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휴먼포엠 등록 2002.01.30(수) 제395호

[휴먼포엠] ‘조용한 불꽃’이 세상을 바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변호사, 민주노총 ‘권두섭 차장’

이번에 만나려고 했던 사람은 최근 민주노총에 가기로 결정한 강문대 변호사였다. 그런데 강 변호사가 극구 마다하면서 “이미 민주노총에서 2년 동안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가 있고, 이번에 우리 변호사 몇 사람이 민주노총에 가기로 결정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동안 그 사람이 열심히 활동한 성과이니, 나말고 권두섭 변호사 그 사람을 만나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이 글을 쓰느라고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다. 자신은 인터뷰를 할 만큼 잘난 사람이 절대로 아니라고 마다하면서 다른 사람을 자꾸 추천하는 것이다.

광부 아버지에게서 배운 ‘헌신성’

내가 강문대 변호사에게 “권두섭 변호사를 인터뷰해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만 설명해 보라”고 주문했더니 강 변호사가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과거에 이른바 ‘운동’의 경력을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민주노총에서 일하겠다는 결정을 할 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권두섭 변호사는 그런 특별한 경험이 없으면서도 우리가 보기에 신기할 정도로 가장 헌신적으로 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연수원 시절에는 그 친구가 노동법학회 총무 일을 맡아봤는데 우리가 모두 ‘전설의 총무’라고 불렀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권두섭(34) 변호사는 경북 문경에서 5녀1남 중 셋째로 태어났다. 여섯 형제 중에 유일한 아들이었으니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았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자라는 동안 부모님에게 가장 크게 혼난 기억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없다”고 했다. 그 대답은 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리게 하는데 첫째, 지극히 모범생이어서 야단맞을 일이 전혀 없었다거나… 둘째, 그만큼 ‘금이야 옥이야’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자랐다거나… 셋째,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찍이 대구로 유학을 나오는 바람에 가끔 집에 갈 때나 얼굴을 뵙는 부모님에게 야단맞을 ‘절대 시간’이 부족했다거나…. 권 변호사는 위 세 가지 중에서 맨 마지막 경우라고 ‘변론’했지만 아마도 세 가지 다였을 것이다.

고향 문경에서는 부모님이 지금도 농사를 짓고 계신다. 부농이 아니어서 아버님은 계속 탄광에서 일하셨다. 그 동네 어른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 한편 탄광에서 광부로 일했다. 그것은 자녀들의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도 계셨는데, 사람들이 감탄하는 권 변호사의 사람들을 대하는 ‘헌신성’은 어릴 적 할아버지를 대하던 부모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일찍이 몸에 밴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수재’소리 듣고 자랐지요?”라고 물었더니 권 변호사는 그냥 웃기만 한다. 하긴 우리 주변에 한때 ‘수재’소리 한번 안 듣고 자란 사람이 몇이나 되랴. 나 같은 사람도 ‘소싯적’엔 그랬다.

87년, 법대에 처음 입학해서는 수많은 착한 사람들이 실정법 위반으로 잡혀가는 모습을 보면서 법학이 자신과 잘 맞지 않는 분야인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했다. 시위에 한두번 참여해본 것이 ‘과외 활동’의 전부였을 뿐, ‘이념 서클’은 물론 다른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다. 학생운동 ‘조직’에 몸을 담은 적도 없었다. 사법시험을 보기로 마음먹게 된 데에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두루 거친 외사촌 형 고지환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법시험에 나란히 붙었고 연수원도 같이 다녔다. 고지환씨 역시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는 변호사다.

월급, 100만원은 넘어요?

