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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 | 등록 2003.03.26(수) 제45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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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가 만난 딴따?><input type=button name=subj_lst value= [배칠수] “멋지다 육두문자!” 배칠수 아니 이형민, 그의 구라 뒤에 숨은 ‘소프트웨어’에 반하다
난 그가 배칠수라는 이름말고 어엿한 본명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본명이 ‘이형민’이라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느 누구도 그를 본명으로 부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배칠수’의 아우라는 강력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는 아주 야무지고 단단한 사람이다. 외모부터가 그랬다. 화면으로만 봤을 땐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까 내가 운동선수를 인터뷰하러 온 건가 헛갈릴 정도로 큰 키에 울트라맨 같은 근육질의 남자였다. 나이도 생각보다 많았고(90학번이다) 수영선수인 아내와 결혼해 돌쟁이 딸도 있는 멀쩡한(?) 30대 아저씨였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정력과 끼
깍듯이 예의를 갖추면서도 이런 인터뷰는 한 100만번쯤 해봤다는 듯 준비된 답변을 척척 내놓는데 자기 소신이 아주 분명하고 말이 굉장히 빨랐다. 방송에서처럼 우스갯소리를 툭툭 던져가며 자기 얘길 했지만 그의 히스토리는 결코 웃기지 않았다. 너무 진지하고 아주 치열했다. 2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어머님은 그를 낳고 얼마 안 가 돌아가셨다. 엄마 같은 누나들 손에서 자랐고 자신의 정력과 끼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이라고 했다. 그의 아버진 그를 나이 50에 낳았고 남의 목소리 흉내를 잘 내셔서 가끔 동네 사람들한테 장난도 치곤 하셨다. 어렸을 때 꿈을 물었다. 대통령이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또래 친구들이 그의 눈엔 철딱서니로 보였다. 늘 가난했던 그는 부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20대 때 가졌던 헬스클럽 사장 직함은 대학 때부터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어린이 체육교실 교사를 하면서 안 먹고 안 쓰고 악착같이 모은 돈에 매형으로부터 꾼 돈을 합쳐 이룩해낸 거였단다. 대학도 우유배달을 해서 마쳤고 헬스클럽 사장일 때도 장가갈 밑천은 자기가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물 아끼느라 페트병에다 물 받아 세수할 정도로 징그럽게 돈을 모았다. 매형 돈은 진작에 갚았고 인천에 작은 아파트까지 스스로 마련한 뒤 군대에 있을 때부터 사귀어온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와우! 이 얼마나 멋진 대한청년이란 말인가! ‘배칠수’가 된 사연도 치열했다. 난 원래 타고난 목소리와 말투가 배철수씨랑 똑같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자연인 이형민의 목소리는 배철수도 아니고 최양락도 아니었다). 개그맨이 꿈이 되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철수 목소리 흉내를 그야말로 피나게 연습한 끝에 오늘날의 영광()이 있었다는 거다. 그는 왜 유독 성대모사에 목숨을 걸었을까 앵무새가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건 ‘놀이’가 아니다. 곤충이 보호색을 갖는 것처럼 자기를 공격할지 모르는 강한 상대 앞에서 공격의사가 없다는 걸 알리기 위한 일종의 ‘자기 방어’ 수단이다. 자기 표현은 곧 자기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한 자기 방어이기도 하다. 결핍 덕택에 일찍 철이 들어버린 그는 스스로도 감탄할 정도의 재주인 자신의 ‘구라’를 듣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개그맨의 꿈을 키웠고, 몸으로 표정으로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엔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치열하게 성대모사를 연습했던 거다.
