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섹션 : 특별기고 | 등록 2002.01.23(수) 제394호 |
|
[특별기고] 일본의 ‘모략공학’을 경계하라 재미사학자 방선주 선생의 새해단상- 테러리즘, 자위대 그리고 부시정권
방선주 선생은 지난 78년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 National Archives & Records Administration)를 출입하며 장막에 가려진 한국의 현대사를 발굴하고 있는 재미 사학자다. 한국 연구자 중에서 미 국립문서보관소와 한국 현대사 자료에 가장 정통한 그는, 이도영 박사와 함께 노근리 사건 문서를 뒤지던 중 ‘대전형무소 좌익인사 1800명 처형’에 관한 문서와 사진을 발굴하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미군 정보요원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를 찾아내기도 했다. 노구에도 지치지 않고 현대사의 조각들을 추적중인 그가 지금까지의 작업을 잠시 돌아보며 2002년 새해 단상을 보내왔다. 편집자
1937년, 일제 조선군사령부는 하나의 큰 모략극을 꾸미고 있었다. 즉 조선혁명당의 김원봉으로 하여금 심각한 ‘테러’를 저지르게 하고 중국의 국민정부가 그 배후라는 ‘확증’을 공포한다. 이것은 소련에 대한 전쟁개시와 타이밍을 맞추어야 한다. 중국이 소련과 공동작전을 결정하는 것을 단념하거나 시기를 놓치게 하기 위해서. 그러면 김원봉으로 하여금 어떠한 ‘테러’를 폭발시키려 하였는가. 조선군사령부가 제작한 극비문서 ‘북지(北支)사변과 조선혁명당의 이용방책에 대하여’는 그 테러의 형태에 대하여는 설명이 없고 1937년 6월18일 제작된 ‘재지불령선인이용방안’(在支不逞鮮人利用方案) 즉 ‘중국에 있어서의 조선인 독립운동가 이용방안’에 기초한다고만 했다.
윤봉길을 향한 백범의 부탁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본군의 의도는 일본 군벌이나 정치계 거물의 암살을 기대한 것이 아니면 일본시민 다수의 살상이 뒤따르는 특정 건물의 폭파를 방관하여 일본의 국민여론을 끓어오르게 하는 형태들이다. 그런데 한국 애국지사들은 일반적으로 적국의 시민들이라도 무고하게 살상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그 단적인 예가 윤봉길 의사를 파견하기 전에 백범이 신신당부한 지시에 들어 있다. 그것은 적의 괴수들만 목표로 하지 일반 일본인들은 다치게 하지 말라는 부탁인 것이었다(1932. 5.10, 백범의 경과성명서).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미국 독립전쟁이나 이스라엘 건국운동에서의 의열(義烈)전쟁 수행자에 비견한다면 타당하지만 결코 무지몰각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간사한 일본군이 고안해낸 김원봉 접근책략은 태전(太田=대전?) 순천(順天)병원장인 김상용을 중국 김원봉 소재지로 파견하여 거사 군자금을 제공하게 하고 막후 조종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김상용은 파견되어 김원봉을 면담하고 돌아와 일제에 김원봉의 요구사항을 보고하였는데 그것은 자금조달, 군사기술자 획득(아마도 최신 폭발물 제조 기술자), 군사교관의 획득, 그리고 김상용의 조선혁명당 입당 4가지였다는 것이다. 사실상 테러라는 것은 수지가 통 맞지 않는 미련한 장사인 경우가 허다하다(작금의 인도의회 습격사건을 보라!). 구일본군이 모략에 뛰어난 존재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1931년 일본 관동군이 만주전역을 점령하기 위한 개전 모략으로 만철폭파사건을 일으켰고 또 만주국 건립이란 음모에서 세상의 눈을 돌리려고 ‘상해사변’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른바 상해사변이 일어나는 타당성의 하나로 조작된 모략이 상해시 안의 반일의 소굴로 알려진 삼우실업사라는 수건 제조공장 앞으로 일본 일련종(日蓮宗)의 승려들을 ‘제목’(題目)을 외우면서 통과시키는 데 있었다. 순 일본불교의 일파가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격양된 중국 청년들의 반일 본거지 앞에서 북을 치며 맴돈다면 문제가 안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습격을 받은 승려 5인 중 3인이 중상을 입어 입원했는데 그중 미즈가미라는 승려가 사망하여 일본은 크게 분격 수위를 끌어올렸다. 당시 상해에 무관보좌관으로 주재하고 있었던 다나가 소좌는 전후에 그것은 자신이 만주사변의 주모자 이다가기 참모의 부탁을 받고 저질렀다고 실토했는데 일본인 승려를 죽이는 것이 측은하여 그중의 한인 승려를 죽인 것으로 알려졌다(‘상해사변은 이렇게 일으켜졌다’ <지성>(知性) 1957년 별책, 송본청장(松本淸張) ‘소화의 요괴’ 등 참조). 일본 육군의 참모본부에는 1937년부터 버젓이 ‘모략과’(謀略課)라는 것이 신설되었고 개전모략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고 한다. 참고로 2차 세계대전 개시 당시 참모본부의 조직을 보면 서무과, 교육과, 작전과, 편제동원과, 방위과, 구미과, 지나과(支那課), 러시아과, 모략과, 철도과, 선박과, 통신과, 전사과(戰史課), 전략전술과, 모두 14과였다.
