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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씻으며 상품 만든다 계급 문화 상징하는 코드로 자리 잡은 목욕의 사회학… 몸의 가치를 화폐가치로 맞교환하려고 상상력 동원
사람은 청결을 위해 몸을 씻는다. 밖에 나갔다 오면, 바깥이 집 안보다 더러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손발을 깨끗이 씻는다. 육체 노동을 끝내고 나면 온몸의 먼지를 털어내려고 온몸을 씻는다. 이렇듯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씻는 행위를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온몸을 씻어내는 목욕이 우리에게 그렇게 매일 해야 하는 일이 된 것은 최근이다. 물론 조선 시대에도 몸을 정갈하게 하기 위해 사대부 또는 권문세가의 큰 집에는 정방이라 하여 목욕 시설을 갖춘 별채를 두고 있기도 하였다. 정방에서 흔하게 사용되었던 목욕법은 난탕, 청포탕, 복숭아잎탕 등으로 단순하게 몸을 깨끗이 씻는 일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의 목욕 시설처럼 개인의 집 안에 몸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는 것은 확실히 청결 문제가 계급 문제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목욕을 다반사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에서 사회 내 계급간의 갈등을 은유적으로 말하는 경우로 꼽히기도 한다. 로마제국이 목욕에 집착해 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다는 과장된 상식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우리는 청결만을 위해 몸을 씻지 않는다
이라크 침공전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물이 귀해 더러운 웅덩이에 모여들어 식수로 사용할 물을 퍼 담아 가는 이라크 주민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종군기자의 기사에서 배급된 물이 부족해 겨우 고양이 세수나 찔끔하고 하루를 버텨야 하는 고단한 생활을 묘사한 대목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기자의 작은 소망은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목욕을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전쟁이라는 특수하고도 처절한 상황에서까지 몸을 씻기 위해 물은 필요하다. 그리고 목욕은 하나의 그리움처럼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우리 몸을 자극한다. 여기서 우리는 목욕의 의미가 갖는 실체를 곁눈질로 알 수 있다. 목욕을 하고 싶을 때 언제나 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 계급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코드에 다름 아니다. 당연히 엄청난 물을 이용하여 온몸을 적셔가며 하는 목욕 방법은 이 계급간의 차이를 강화한다.
계급의 차별성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
로마 시대에는 목욕탕(대목욕탕으로 지금의 대중탕처럼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용하는)에서 정치·사회의 중요한 화제를 이야기하고 의논하기도 하면서 기꺼이 귀족 계급이 향락을 즐겼다고 한다. 그들은 열탕, 미지근한 온탕, 냉탕, 그리고 건조한 공기에 피부를 자극케 하는 지금의 사우나 같은 건욕법까지 하나의 목욕탕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한 부분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목욕탕은 로마 안에서도 여럿이 있었지만 그들이 침략하고 지배했던 지역마다 가장 웅장한 자태로 건설되었다(우리가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할 때 볼 수 있는 로마 유적의 상당 부분이 이 대중탕의 흔적들이다). 지금도 이런 목욕의 사치는 엇비슷해 사우나에서(물론 사우나 방식이 보다 대중적인 위치까지 보급되었지만) 시간을 보내며 비슷한 부류의 모임을 여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떤 거래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지는 알 바 아니다. 시간이 지나서도 이 유사한 목욕 방식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계급간의 동질성 때문이다. 그들은 용도보다 넓은 장소와 많은 양의 물을 소비하면서(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긴 시간을 그렇게 쓰면서) 일체감을 형성하고 유대감을 의식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목욕 방식은 대체로 샤워기에 일렬로 서서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몸의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다. 그들은 효용성 높은 공간에서 절약 정신을 일깨우며 물을 사용한다. 한 부류는 목욕을 통해 사회 속의 몸의 위치를 확인하고, 또 한 부류는 몸속의 피로를 푼다. 목욕을 통해 한 부류는 엄청난 물을 이용해 늘어진 시간을 메우고, 다른 부류는 엄청난 먼지를 나른한 몸에서 떼어낸다. 우리 시대의 목욕탕은 두 계급이 만나지 못하도록 나뉘어 있다.
아름다운 몸을 위한 과도한 상상력
이섭 ㅣ 전시기획자·아트컨설팅서울 큐레이터 soplee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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