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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에 의한, 모델을 위한 [모델] 가상세계를 지배하는 환각적 아이콘… 초라한 일상에 침투해 감각 마비시켜
신문이나 잡지에서 흔하게 접하는 단어가 ‘모델’이다. 어떤 자동차 업체가 새 차를 발표할 때, 차의 모델은 어떻다고 설명하고, 가십난에 나올 뻔한 이야기 속에는 간혹 누드모델이 등장한다. 영화나 패션을 다루는 기사 안에서 모델은 무척 자연스러운 직업이면서 말 그대로 모델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대화 중에 흔히 사용하는 ‘모델’이라는 말은 ‘본보기’를 말한다. 하지만 본보기라는 고유의 우리말을 대신해 사용되는 ‘모델’보다는 특정한 직업군을 통칭해 사용하는 경우가 더욱 일반적이다. 특히 패션모델을 압축해 부르는 ‘모델’은 우리말 속에서 일반명사처럼 사용된다. 우리는 특정 직업군을 일컫든, 상품의 메신저로서 지칭되든 모델들에게 포위당한 채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 모델들은 이토록 우리 생활 속 깊숙이 간섭자로 등장하게 되었을까
생활의 간섭자로 물신 중독 이끌어
모델의 웃음과 몸짓은 하나의 구체적인 언어처럼 사용돼 우리의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영향력의 행사는 결국 모델의 생명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마련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어떤 모델도 오래 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메신저로서 그들의 역할은 이미 ‘모델’로서 태어날 때부터 용도의 폐기시점이 정해져 있다. ‘모델’은 빨리 죽는다. 누군가가 그들의 생명고리를 빨리 끊어버린다. 순환되지 않는 직선 위의 질주자로서 ‘모델(들)’은 앞으로만 치달린다. 메시지가 강력할수록 모델의 생명은 짧아진다. 우리는 모델을 통해 환상을 현실처럼 받아들이도록 훈련되지만 결국 본질은 환상이므로 환상을 오래 지속시키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 때문에 그들의 생명력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상업주의 사고 안에서 순환되지 않는 모델의 역할과 단명하는 운명은 겉포장을 바꾼 채 상업적 목적을 지속시키려 할 때 매우 유용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모델들의 짧은 교체시기는 그들의 역할이 결국 ‘보여지는 부분’이라는 사실을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델의 비주얼한 부분은 똑같은 메시지를 되풀이하면서도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부분만을 바꿔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상업주의 안에서 그들의 생명력은 짧을수록 메시지의 강렬함을 지속시킬 수 있다. 모델을 통해 환상을 구체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해야 할 필요성이, 간절한 상업주의 사고가 만들어내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모델(들)이 쏟아내는 메시지들은 짧은 생명력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강렬한 문체로 구성된다. 극단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메시지들은 ‘행복’이라든지 ‘아름다움’이라든지 ‘기쁨’이란 모습으로 개인적인 삶 안에서 제각각 다른 차원을 구성하는 모든 가치판단 위로 단 하나의 유형만을 융단폭격하듯 떨어지게 마련이다. 마치 모델의 엷은 웃음이 우리의 행복인 것처럼 말이다.
모델의 엷은 웃음이 우리의 행복인가
상업주의 첨병으로 갈수록 몸집 비대화
이제 상품(물건)이 없어도 성공이라는 이미지만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델이라는 직업이 각광받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마치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보여주어야 할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수더분한 인상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손톱과 발톱을 다듬으며 무심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광고콘티에 맞춰 모델은 우리 사회의 진짜 모습이 어떻든 가상세계의 진실성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수더분한 인상’의 사람이어야 한다. 이처럼 모델의 다양한 필요성은 실생활과 가상생활의 연결고리로 역할이 규정됨에 따라 더욱 커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모델이라는 직업 안에서만 사실일 뿐이다. 우리에게 매체가 전달하는 세계는 절반 이상이 상업주의가 진행하는 선분상의 직진운동만으로 구성돼 있고, 그 운동 안에서 모델의 역할은 더 비대해진다. 이섭 ㅣ 전시기획자·아트컨설팅서울 큐레이터 soplee60@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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