모략전 일본군의 후예, 자위대
이렇게 모략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구일본군과 끊기지 안는 후예들이 바로 현 자위대인 것을 명심할 것이다. 전후 일본 자위대 경찰청 복원국들의 인원들이 구일본군 장교들로 차 있었고 방위청에서 편찬한 전사들이 어떤 식으로 2차대전사를 편찬했는지 생각해볼 것이다. 현 독일군이 나치 군대와 관련이 없는 것과 대비되는 점이다. 현금의 일본군이 자기 선배들이 일으킨 갖은 모략들에 대하여 또는 조선군사령부가 주도한 무수한 처녀공출책략에 여하한 공식적인 대외 의사표명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선배가 소문난 모략꾼인 데 참회하지 않는 후배가 모략 안 할 보장이 없지 않은가. 1946년 4월5일 미 육군 정보국(MIS)은 ‘사이토오 도시하루’라는 지하 테러리스트가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 악감정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신상 파일을 조속히 보내줄 것을 24군단 정보과에 의뢰하기도 했다. 우리는 한-일간의 진정한 화해와 동맹관계가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올해 월드컵에서도 많은 일본인들이 방문할 것인데 국민 모두 친절하게 대할 것이 기대된다. 그러나 핵심은 그들의 정부나 여론주도층이 통 반성할 줄 모른다는 데 있다. 현 독일군이 현 일본군 행태와 비슷하다면 미국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 미국 정부는 일본군과의 합작을 강화하고 있으며 두둔하고 있고 한-일 군간의 합작을 독려하고 있는 듯한 것이 섭섭한 일이다. 적어도 민주당 정부에서는 군위안부나 강제동원 노동자들에 대한 사죄배상을 전제로 한-일간의 화해를 도모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정부는 우선 이 두 문제부터 일본 책사들의 농간에 놀아나 클린턴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인상이다. 불길하게 느껴지는 징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크리스마스 휴가를 텍사스목장에서 보내면서 역사가 에드먼드 모리스가 저술한 신간서적 <국왕 테오도어>를 독파했다.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901∼1909)가 그 대외적인 치적으로 러일전쟁 당시의 일본 밀어주기와 일본의 국력이 고갈되기 전에 평화조약을 알선하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라고 이해하던 필자는 곧 이 책을 구해 보았다. 더욱이 필자는 그가 막후로 조종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대하여 왕복 암호원문의 발굴연구에 종사한 바 있었음으로 더욱 흥미를 가졌다.
부시와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 책의 상당부분이 일본과 한반도 그리고 중국에 대하여 할애되고 있는데 필자가 흥미를 느낀 점은 그가 중국을 미국 상품의 시장으로서만 흥미를 가졌다는 저자의 시각과 한국과 중국도 일본과 같은 모양으로 근대화 국가가 된다면 백인들과의 세력균형이 깨질 것이라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발언소개였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롤 모델(role model)로서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바라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고 <워싱턴포스트>의 한 칼럼은 이것은 미국을 위하여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고 썼다. 또 이 책의 저자는 아마도 백악관의 실력자 칼 로브의 도움으로 부시를 만나기도 했다. 이쯤 하면 부시 대통령이 책 저자가 이해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동북아시아 정책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 글의 줄기가 많이 빗나갔지만 필자가 의도하는 바는 한국인은 그 성품이 단순 폭발적인 점이 있어 국제적인 모략 특히 일본의 모략에 이용당하기 쉽겠다는 점이다. 여기에 언론이 이용당하면 가히 걷잡을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겁난다. 만보산 사건 때 한국 언론의 역할을 기억할 것이다. 더욱이 반백년 계속하여 철부지인 북쪽 골목대장들의 무모한 행동과 모략당하기 쉬운 체질이 걱정이다. 시간과 노력으로 풍화되려던 상호증오감을 다시 고착시키는 전쟁재발을 방지하는 데 있어서 전쟁개시를 위한 모략공학을 경계해야 될 것이 아닌가 싶다. 일부 한국인들이 9·11 참사를 고소하게 여긴다고 하는데 이는 서울 한복판에서 만원버스를 폭탄으로 삼아 시장 안으로 돌진하는 테러리스트의 행동을 두둔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비약적인 논리전개라고 비난받을 것인가?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이런 발언까지도 모략공학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방선주/ 재미사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