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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김학민의 음식이야기 | 등록 2002.08.13(화) 제42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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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민의 음식이야기 처가집 가서 장모님 찜닭 먹세 전통 찜닭의 다양한 조리법을 아는가… 예스런 맛을 살린 처가집에서 몸보신하기
오늘날 인류가 사육하고 있는 가축으로서 닭의 조상은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야생하고 있었던 들닭이라고 한다. 이 들닭이 기원전 6∼7세기부터 사람들의 손에 의해 사육·개량되기 시작하면서 가축으로 정착된 것이다. 우리의 옛 문헌에도 일찍부터 닭에 관한 기록들이 종종 나온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김알지 탄생설화에 의하면 “신라왕이 어느날 밤에 금성 서쪽 시림 숲 속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호공을 보내어 알아보니, 금빛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그래서 그 궤를 가져와 열어보니 안에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는데, 그 아이가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숲의 이름을 계림(鷄林)이라고 하였고, 이것은 한때 신라의 국호로도 쓰였으니 문헌상으로 보아 닭은 최소한 신라 건국 시기인 기원전 1세기 이전부터 이 땅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 <삼국유사>에는 가야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이 서역의 아유타국에서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에 희미한 붉은 무늬가 있는데, 이것은 닭볏의 피로 찍은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닭의 원산지 인도와 닭의 한반도 유입의 관련성을 상상케 하는 대목이다. 닭은 소나 돼지에 비하여 지방이 적고 맛이 담백하여 소화·흡수가 잘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소·돼지 다음으로 널리 식용되고 있고, 백숙·찜·불고기·회 등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었다. 이 중 찜이라는 조리법은 흔히 찜통이나 시루에 넣고 뜨거운 김으로 익히는 방법으로 알고 있으나, 우리의 전통 찜 조리법은 그렇지 않다. 곧 찜은 국물을 재료가 잠길 만큼 넣고 끓여, 익으면 국물을 자작하게 남기는 조리법이다. 1809년 빙허각 이씨가 가정 살림에 관한 사항을 정리하여 엮은 책 <규합총서>에 보면 찜은 “국물이 바특하여 제 몸 다 익은 뒤에는 젖을 만하여야 좋다”라고 되어 있다. 곧 찜은 조리기법에서 온 명칭이라기보다는 마무리가 된 모습에서 김으로 쪄냈을 정도의 즙을 가진 요리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조선조 중기에 서유거가 엮은 <증보산림경제>에는 병아리를 적당히 잘라 파, 소금, 기름으로 볶아 10분쯤 익힌 뒤 후추, 천초, 물, 술을 넣고 익히는 연계찜, 암탉의 배에 도라지, 생강, 파, 천초, 간장, 식초, 기름 등 7미를 넣어 항아리에 담아 중탕으로 찐 칠향계법 등 우리 전통 닭찜 요리법이 나온다. 그냥 맹물에 삶아내는 듯한 요즘의 닭찜에 비해 아주 고아스럽다. 신당동의 아주 오래된 찜닭집을 소개한다. 시어머니 노낭희(84)씨부터 며느리 이병문(61)씨까지 50여년간 이어져온 처가집(02-2235-4589)이다. 시어머니 노씨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월남하여 한국전쟁 직후부터 같은 동네에서 이 집을 열어왔다. 20여년 전부터는 장모님같이 푸근한 며느리 이씨가 이어 오고 있다. 한국전쟁 뒤 20여년간은 평안도식 돼지고기 편육과 메밀국수가 주메뉴였고, 그 이후 지금까지는 변함없이 찜닭과 메밀국수가 주메뉴다. 이 집의 찜닭 맛은 가슴살까지 포함하여 닭고기의 모든 부위가 상 위에 올려져 시간이 지나가도 푸석푸석하지 않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또 매콤한 양념장에 톡 쏘는 겨자를 풀어 만든 닭고기 찍어먹는 소스가 독특하다. 한여름에도 정갈하게 나오는 포기김치와 함께 후식으로 생각하고 먹는 메밀국수(3500원)의 맛 또한 무척 개운하다. 찜닭 1마리(1만4천원)면 3인이 충분히 먹을 수 있다. 다 해치우지 못한 닭고기는 잘게 찢어 메밀국수에 넣어 먹으면 상 위에는 닭뼈만 남게 된다. 처가집은 구청에 신고한 식당 이름이고, 정작 이 집에는 ‘찜닭’이라고 쓴 조그마한 간판만 붙어 있으므로 주의해서 찾아야 한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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