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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휴먼포엠 등록 2002.04.17(수) 제405호

[휴먼포엠] “우리 딸 하나만 처벌하라”

하종강의 휴먼포엠

‘인권학원’소속고 총학생회장 어머니 성낙인씨가 딸과 함께 비리사학에 맞장 뜬 사연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연락이 왔다. 70, 8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한 선배들의 삶을 지금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원히 역사에 묻혀버릴지도 모르는데, 그 선배들을 만나 과거와 현재의 삶을 기록하는 일을 나더러 함께 할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꺼이 하겠노라”고 했다.

“쉽게 얻으면 깨달음이 없다”

그 일의 첫 번째 만남이 바로 성낙인(48)씨였다. 반도상사의 해고 노동자 출신인 그이의 딸이 요즘 한창 말이 많은 비리사학 ‘인권학원’ 소속 어느 고등학교의 총학생회장 출신이었다. 그 딸은 지금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딸과 함께 비리사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충분히 결례가 될 만큼 늦은 시간에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신임간사 김수정씨와 함께 성낙인씨 집을 찾았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성낙인씨는 묻지도 않고 주방으로 가더니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 저녁을 먹어야 할 만큼 배가 고프지는 않다”고 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 인심은 그런 게 아니다”라면서 굳이 밥 먹기를 권했다. “조금만 먹겠다”고 했는데도 고봉으로 퍼주는 밥을 반 이상이나 덜어내었다. 한참 맛있게 밥을 먹다 보니 정작 성낙인씨는 밥술을 뜨다 말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은… 저는 저녁을 먹었거든요.” 우리가 저녁을 먹게끔 하느라고 우정 자기 밥까지 차린 것이었다. 이게 바로 우리 인심이다.

반도상사는 동일방직, 원풍모방, 콘트롤테이타코리아와 함께 70, 80년대의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민주노조였다. 성낙인씨는 “그 일을 통해서 세상 전체를 배웠다. 그것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새싹이 돋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공장장실에서 단식투쟁을 했던 여섯명 ‘투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노동조합에서는 교선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 활동들 속에서 “참여해야 배운다”거나 “쉽게 얻으면 깨달음이 없다”는 삶의 원칙들을 세울 수 있었고 그런 원칙들은 그 이후 지금까지 삶의 푯대가 되었다.

딸을 그 고등학교에 보낸 것은 “용의 꼬리가 되느니 닭의 머리가 되는 것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중에 딸아이가 총학생회장이 되었을 때는 ‘역시 그 학교에 보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딸아이가 3학년이 되고 4월부터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딸아이가 학생회 간부들을 모두 데리고 집으로 왔다. 학생회 간부가 모두 17명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그렇게 커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성낙인씨는 학생회 간부들에게 “너희들 17명 선에서 끝내라. 너희들만 퇴학당할 각오를 하고, 다른 학생들까지 동원하지는 마라”고 했다. 학생들의 싸움은 노동자들의 싸움과 달리 ‘처절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 목표이고, 그런 싸움은 절박함이 상대적으로 약한 측면이 있어서, 문제점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까지 모두 참여하면 싸움을 오래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의 그 말 때문에 딸아이는 학생들을 이 싸움에 동원할 것인지 말 것인지 끝까지 고민했다.

어른들이 잘못해서 생긴 일

처음에는 학생들이 수업을 전폐하다시피 싸움을 하고 있는 것도 몰랐다. 학교 운영위원인 어느 학부형의 전화를 받고서야 학생들이 수업도 하지 않고 집회를 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에 찾아가 교감선생님, 담임선생님, 전교조 선생님들을 차례로 만났다. 담임교사는 전교조 소속 선생님은 아니었는데 “전교조 선생님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지만 방법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을 선동해서 나서게 한 것은 나쁘다는 것이었다. 성낙인씨가 “선생님들이 그 싸움에 동참하지 않으니 학생들이 나서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전교조 선생님들과 똑같은 말을 한다”고 했다. 교감선생님은 “발령받아 온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잘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때 이미 학생들은 수업도 하지 않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운동장을 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른들이 잘못한 것 때문에 생기는 일을 아이들에게 떠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학습 기간이 시작되었고, 학생들이 교육청에 간다기에 학부형들에게 연락을 해서 같이 가봤다. “나이 어린 중학생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다 와서 교육청 앞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큰 화물트럭들이 그 옆으로 쌩쌩 지나가고 있는 거야. 그 화물트럭 옆으로 조그만 학생이 지나가는데, 아이쿠, 저러다가 사고 나겠다 싶더라고…. 전경들은 겹겹이 둘러서서 바리케이드를 쳐서 못 들어오게 해놓고, 몇날 며칠 동안 아이들이 와서 이렇게 헤매고 있었을 텐데, 저러다가 아이들이 죽겠다 싶더라고…. 누구 하나가 죽더라도 어른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눈에 뵈는 것이 없더라고…. 전경이 있거나 말거나 담 위에 올라가 교육청의 책임자가 우리를 만나줄 때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지.”

