뭐 그렇지 자식아” 하면서 씩 웃고 말더란다. 얼굴도 안 닮았고 이름도 돌림자를 쓰지 않아서 진짜(?) 친형제가 맞나 의심스러웠는데 어떤 일에도 시큰둥할 거 같은 그 쿨함이 그들이 형제임을 말해주는 거 같았다.
남자 형제만 넷이라고 한다. 또 재밌는 건 첫째 형님과 막내는 그림을 그리고 둘째 민식과 셋째 광일은 배우라는 거다. 경찰 아버지에 여장부 어머니를 둔 그들 형제는 굿을 좋아하는 어머니 덕에 일찍부터 샤머니즘의 기를 받아 다들 ‘쟁이’가 된 거 같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름이 세 번째 바뀐 건데 그것도 형은 잘나가는 데 비해 자신이 오랫동안 무명으로 있는 것이 마음 쓰인 어머니의 굿 정성 덕이란다. 지금보다도 무명이던 시절. 어린 나이에 장가를 가서 스물다섯에 아이 아버지가 된 그는 무대 위의 시간만큼 공사현장의 현장감독으로 지냈다고 한다. 오십보 백보인 동료 배우들에게 카드깡이 아닌 현금깡(?)을 해가며 근근이 살았던 시절 그의 어머님의 맘이 헤아려졌다. 형제가 같은 일을, 그것도 세인의 사랑을 먹고사는 딴따라를 하는 것은 그 부모에게도 힘든 일일 거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 강태기, 송승헌, 조재현 그리고 최민식, 당대의 스타들이 연극 <에쿠우스>를 거쳐갔지만 오지혜(왼쪽)씨를 사로잡은 이는 배우 최광일이었다. (사진/ 윤운식 기자)
|
하지만 그가 그렇게 담담할 수 있는 것은 배우가 여러 직업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대중적 인기보다는 관객과 소통하는 것에 연기의 의미를 두고 있기에 가능했다. 자신은 ‘직업’을 잃은 적이 한번도 없으며 비록 소수일지라도 짜릿한 소통을 계속해오고 있으므로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인 거다. 그가 출연한 독특한 영화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만 봐도 그가 이미 훌륭한 배우임을 알 수 있다. 제목만큼이나 엽기적인 그 영화의 파란만장한 남편 역은 최광일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그는 함께했던 공효진, 조은지와 함께 그 엉뚱하고도 파격적인 시나리오를 너무도 사랑스럽게 연기해냈다.
그런 그가 이번엔 96년 일본 초연 이후 세계 각국에서 번안, 공연되어 화제가 된 연극 <빨간 도깨비>에 출연한다. 이 연극은 <아사히신문>이 현대 사회의 통렬한 자화상이라고 호평한 노다 히데키의 작품인데,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정서에 맞게 각색한 뒤 현지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공연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선 이번이 초연이다. 한국 공연 역시 히데키가 직접 배우들을 오디션해서 뽑았는데 경쟁률이 무려 60:1이었다고 한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인 이 작품은 해안가에 표류한 한 남자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빨간 도깨비로 몰리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통해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배척이 빚어내는 비극을 우화적으로 풀어낸다고 한다.
일년 전. 나는 내게 연기를 배우는 청춘들에게 그가 출연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연극을 추천한 적이 있었다. 그의 연기는 이론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표본이 되기 때문이다. 한달 뒤면 난 내 제자 녀석들과 그의 공연장 객석에 앉아 있을 거다. 난 그의 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