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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영광댁 사는 이야기 | 등록 2002.08.09(금) 제42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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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댁 사는 이야기] 쌀과 통일 "쯧쯧, 쌀이 개밥, 소밥, 돼지밥 된다고? 세상 참…." 뙤약볕에서 논에 NK비료 뿌리고 땀범벅인 채로 들어서신 아버님이 TV보도에 분통을 터뜨리더니 바로 "끙" 하는 한숨을 내쉬신다. 몇개의 태풍도 비껴가고 적당히 비내리고 뙤약볕 내리쬐는 통에 올 쌀농사 이대로면 젠장맞게도 대풍이겠다. 아직 쌀걱정, 배고픔에 굶주린 사람들이 지천인데 우리 사회에서 쌀은 천덕꾸러기를 넘어 웬수 취급받다 못해 드디어 가축 사료로 사용된다는 보도다. 그것도 몇백석이나…. 신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해교전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로 인해 애초 북한행이 예정된 쌀 30만t이 갈 길을 잃더니 가축사료용으로 방출이라도 해야 올 가을 쌀값 대란을 막을 수 있단다. 지난해 1년 농사의 고단한 일상을 추스르기도 전에 쌀을 거리에 쟁여놓고 겨우내 벌인 쌀싸움에 몸살난 농민들이나 자치단체나 올 가을 걱정이 눈앞에 선하다. 추수기부터 시작된 쌀싸움은 영광군청 앞과 각 읍면단위 농협에 천막치고 장기간 농성으로 이어졌고, 뙤약볕에 달구어진 농민들은 몇달간 찬 바닥 한뎃잠을 자면서 올 초에야 영광군에서 19억여원 지원을 약속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올해 영광군 미곡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쌀은 10만8천여석이고 농가 보유량은 거의 없다. 그래서 시중에는 오히려 쌀이 없어 다른 지역의 쌀을 사서 되파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단다. 정부미는 차고 넘쳐서 버려야 할 지경이고 영광에는 쌀이 없어 영암이나 전북등지에서 공매해 되판다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쌀과 함께 떨어지는 몸값에 자존심 상한 농민들은 통일만이 농업을 살리는 길이며 결국 우리 민족의 생명줄을 지키는 일임을 몸으로, 맘으로 체험하고 올해는 통일농업의 희망과 자부심을 모아 함께 논에 꽂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월드컵의 여운으로 농산물 소비량이 줄고 서해교전 이후 애들보다 못한 '철딱서니'로 '한판 붙자'는 분위기가 높아질수록 우리 쌀의 북한 지원이 어려워질 것을 미리 '감'이라도 잡았는지, '우리 쌀 살리기 100인 100일 걷기'에 나선 농민들의 한 계절 빠른 쌀투쟁은 절박함보다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제 집의 농사일을 고스란히 떠넘기고 온 아내와 가족들의 고생이 눈에 선하지만 농업정책이 이대로 이어진다면 어쩌면 몇해 뒤엔 다시는 보지 못할 산천을 무작정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몸서리치게 느끼며 논두렁과 아스팔트 가리지 않고 걷는 농민들은 20여일을 넘긴 지금 전북 어디쯤을 지나고 있나 보다. 며칠 전 논두렁을 걸으며 벼 한 포기에 담긴 생명공학을 설명하면서 농사짓는 일이 그리고 농업이 우리의 생명을 지켜준다는 내 열변을, 그리고 굶주리는 북한 사람들 이야기를 아이들은 귀곁으로라도 들었을까? 올해도 북한 주민의 굶주림은 이어질 전망인가 보다. 어느덧 우리 아이들은 북한 사람들을 소, 돼지, 우리집 개보다 못하게 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부모 세대가 세월을 이기지 못해 떠나고 젊은 사람은 빚쟁이로 남는 농촌에 아이들 목소리가 점점 더 잦아들어갈 것이 못내 무섭다. "냅두씨요. 우리 농민만 죽는 것 아닝께"라는 젊은 농민의 성난 외침은 재앙을 눈앞에 둔 무섬증으로 다가온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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