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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별기고 등록 2003.01.02(목) 제441호

[특별기고] 북한 핵무장, 치명적 위협 안된다

2003, 세계 지성이 본 세계

노무현의 당선과 부시의 대북 강경책… 동북아는 어디로 가는가

새 대통령을 선출하자마자 맞이하는 2003년 새해. 너도나도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한반도는 북핵 문제로 다시 술렁거린다. 미국은 ‘두개의 전쟁’을 말하고, 북한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2003년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동북아에 전쟁의 그림자는 다가오는가, 유럽의 새로운 도전은 시작되는가. 미국의 대표적 한국학자 제임스 팔레 교수와 프랑스의 정치학자 샤르르 조르그비그 교수의 의견을 들어보자. 편집자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한국의 민주주의적 정치체제 발전을 위해 괄목할 만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유권자들이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현행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19세기적 불평등성 제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노 당선자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이어나가면, 이는 부시 미 행정부의 잘못된 대북정책에 대한 억지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 내 대북 강경론자들은 북한이 이라크보다 미국의 안보에 훨씬 위협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북한이 최근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봉인된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시작했고, 약 6파운드로 추정되는 추출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쟁의 고통은 미국 아닌 한민족의 것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은 커다란 위험성을 안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북-미 기본합의를 체결하기 직전 거의 실행에 옮길 뻔한 대북 봉쇄나 영변 핵 관련시설폭격을 실행에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제2의 한국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 지난 한국전쟁 때보다 남북한 모두에 치명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어떤 경우든 막대한 고통을 겪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한민족이다.

북한이 비록 재정·경제적 어려움과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비밀 핵개발에 몰두하긴 했지만, 나는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그동안 잠재적 핵무장 카드를 이용해 미국이 협상에 나서도록 위협해왔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이런 전술은 거의 전쟁 직전까지 몰고 갔으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막판에 중재에 나서면서 간신히 파국을 면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구형 흑연감속로를 폐쇄하고 플루토늄 연료봉을 봉인하는 데 합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집권 뒤 북한이 자발적으로 모든 핵시설을 해체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이를 공개할 때까지 대화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 핵무기를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을 시인하자, 북한에 대한 중유공급을 중단하고 대화불가 정책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요구를 거절했으며,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기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무력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행정부 내 몇몇 인사들은 북한에 무력을 사용할 경우, 북한의 재래식 무기 보복만으로도 남한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라크 문제를 ‘예방적 전쟁’(preventive war)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전까지만, 대북 직접행동 결정을 연기한 것으로 비친다. 부시 행정부의 이런 정책은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북한이 미국·남한·일본을 상대로 핵공격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미국의 보복공격을 불러 북한의 핵 절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항일유격대 출신이 많은 북한 지도부는 이른바 ‘유격대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 또 지도부는 부르주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가치체계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미 남한에 대한 심각한 공세적 전쟁을 벌일 군사적 능력을 상실했다. 북한은 중국·러시아 등 가장 가까운 군사동맹국을 잃었고, 남한의 군사기술 혁신을 따라잡지 못했다. 현재 북한의 대외정책은 오히려 ‘보수적’ 색채가 짙다. 1860년대 조선을 좌우한 대원군의 반외세 정신과 비슷해보인다. 김일성 주석이 한국전쟁 때와 그 뒤 20여년 동안 추진한 ‘공세적’ 정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중국이 대만 치는 게 더 문제다

15세기 북동부와 북서부로 영토를 넓힌 뒤 한반도 역사에서 공세적 팽창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려와 신라시대보다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북한의 민족주의는 강고하고, 방어적이며, 민감하게 살아남아 있다. 북한은 국내정치의 본질을 규정할 수 있는 원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양보를 거부한다. 이 때문에 북한은 외부세력과 동맹을 맺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적대국과 집요한 협상을 벌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과 1994년 북-미 기본합의를 맺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비핵화 약속을 전혀 신뢰할 수 없게 했다고 주장한다. 이제 남은 의문은 북한이 약간의 핵무장을 하는 것이 미국이나 한국, 일본, 또는 다른 나라의 안보에 실제 치명적 위협이 되느냐 문제다. 개인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핵무장을 하더라도 북한은 중국 이상의 안보위협이 될 수 없다.

현재 중국은 250여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또 관료주의적 독재 대신 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거나, 사법·형벌 제도의 가혹성을 줄일 수 있는 일종의 ‘권리장전’ 채택을 간청하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보다 오히려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런 상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북한에게도 중국과 똑같은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가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포위된 북한 같은 나라에 핵무기는 방어용일 수 있다. 과거 경험을 통해서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이 에너지와 식량원조를 해줄 수 있으며, 국제 무역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이 이를 보장해주면, 북한은 어떤 핵 프로그램도 중단할 의사가 있을 것이다. 물론 북한이 군사비밀을 완전히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지만, 그것이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언제든 북한이 첫 번째 핵무기 개발실험을 실제로 벌이면, 남한과 일본은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할지 미국의 핵우산 아래 머물러야 할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대북 협상정책을 다시 한번 채택한다면,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노 당선자는 이미 대북협상 의사를 분명히 했다. 노 당선자의 협상 의지가 부시 대통령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이를 통해 미국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부시 행정부가 이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남한은 미국과 거리두기에 나서거나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접근도 무분별한 행동일 수는 없다. 이를 통해 한-미 관계는 이스라엘과 미국과의 안보 협력관계처럼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의 SOFA 개정의사 주목

노 당선자는 그가 SOFA 개정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나는 그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혹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남한에서는 그동안 독재자들이 시위대들에게 자의적으로 잔혹한 처벌을 내려왔다. 한국법을 어긴 미군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니 주한미군에 대한 일정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미군 병사들의 범죄에 과중한 처벌을 내려 미국의 감정을 거스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한 땅에서 발생한 미군 범죄를 미 군사법원에서 재판해야 한다는 조항은 한국전 직후에도 조문에 포함돼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며, 특히 1987년 선거 뒤에는 사라져야 옳았다. 이 조항은 19세기 서양 제국주의가 아시아 여러 나라와 맺은 비평등조약의 ‘영사 재판관할권’에서 나온 유산이다. 이는 남한 사법제도와 남한 민중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에 다름 아니다.

이번 대선결과는 한국민에게 진정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노 당선자는 현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달리 한국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외교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대주의적 의존관계가 아닌 평등한 동반자 관계가 되기 위해 한-미 관계의 굴욕적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국회 소수당 출신이며, 지난 5년 동안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온힘을 다해 반대해온 한나라당의 협조를 얻어내는 데 앞으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한나라당이 국익을 위해 정치는 잠시 제쳐두고, 평화를 유지하고 전쟁 발생을 막기 위해 초당적 지원에 나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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