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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김장호의 환상박물관 | 등록 2002.09.18(수) 제42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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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호의 환상박물관 찢겨진 영혼, 예술적 절규 아웃사이더 아트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의 놀라운 성취… 초월적 광기로 색다른 해석 이끌어내
영화 <오아시스>의 감동은 너무나 벅차다. 베니스 영화제의 감독상 수상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극장 문을 두들긴 나의 문화적 게으름은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하리라. 이 영화를 보석처럼 빛나게 한 것은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을 정상인의 몸으로 연기한 여배우 문소리였다. 그녀의 존재를 스크린에서 처음 발견한 나는 영화가 절반을 넘어설 때까지도 ‘리얼리티를 위하여 장애인을 너무 혹사시키며 영화 찍은 것 아닌가’라며 어이없어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전과자와 장애인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를 보면서 ‘죄수와 정신병자의 예술’이라 불리는 아웃사이더 아트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프랑스의 화가 뒤뷔페는 1945년께 스위스 여행 도중에 정신질환자들의 그림을 접하고, 이런 일군의 작품에 대하여 ‘아르 브뤼트’,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예술이라고 이름지었다. 이것이 훗날 영어권에서 아웃사이더 아트라고 부르게 된 전혀 새로운 예술장르의 운명적인 등장이었고, 이로 인하여 미술사가들은 ‘위대한 작가, 불후의 명작,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이란 삼박자 공식을 팽개쳐야 했다.
정신적 고통에도 거대한 창작물 남겨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할 예술은 사교 모임의 말장난같이 되었고, 안으로부터 활활 타올라야 할 창작의 불꽃은 사제관계, 살롱전 등의 ‘미술계 제도’에 의하여 심지가 조절되었다. 이와 같은 교양 있는 부르주아와 고명한 예술가들의 공식적인 치정관계에 질려버리고 절망했던 뒤뷔페에게 빛을 던진 이는 아웃사이더 아트의 대표작가이자 ‘20세기 최고의 광인천재’ 아돌프 뵐플리(1863∼1930)였다. 그는 고아였고 교육은 당연히 받은 적도 없고,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미성년자 강간미수로 전과 2범이 되었다. 책임능력이 없는 정신질환자로 진단받아 스위스 베른 근처의 정신병원 독방에서 20년간 격리 수용되었다. 의사는 치료과정의 일환으로 그에게 노동을 권했지만 강하게 거부하고 대신 예술을 택했다. 그리고 글·드로잉·콜라주·작곡을 하나로 결합한 거대한 창작물을 남겼다. 이는 바그너의 종합예술을 무색케 했으며, 무려 2만5천쪽이라는 엄청난 양이었다. 개인사를 중심으로 가공의 에피소드를 엮어 넣은 장대한 역사 드라마였는데, 여기에는 인류의 거대자본이 우주 전체를 산 다음 별마다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도시를 개발한다는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한다. 악보와 그림 이미지를 태피스트리 형식을 빌려 한데 묶어 표현한 것이 많은데, 보는 이로 하여금 우주인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언제인가, 지구 주위를 도는 UFO의 엔진소리가 귀에 간혹 들린다는 이를 만난 적이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정신병원에 보낸 뵐플리도 그처럼 갇혀진 세계에서 우리가 못 보는 열린 세계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비견할 만한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는 하인리히 안톤 뮐러(1896∼1930)다. 본래 발명가였던 뮐러는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나서도 사람의 배설물로 움직이는 기계발명에 몰두했다. 그러나 여기서 발생하는 악취 때문에 병원당국으로부터 금지당하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록 광인이었지만 작품 속에 나타난 그의 생각은 의미심장하다. 생명을 순환하는 과정으로 이해했고, 자연 또한 끝없이 변화하는 형태로 해석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인간과 동식물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신체 내부기관의 일정한 형태도 기형적으로 변형된다. 광인 발명가가 꿈꾸었던 것은 생물과 테크놀로지가 하나로 결합된 안드로이드(인조인간)였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사바세계와 명계의 금줄도 훌쩍 넘는다. 마지 길(1882∼1961)의 그림에 등장하는 불길한 얼굴들은 다름 아닌 그녀가 영매로서 보았던 ‘그 무엇’이었다. 미술사에는 등장하는 ‘그 무엇’과 그녀의 작품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상상과 현실의 차이와 비슷할 것이다.
당대의 조류 벗어난 아웃사이더도
비정상적이고 광기가 표출된 그림만을 아웃사이더 아트로 부르는 것은 아니다. 정규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고, 당대의 미술조류와 무관하게 혼자서 재미삼아 창작에 몰두한 이들의 작품도 아웃사이더 아트에 포함된다. 미국 흑인 노예 출신의 빌 테일러(1854∼1947)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에 대한 평전은 첫 창작의 순간을 이렇게 전한다. “류머티즘에 걸려 일하지 못하고 있던 그에게 연필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굴러다니는 판지를 잡고서 그 위에다 선을 하나 그었다. 종이 위에 그려진 미끈한 선이 그를 흥분시켰다. 그래서 선을 하나 평행하게 더 그렸다. 아름다운 질서였다. 도상의 에너지가 그의 마음속에 파장을 일으켰고, 그는 눈으로 보는 언어가 가진 마력에 푹 빠졌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또 있을까, 그는 꿈꾸듯이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 여성 장애인이 <오아시스>를 보고 나서 인터넷 매체에 “우리 장애인들은 바보가 아니다. 우리도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며, “아무 말 하지 못해서, 영화에서조차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우리 삶을 바보 같은 아름다움으로 포장되는 것에 대해 작은 비명이나마 지르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그런 ‘작은 비명’이자 찢겨진 영혼의 절규다.
도상학연구가 alha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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