‘진짜’ 배철수의 잔소리
처음으로 ‘진짜’ 배철수와 만났을 때 처음엔 시큰둥하던 배철수씨가 정말 자기와 목소리가 너무나 똑같은 그에게 결국 마음을 열고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는 얘기도 재미있었다. 오히려 요즘엔 너무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하느라 정작 자기 흉내가 좀 약해졌다고 좀더 분발하라고 잔소리를 한단다. 배철수 흉내가 약해진 건 모르겠지만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의 성대모사의 한계는 어디인지 궁금할 정도다(차범근 흉내도 끝내준다). 그러나 목소리 재주보다 나로 하여금 그를 찾게 만든 건 그의 신랄한 시사멘트였다. 작가가 써준 대로 읽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의 세계관이 궁금했다. 자신은 아는 건 많은데 깊이 아는 건 하나도 없다고 겸손을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세계관을 키워줄 이른바 운동권 친구도 그의 곁엔 없고 즐겨 읽는 책은 소설책이며 체대를 나와 보디빌더를 했던, 누구 말마따나 ‘육체의 길’을 걸어온 그였다. 먹물()들이 고민만 하고 있을 때, 세상의 ‘진실’은 이런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에게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가 닿는 것 같다. 돈 주고 보는 신문은 <한겨레>밖에 없다고 해서 이유를 물었다. 다른 신문들, 특히 조중동은 굳이 돈 내고 보지 않아도 발에 차일 정도로 굴러다니기 때문이란다. 자긴 방송인이기 때문에 신문을 닥치는 대로 읽는데 바보가 아니고서야 조중동이 한심하다는 걸 모를 수는 없단다. 그의 얘긴 이렇다. “물론 어떤 신문도 시각의 절대 균형을 가질 순 없다. <한겨레>도 어느 정도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계관의 편향일 뿐인데 조중동은 그 편향의 방향이 ‘자사 이익’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읽기가 짜증이 난다”는 거다. 그리고 덧붙여 “특히 이번 이창동 장관 죽이기는 유치해서 눈 뜨고 못 봐주겠다”고 하는데 그의 멋진 ‘구라’에 반해 입이 쩍 벌어졌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그 ‘구라’ 뒤에 있는 그의 ‘소프트웨어’에 반했다고 해야 옳다. 요즘 공중파 방송에서 김학도와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를 들었다. 잘하긴 하지만 그의 매력은 우리 정부에 억지로 ‘자전거’를 팔아먹은 부시에게 신나게 육두문자를 날려가며 욕을 하는 인터넷 방송에서 더 빛이 난다. 공중파와 인터넷의 장단점을 물었다. 공중파는 돈을 많이 줘서 좋고 인터넷은 95% ‘아군’이어서 좋단다. 순전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도 모두가 박수 쳐주는 것만큼 딴따라한테 신나는 일이 어디 있을까 그가 부러웠다. 이번 대선 때는 “너무 노무현 후보 편만 드는 것 아니냐. 아무리 공중파가 아니라지만 그래도 수많은 사람이 듣는 방송의 디제이인데 너무 편향된 거 아니냐”는 의견들이 게시판에 올라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은 죄송하나 진심이었다”고 답했다. 사막 한가운데 떨어뜨려놔도 살아나올 사람 같다니까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단다.
무서운 건 돈, 행복한 건 딸
노 대통령에게 바라는 건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거 일단 그냥 자기 소신대로 밀어붙였으면 좋겠다는 거란다. 너무 ‘단순 무식 과격’한 거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그런 그의 솔직함이 예뻐 보였다. 그를 만난 날은 부시가 이라크에 기어코 불화살을 날린 날이었다. 부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개OO죠.” 그의 육두문자를 ‘라이브’로 들으니 맘 한구석이 조금은 시원해진다. 세상 돌아가는 게 그의 씩씩한 목소리와 말투처럼 간단명료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일 무서운 건 돈이고 제일 행복한 건 딸 솔이라고 하면서 총총히 다음 스케줄 장소로 가는 그의 모습이 그의 두껍고 단단한 팔뚝만큼이나 야물딱져 보였다. 그를 만나고 왔다니까 한 후배가 여러 사람을 동시에 만나고 온 거 같지 않냐고 농을 한다. 그러나 난 딱 한 사람 ‘이형민’만을 만나고 왔을 뿐이다. 영화배우 오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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