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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하종강의 휴먼 포엠 등록 2002.09.18(수) 제427호

[하종강의 휴먼 포엠] “운동이란 말 안 좋아해요”

한국수자원기술공단 해고자 김동옥씨가 추구하는 ‘올바른 삶’과 ‘의식 있는 노력’

1994년 초 겨울 어느날, 낯선 사내가 전화를 했다. 우연히 내 글이 실린 책을 읽었는데 하루라도 빨리 뵙고 싶으니 지금 당장 찾아가도 실례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굳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그러마고 했다. 사내는 “지금 바로 출발하겠지만 여기가 포항이어서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단정하게 생긴 남자가 하얀 야구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이렇다 하게 특별히 하고픈 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맥주 몇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민숭민숭 헤어졌다. “하 선배님 글에서는 사람 향기가 나요.” 소파에 작은 몸을 깊이 묻은 채, 조금 피곤한 표정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그의 말이 두고두고 생각났다.

31살에 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다

김동옥(38)씨는 전남 광양이 고향이다.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 일찍이 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포클레인 기사 일을 하며 사촌누이 집에 놀러갔다가 지금의 부인 김정애(40)씨를 만났다. “그 사람은 부산대를 졸업했어요. 학력 차이말고도 우리 두 사람은 연상, 외아들과 외동딸, 영남과 호남의 만남이라는 어려움들이 있었어요.”

한 가지만 있어도 좀처럼 넘기 어렵다는 문제들이 그렇게나 많았으니 그 고충이 오죽 컸으랴만, 그 시절을 회상하는 김동옥씨의 얼굴은 밝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결혼식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행복하게 치렀어요. 지금도 처가 식구들에게 참 고맙게 생각해요. 부모님들도 그렇게 말씀하세요.”

두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김동옥씨는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가족과 함께 ‘평범한 소시민의 소중한 행복’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이 되고 싶었다. 31살에 직업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가장의 의무를 일정 기간 포기하겠다는 결정이었지만 아내의 격려가 그에게 힘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가장 나이 많은 학생이었다. 식당에 밥 먹으러 갈 때 학생들이 줄을 잘 맞추지 못하면 나이 어린 선생님들이 대열을 세우고 마치 군대처럼 “앉아! 일어서!”를 시키기도 했다.

“나이 어린 선생님들이 ‘야! 자!’ 하는 것이 싫어서 점심시간에는 밥도 안 먹고 실기연습만 죽도록 했어요. 그래도 ‘만학’으로 고생한다고 따뜻하게 챙겨주는 선생님들이 많았어요. 장학금도 받았고요. 학교가 끝나면 밤에는 자동차정비학원에 다니며 기술을 익혔지요.” 김동옥씨는 그때를 “자기단련의 시기”라고 했다.

직업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96년에 한국수자원기술공단에 취업했다. 2년쯤 되었을 때 일을 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팔이 말려들어가 두 팔이 모두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두 팔이 부러졌으니 혼자서는 물 한 잔도 못 마셨죠. 병원 치료 받는 1년 3개월 동안 집사람이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김동옥씨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부인 김정애씨의 흔적은 그렇게 새겨져 있다.

“그때 연락 좀 하지 그랬어.” 인터뷰라는 의무감에서 잠시 벗어나야겠다 생각하고 말을 꺼내는데 그의 두 팔에 남아 있는 커다란 상처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문득 목이 잠긴다. 참 알량한 선배 같으니라고… 하종강, 네가 선배냐?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격적 모독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불어닥친 기업구조조정 태풍이 그의 회사라고 비껴갈 리 없었다. 한국수자원기술공단이라는 회사를 완전히 청산해버린다는 구조조정정책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결정이었다.

“우리 회사는 전국의 다목적댐과 광역 상수도 설비를 점검 정비하는 회사예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중요한 업무예요. 해마다 흑자경영을 했고요. 놀고 먹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기술자 집단이에요. 첫째 업무의 중요성, 둘째 흑자경영, 셋째 기술자 집단. 그렇게 명확하게 좋은 조건을 갖춘 알짜배기 회사를 ‘정부투자기관을 줄인다’는 ‘정부의 방침’ 하나로 하루아침에 없애버린 거예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잖아요. 우리 회사가 구조조정의 모델이 된 겁니다. 정년 단축, 퇴직금 누진제 폐지, 자녀 학자금 지원 폐지가 모두 우리 회사에서부터 시작됐어요. 정부로부터 구조조정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기도 했어요. 우리가 그렇게 기업 청산의 모델이 된 이유는 정부투자기관 가운데서 규모가 작은 회사인데다가 노동조합 결속력이 약했기 때문이에요.”

김동옥씨를 5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이 바로 그 무렵이었다. 노동조합의 위원장과 사무국장을 겸직한 그가 회사의 구조조정정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며 처음에 그런 것처럼 전화 한통 하더니 불쑥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규모가 작아 싸워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어요. 정부에서 하자는 대로 잘 따라주면 ‘청산만은 면해줄지 모르지 않느냐’, ‘어차피 없어질 회사인데 그 기간만이라도 조금 더 늦춰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현명한 투쟁 아니냐’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해요. 정부의 구조조정정책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니까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투쟁을 해야 할지, 아니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투쟁을 해야 할지, 그것을 잘 모르겠어요.”

첫 만남 때와 마찬가지로 그때도 나는 별 쓸데없는 얘기만 늘어놨고 김동옥씨는 ‘혹시’ 하고 왔다가 ‘역시’ 하고 돌아간다는 표정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걸 잘 압니다”라고 말했다.

2001년 1월11일, 한국수자원기술공단은 전 직원에게 해고 예고를 통보했다. 다만 회사 해산일인 3월31일 이전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새로 설립되는 민간회사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조건이 있었으니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노동자들에게 준 셈이다. 결국 379명의 전체 직원 가운데 378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채 해고된 단 한 사람의 노동자, 그가 김동옥씨다.

“내가 회사에 특별히 애착을 가지는 이유가 있어요. 두 아이의 아빠가 가장의 의무를 유보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간 회사예요. 일하다가 크게 다쳐 장애인이 되었고요. 저 6급장애인이에요. 이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격적 모독이에요.”

해고 통보한 유령공문의 비밀

김동옥씨는 2001년 4월10일 출근했다가 공문을 하나 발견했다. 그를 3월31일자로 ‘소급해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공문의 시행일이 4월3일이고, 발송일이 4월9일이었어요. 한국수자원기술공단의 모든 직원은 3월31일자로 회사를 떠났기 때문에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는데 그 공문을 기안하고 결재하고 발송한 사람이 있는 거예요. 유령이 만든 공문이라니까요.” 김동옥씨는 차라리 웃었다. 그 ‘유령공문’의 비밀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쥐고 있다. 한국수자원기술공단의 모회사이자 주주인 한국수자원공사 직원들이 한국수자원기술공단의 업무를 이어받아 처리한 것이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구제신청, 대전지방법원 민사소송의 판단을 거치는 동안 김동옥씨가 한 주장은 간단하다. 수자원기술공단이 한 해고는 위법 부당해 무효니 그 업무를 이어받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자신에게 일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상식이 법률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김동옥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상식의 실현을 위해 김동옥씨는 요즘 마지막 희망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그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저는 ‘운동’이라는 말 별로 안 좋아해요. ‘올바른 삶’, ‘의식 있는 삶’이라는 말을 더 좋아해요.“ 김동옥씨는 초롱한 눈망울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올바른 삶’을 위한 ‘의식 있는’ 노력이 세상 어느 것보다 훌륭한 ‘운동’이 아닌가.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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