점심 무렵에 선생님들과 학부형 대표 몇명과 함께 들어가 교육청 관리를 만났다. 싸움이 길어질 것 같아서 몸이 좀 아프다는 학부형은 빼고 건강한 사람만 들어갔다. 저녁 6시가 되니 교육청 직원들이 퇴근해야 한다고 끌어냈지만 밤 11시까지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버텼다. 결국 부교육감 만나 “인권학원에 특별감사를 내보내겠다”는 확답을 얻었고, 그 뒤 3주간의 특별감사가 시행되었다. 특별감사 결과 관선이사가 파견되었으나 그 관선이사들이 자기 역할을 다하기도 전에 재단이 소송을 내 이기는 바람에 복귀했고 그 뒤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파면되면서 일이 다시 일파만파로 퍼지게 되었다.

학생들이 수업을 하지 않은 것을 결석 처리하겠다는 것이 나중에 또 문제가 되었다. 그것 때문에 학교, 교육청, 경찰서를 밥먹듯이 드나들어야 했다. 학교 직원회의에 뛰어들어가 “선생님들이 정히 학생들을 결석 처리해야 한다면, 그것이 교사의 자존심이라면, 총학생회장인 우리 딸아이 하나만 처벌해라. 내가 우리 아이를 데려다가 선생님들 앞에 무릎을 꿇리겠다”고까지 했다. 온 가족이 모여앉아, 총학생회장인 딸아이 하나만 처벌받고 다른 학생들은 모두 구제하는 것에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 각서를 쓰고 서명을 했다. 성낙인씨는 딸아이에게 “엄마는 국민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잘 살아왔다. 너는 그래도 고등교육까지 받았으니 나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다”라고 설득했다. 속 깊은 딸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의 뜻을 따랐다.

쥐약 있냐?

나중에야 알았지만 딸아이는 그때 이미 자퇴서를 작성해서 항상 가슴에 품고 다녔다. 그것을 알고 나서 성낙인씨는 딸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만일 여기에서 전학이나 자퇴를 하면 낙오자가 되는 거다.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을 하지 않았으면 모르되, 일단 시작한 일을 다른 사람들만 남겨놓고 총학생회장인 너만 빠져나온다면 너는 낙오자가 되는 거다. 지금은 버티는 것이 힘들더라도 나중에는 이것이 다 너의 인생에 보탬이 될 거다.” 딸아이가 엄마의 뜻을 따른 것은 물론이다.

한번은 성낙인씨가 다른 학부형들과 교육청에서 가면서 약국에 들려 “쥐약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 내일모레면 쉰살이야. 살 거 다 살았어. 이제부터는 아이들의 시대인데, 어른들이 아이들의 앞길을 막고 있으니…. 아예 쥐약을 사서 목에 걸고 들어가려고 했어. 약국에서 쥐약을 달라고 하니까 주기는 주는데, 끈끈이 쥐약을 주는 거야. 그런 것말고 물약으로 된 것은 없냐고 하니까 ‘요즘엔 그거 먹고 자살하는 사람 많아서 안 나온다’고 하더라고. 피로회복제 몇병 사갖고 나와서 나누어 마셨지.”

성낙인씨는 “내 자식 하나 때문이라면 이런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딸아이 졸업식 전날까지도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학생들의 문제로 교육청에 가서 싸웠다. 딸아이가 학교를 졸업한 요즘도 가끔 학교에 찾아가 전교조 선생님들과 “어떻게 지내시냐?”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최근까지 김재석 전교조 서울지부장이 교육청 앞에서 인권학원 문제로 단식을 했다는 것도 소상히 알고 있었다.

“재단 쪽 사람들은 이런 일을 누가 시켜서 하는 줄 알아. 이런 건 누가 시켜서는 도저히 못하는 일이야. 한두달도 아니고 몇 개월씩이나…. 전교조 선생님들은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아마 끝까지 할 거야.” 한번 투사는 영원히 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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