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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 | 등록 2003.10.23(목) 제4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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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가만난딴따라] [박은옥] 왜 박은옥만 만났냐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해 노래하는 여가수… 정태춘이 보면 조금 기분나쁠 이야기를 나누다
박은옥을 만났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사람들은 “누구?” 한다. “정태춘, 박은옥의 그 박은옥” 해야 그제서야 사람들은 “아! 그 박은옥!” 한다. 그러고 또 내게 묻는다. “왜 박은옥만 만나?” 인터뷰 끝에 그녀도 섭섭함을 토로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듀엣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난 한번도 그들을 듀엣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각자 솔로가수이긴 하지만, 다만 박은옥은 노래만 부르고 정태춘은 노래까지 만들며 박은옥의 노래 대부분이 정태춘의 곡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들은 부부인데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음색 궁합이 잘 맞아서 가끔 듀엣곡을 불렀을 뿐이다. 음반을 함께 낸 건 항상 같은 음반사와 일했기 때문일 뿐이고.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반보 뒤’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정태춘 노래를 듣고 숙연해짐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나 역시 그의 노래는 김민기의 그것처럼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하는 내 얼굴을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다시 쳐다보게 하는, 무서운 힘을 가진 ‘정신’이었다. 하지만 투사가 노랠 하는 건지 가수가 투쟁을 하는 건지 헛갈리는 그에게서 받는 감동 못지않게 가짓수는 부족하지만 <봉선화> <회상> 등의 노래로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던 박은옥의 노래 역시 내겐 ‘정신’이었다. 한데 어찌된 일인지 매스컴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반보 뒤’였고 인터뷰 속 그녀의 얘긴 정태춘에게 온갖 존경과 찬사를 마친 뒤 부록처럼 간결하게 다뤄질 뿐이었다. 자신은 그저 ‘그’의 ‘반보 뒤’가 편할 뿐이라면서 첫 만남 같지 않게 서로에게 친숙함을 느낀 여가수와 여배우의 대화는 시작됐다. 20년 골든앨범에 수록할 곡들을 고르던 중 그녀는 감히 흉내낼 수조차 없는 예술가로서 남편의 능력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모차르트를 보는 살리에리 같은 심정이었지만 한편으론 그런 사람의 곡을 받을 수 있고 함께 노래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으로선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을 것 같단다. 이유는 외로움을 느낄 정도로 무뚝뚝한 그의 성격 때문이라고. 세상을 향해선 소리 높여 외치면서 아내를 향해선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는 도를 지나친 그의 무던함에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결혼이 지독히도 안 어울리는 그에게 왜 결혼했느냐 물었고, 그는 아주 담담히 “상대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잔소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난 그 가장 큰 선물을 당신에게 줬을 뿐이다”라고 하더란다. 거대한 가인의 거대한 결혼관이다. 정태춘의 노래 중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노래가 많다. 특히 맞벌이 영세부부가 일 나간 사이 불이 나 어린 남매가 밖으로 잠긴 문을 열지 못해 타죽은 사건을 노래로 만든 <우리들의 죽음> 같은 노래는 도저히 끝까지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의 그런 노래들은 사람들더러 즐기라는 건지 열 받고 절망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불편하게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너흰 금방 잊어버리잖아”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이 세상 모든 투사들이 누구누구처럼 변질된다 해도 끝까지 투사로 남을 것 같은 사람 정태춘. 그리고 그의 아내 박은옥. ‘투사’의 아내로 사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 물었다. 다소 불편한 건 있지만 불만은 없다, 오히려 남편이 존경스럽단다. 그러다 이내 장난스레 푹 웃는다. 까닭을 물으니 집안에선 별로 민주적이지 못한 남편이라고 한다. 자기 딴에는 가사노동을 분담한다고 하고 있으나 ‘남자로 누리는 삶’을 교육받아온 한계가 없지 않다는 거다. 그리고 자신 역시 ‘알아서 기는 여자’로 교육받아온 것이 없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살림에 대해 뭐라고 잔소리하는 법도 없고 자신의 일은 다 알아서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가수의 길을 걷는 아내 박은옥과 비교했을 때 그의 가사노동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다. 그래서 그녀는 가끔 “언행일치를 해라”고 농을 한다고 한다.
“젊을 때 좀더 치열했더라면…”
게다가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한다고 말하는 자신을 향해 “위로는 무슨 놈의 위로, 세상을 바꿔야지”라고 타박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박은옥, 그녀 자신은 지금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래를 하는 건 그저 그 사람의 몫일 뿐, 자신은 그런 남편을 믿어주고 바라봐주는 동료이며 앞으로도 전체가 아닌 개인의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노래를 할 거란다. 어느 인터뷰에서 정태춘은 “노래가 현실을 피해간다면 그건 그저 레크레이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데 그는 언제나 아내 박은옥에게 ‘현실을 피해가는 노래’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전혀 레크레이션 같지 않다. 정태춘은 말은 그렇게 해도 이 세상엔 개인을 위로하는 딴따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것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게 일상이듯이 노래가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 역시 세상을 바꾸는 일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제일 고민되는 것이 뭔지 물었다. 2년 동안 심적 슬럼프에 빠져 있는 남편을 바라보는 거란다. 내가 남편 얘길 많이 물어보긴 했지만 그녀는 마치 정태춘 대변인인 것처럼 모든 얘길 그와 결부해서 대답했다. 마치 자신은 정말 아무런 ‘스토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듯이. 다시 물었다. 박은옥 자신의 고민을 말이다. “내 개인적인 고민이라…” 잠시 낮은 한숨을 쉰 뒤 그녀는 말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또다시 음악인으로 태어나서 치열하게 음악만 해보고 싶다. 왜 젊었을 때 좀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다 내 잘못이다. 아무도 방해한 사람 없고 붙잡은 사람 없었다. 그저 내가 스스로 더 이상 나가지 않았을 뿐이다. 일보다 가정을 택한 것도 다 내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하니 후회된다. 다시 태어난다면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그저 미친 듯이 음악만 하고 싶다. 정태춘씨가 그런 것처럼.”
‘까미유 끌로델’을 떠올리다
자신도 훌륭한 예술가였지만 더 훌륭한 예술가와 사랑에 빠져 그저 평생을 그 남자의 그늘에 가리워져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사라져간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생각났다. 까미유 끌로델 같은 여자 말이다. 박은옥 부부가 먹고 살 일이 난감해졌을 때 정태춘씨는 그저 세상을 어떻게 해야 구원하는지에 대한 고뇌만 하였고 이곳저곳의 밤무대를 보따리 장사하듯 뛰어다니며 노래품을 파는 건 박은옥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태춘은 남의 노래도 할 줄 모르고 팝송은 더더군다나 할 줄 모르니 방송이건 밤무대건 환영받는 가수가 아니었다. 정태춘 없는 박은옥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박은옥 없는 정태춘 역시 상상할 수 없음이다. 인터뷰 끝에 그는 요즘 회자되는 무속인에 대한 다큐영화 <영매> 얘길 했다. 연신 웃다가 울다가 하며 봤다고 참 좋았다는 거다. 죽은 가족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굿을 한다지만 굿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아 있는 자들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벌이는 것이고, 무당은 그 중재자인 것이다. 노래로 상처를 위로해주는 그녀 역시 훌륭한 무당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당골들의 삶이 가깝게 느껴졌을 거다. 난 그녀가 앞으로 더 많은 ‘굿’을 했으면 좋겠다. 혁명?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는 세상이 진정한 유토피아가 아닐까?
오지혜 |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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