연수원 시절에는 ‘노동법학회’에 참여했다. 사람들에게 ‘전설의 총무’라고 불렸던 이유를 물으니 “사람들을 많이 괴롭혔기 때문일 것”이라며 웃는다. 사법연수원생들이 조직적으로 민주노총의 상담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민주노총이 형식상 합법성을 갖기 이전이어서 한국노총에서의 상담활동과 달리 사회봉사 학점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였지만, 수업이 끝난 뒤 일주일에 2∼3회 민주노총에 가서 노동상담을 하는 ‘과외 활동’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도입된 직후여서 상담실에 가보면 노동자들이 넘쳤다. 연수원생 두명이 짝지어 가곤 했는데 상담실 양쪽에 책상 하나씩 놓고 앉아서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노동자들을 만나다가 밤 9시가 훌쩍 넘어 상담실을 나서면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상담 활동을 하면서 정작 도움을 받는 사람은 오히려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대략 하루에 몇명이나 상담을 했어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이 목까지 올라왔으나, 얼른 말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상담을 했느냐, 얼마나 많이 노동자들을 만났느냐, 하는 것들을 궁금해하지요?” 권 변호사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예, 그래요. 그게 참 이상해요. 우리한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인데…. 한 사람을 만나거나 열 사람을 만나거나 우리에게는 다 똑같은 일이잖아요.” 가끔 나도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우리의 일을 그렇게 계량화하려고 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우리가 만나는 노동자들을 모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권두섭 변호사가 현재 민주노총에서 갖고 있는 직급은 민주노총이 나름대로 갖고 있는 경력인정 기준에 따라 ‘국장’도 아니고 ‘부장’도 아닌 ‘차장’이다. 사람들은 “대기업에 이사로 갈 수도 있는 사람에게 겨우 차장이 뭐냐?”고 하겠지만 그것 역시 권 변호사가 보기에는 한없이 멍청한 세속적 가치관이다. 그 관점은 “한달 월급은 얼마나 되냐?”는 지극히 세속적 질문에 대한 권 변호사의 답에서도 묻어난다. “사람들은 대개 그런 걸 강조해요. ‘박봉을 받으면서 일한다고…’ 일반 언론은 그런 것에만 초점을 맞춰요.” 그렇게 말하는 얼굴에는 “하종강, 당신마저도 겨우 그것이 궁금하냐?”는 뜻이 담겨 있었지만,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는 알량한 사명감으로 나는 끝내 물고늘어졌다. “한달 100만원은 넘어요?” 권 변호사는 웃으며 답했다. “그건 넘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얘기는 쓰지 마세요.” 그러나 나는 결국 썼다. 권 변호사의 ‘박봉’에 초점을 맞추는 언론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좋은 언론’에 속하는 편이다.

노동자들을 위협으로부터 막아내는 일

권두섭 변호사의 일상은 무척 바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변호사들 중에 한 사람일 것이다. 호텔롯데 노동자들의 파업이 경찰특공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했을 때, 권 변호사는 서울 전역에 분산 연행된 호텔롯데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종일 서울시내 경찰서들을 돌았다. 연행된 노동자들의 절반 이상이 ‘멍들고 찢어지고’ 부상당해 있는 모습을 보면서 권 변호사는 마음속으로 울었을 것이다. 그 무렵 나하고 어렵게 전화 연결이 되었던 한 노동자는 “노원경찰서에 연행돼 와 있습니다. 상황이 벌써 다 끝났을 겁니다”라는 말 뒤에 계속 같은 단어만 되풀이하면서 흐느꼈다. “사람들이 많이 다쳤어요. 정말 많이 다쳤어요. 노동자들이 많이 다쳤어요. 정말 많이 다쳤다구요. 정말 많이 다쳤다니까요….” 열번도 넘게 되풀이했던 그 말 속에는 “바깥에 있는 당신들이 어떻게 좀 손을 써보라”는 부탁이 들어 있을 터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울었는데, 직접 그 모습을 봐야 했던 권 변호사는 오죽했을까.

경찰서에 처음 불려간 나이 어린 노동자들에게 체격이 남산만한 강력반 형사들이 고성을 지르며 윽박지를 때 그곳에 찾아가 피의자 심문에 직접 참여하면서 그 위협을 막아내는 것이 권두섭 변호사가 다반사로 하는 일들 중에 하나다. 그 장면을 조용조용 설명하는 권 변호사의 눈에서 나는 문득 불꽃을 보았다. 그런 싸움을 할 때에도 권 변호사는 조용조용하게 말한다. 권 변호사는 그런 사람이다.

권 변호사는 요즘 민주노총의 노동법률원을 설립하는 일로 바쁘다. 권영국, 김영기, 강문대 변호사가 새로 민주노총에 합류했다. 이들 모두가 권두섭 변호사와 버금가는 헌신성을 갖춘 사람들인데, 내가 만나보니 서로 상대방을 칭찬하기에 바쁘다. 권 변호사 역시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민주노총 노동법률원은 쏟아지는 현안문제에 법률적으로 시급하게 대응하는 것 외에 전문성을 갖춘 입법 활동이나 정책 대안을 개발하는 일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진보적 분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사업 계획을 한참이나 들었는데 “돈을 벌겠다”는 내용은 어느 구석에도 없다. 권두섭 변호사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은 이랬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생전 화 한번 내보지 않고 살아왔을 것 같은 사람이 그렇게 마음속에 조용히 품는 각오가 세상을 바꾼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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