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3일 예정된 농민대회를 앞두고 전농 활동가가 돌아본 우리 농촌의 참담한 현실
사진/ FTA 반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11월13일에는 1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농민대회가 열린다. (이정용 기자)
언론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해방 이후 최대 규모의 농민집회가 준비되고 있다. 오는 11월13일 여의도 둔치에 모이는 농민의 수가 현재 경찰 추산으로 15만명이며 적어도 10만명 이상의 농민집회가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농촌지역에서는 이미 8개월 전부터 준비되어 거의 모든 농민들이 알고 있는 이 사실을 대다수 국민은 캄캄하게 모르고 있다. 당일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여의도에 엄청난 규모의 농민들의 함성소리가 터져나올 때쯤 국민들은 당황 속에서 이 사태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누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가
어쩌면 오늘 한국 농업문제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농촌지역 주민과 행정기관을 연결하는 고리인 이장단 7천명 이상이 서명에 동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에도 대다수 국민은 그러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봉쇄된 구조. 이것이 오늘 한국 농업의 현주소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도는 30% 아래로 떨어졌으며, 농가 구성 인구 중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55%를 넘어섰다. 최근 10년 사이 농촌지역 학생과 교사 수는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이러한 감소추세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김대중 정권 집권 4년 동안 농가소득 증대는 1.6%에 그친 반면 부채는 56% 증가하고 도·농 소득격차가 75.9%(도시소득을 100%로 봤을 때)로 역대 최대 격차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진지하게 대책을 고민하도록 유도하는 언론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대다수 농민과 심지어 각 당 대선후보들마저 차기 정권으로 넘길 것을 요구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강행 처리되고 있으며, 2004년까지 세계무역기구(WTO) 재협상으로 관세가 대폭 인하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2004년 쌀 재협상으로 쌀마저 전면 수입자유화로 떠밀려가는 중대 사태를 맞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농업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장서서 걱정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철저한 소외는 그만큼의 과격한 집단행동을 부르는 원인 제공 역할을 한다. 오늘 우리의 농업문제는 그 근본토대를 위협받는 가운데 철저히 소외된 채 일방적 희생만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농업은 식량안보기능, 환경보전기능, 정서문화적기능, 통일대비기능을 가지고 있다. 세계 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는 기상이변과 기온상승, 물부족 사태 등으로 머지않아 전 세계적으로 식량부족 사태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나라는 농지를 비롯한 식량 생산기반이 계속 축소되고 있으며 자급률이 급락하는데도 비교우위에 따른 농업 개방을 떠드는 정치인들의 주장은 다가올 식량위기 사태를 무시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또한 얼마 전 농업기반공사에서는 사회 안정과 일자리 제공 등 사회경제효과와 홍수조절효과, 대기와 수질의 정화 및 토양보전 등의 환경보전효과, 농촌경관 보전과 전통문화 보전, 휴양 및 레저공간 제공효과 등을 모두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매년 50조원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히 명절이 다가오면 4천만 국민 중 2천만이 고향을 찾아가는 민족대이동이 벌어질 정도로 농촌은 우리에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다.
농촌문제 방치, 미래의 방치
이렇듯 농업의 공익적·다원적 기능은 국민들이 모르고 있는 사이에도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있다. 지난 시기 농민들은 정권의 저곡가 정책과 온갖 수입농산물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락에도 꿋꿋이 땅을 지키왔으며 온갖 천시와 푸대접에도 농사를 지어 국민들의 식량을 마련해왔다. 그러나 WTO 개방에 따른 농업정책이 계속된다면 농민들은 더 이상 4천만 국민에게 안전한 먹을거리와 따뜻한 고향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농민들에게 닥치는 희생과 고통은 참아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으며 아무런 미래의 희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회피하고 뒷구석에 방치할 것이 아니라 밝은 곳으로 불러들여 토론하고 머리를 맞대 대책을 찾아야 한다. 농업, 농민문제 방치는 지금 우리 대의 문제가 아니라 통일된 나라에서 살아갈 후세대의 생존문제에 대한 방치다. 이제 더 이상 농업문제 방치는 안 된다.
강병기/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