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특별기고] 시대를 리드하는 감성과 모험 <싸우는 신문 한겨레>의 저자, 이토 지히로 기자가 본 <한겨레21>
철저하게 싸우는 자세
내가 처음으로 본 잡지는 2000년 3월23일 발행된 300호였다. ‘한국은 얼마나 위기에 처해 있는가’라는 커버스토리는 국가정보원의 비공개 보고서를 단독입수한 특종이었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적대시되고 있는 한겨레가 이런 특종을 얻은 것에 놀랐다. 자료를 입수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들었을 것이다. 디지털시대의 기업진단에도 감동했다. 한겨레의 자세는 반기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대에 맞춰 기업의 정보도 적확하게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이 기획으로 업계에 새로운 독자가 많이 생겼다는 것을 듣고 더욱더 감동했다. 해외기사에 인도네시아 아체지방의 르포, 체첸에서의 러시아군의 만행, 버마 반정부세력 간부의 인터뷰 등이 있었다. 이들 지역은 세계에서도 인권문제가 크게 문제되는 곳이지만, 동시에 다른 나라 언론이 거의 접근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일본의 언론에서 이들 지역을 이만큼 자세하게 르포한 데는 없다. 그것을 <한겨레21>은 단 한번의 호에서 전부 취급하고 있었다. 나는 감탄했다. 딱딱한 기사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 초밥의 역사, 영화감독이 자신이 영화를 찍은 장소를 안내하는 재미있는 기획도 있다. 이 정도면 독자들도 재미있어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뒤에는 낱말맞추기 퀴즈까지 있었다. 독자들에게 얼마나 성의를 다하는가를 느꼈다. <한겨레21>의 편집방침은 ‘분노와 감동’이라고 한다. 예리한 비판으로 새롭고 밝고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확고하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편집방침이 있기 때문에 기자는 철저하게 취재하고 독자는 마음으로부터 신뢰를 하는 것이리라. 실제 <한겨레21>은 창간호부터 꽤 오랫동안 당시 권력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비판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철저하게 싸우는 자세를 거기에서도 볼 수 있다. 창간 당시의 고영재 편집장(현재 <한겨레> 편집국장)도 만났다. 창간 1년만에 흑자를 내란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했다. 도저히 불가능한 임무였으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의욕이 생겼다고 했다. 또 컴퓨터를 도입한 잡지 만들기는 한국에서 처음이었다고 했다.
나는 왜 슬퍼지는가
<한겨레21>은 그 뒤 2000년 4월27일호에 베트남 특집을 했다. 베트남전쟁 때 한국해병대가 베트남 농민을 학살한 것을 당시 중대장의 증언을 통해 고발한 기사였다. 실은 나는 98년 3월 일본 NGO인 피스보트가 주재한 아시아의 배여행으로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한국군이 베트남의 주민을 학살했다는 증언을 들었다. 그런 이유로 <한겨레21>의 특집호를 흥미깊게 봤다. 김종구 편집장에게 베트남 특집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창피한 과거를 명백하게 드러내 가해자로서 사죄를 청하고, 새로운 출발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작업입니다. 사죄를 통해 미래의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일본에는 지금도 ‘종군위안부’에 대해 사죄하려고 하지 않는 추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베트남 특집을 보면서 또 한번 놀랐다. 이 특집호가 나온 것은 한국의 총선거가 끝난 때였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총선거의 특집을 꾸미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일본의 언론은 그렇게 한다. 그것에 대해 김 편집장에게 물으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거결과가 커버스토리가 될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음 주로 예정돼 있던 베트남 기사를 한 주 앞당겼습니다.” 일본의 언론이라면 그렇다 하더라도 우선 선거 특집을 할 것이다. 그러나 편집장은 “다른 잡지가 선거로 나온다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독창적으로 다른 잡지와 다른 관점에서 일을 하는가 어떤가가 승부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자세야말로 <한겨레21>을 활력있게 하는 근원이 아닌가. 결코 안이하게 타협하지 않고 항상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지향해가고 있다. 이 자세가 변하지 않는 한 <한겨레21>은 시대의 바람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김 편집장은 헤어질 때 이렇게 말했다. “정말 어렵게 발버둥치면서 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렇다. 이 정도의 잡지를 쉽게쉽게 만들 리가 없다. 성공의 뒤안에는 편집부원들의 피가 스민 듯한 노력이 있는 것이다. 잠을 못 자는 날도 많다고 들었다. 그 정도로 잡지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이 사회를 적어도 잘 되게 하고 싶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한겨레>에는 많이 있다. 그것이 분위기를 활력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일본의 시사주간지를 보면 나는 슬퍼진다. 나 자신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에라>의 창간 멤버였다. <아에라>가 창간된 것은 1988년 5월로 <한겨레>의 창간과 같은 해이다. 때문에 <한겨레>에는 라이벌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아에라>가 지향한 것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었다. 편집부원이 정해져 처음 편집회의를 할 때의 흥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부터 발간까지 우리는 매일 새벽 4시까지 토론을 하곤 했다. 토론 때는 철저하게 토론을 하고, 상사라 해도 비판할 것은 가차 없이 했다. 일본사회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려고 모두 정열을 쏟았다. 실제 초기의 <아에라>는 재미있었다. 다른 미디어에는 볼 수 없는 르포가 풍부했고 역동적이었다.
<아에라>와 <주간 금요일>
이런 상황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 <아사히신문>의 전직 기자와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중심이 돼 만든 것이 <주간 금요일>이다. <한겨레21> 창간 5개월전인 1993년 11월의 일이다. 처음에는 세가 있었으나, 지금은 부수가 떨어지고 있다. 내용이 어렵고 읽기 불편하다고 한다. 실은 <싸우는 신문-한겨레의 12년>이란 제목의 한겨레 기사를 8회 연재한 것도 이 잡지다. <한겨레21>과 비교하면 전투성은 있으나 낙천성과 시대흐름을 잡는 감성 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의 성격의 반영인지도 모르지만 너무 진지해서 재미가 없다. 일본의 지식인은 너무 생각을 깊숙이 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이 예상과 달리 나타났다. <한겨레21>이 벌써 창간 7년이 됐다. 축하와 동시에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칭찬하고 싶다. 90년대를 리드해왔으나, 2000년대도 리드할 수 있을까는 또다른 문제다. 정보기술의 급속한 진행으로 미디어의 재편이 진행되고, 잡지의 역할에 대해서도 재검토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제까지와 같은 입장을 취하면 버림을 받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가지 말고 시대를 앞서가는 감성과 모험을 또 한번 기대해본다. <주간 금요일> 등 일본잡지 및 프랑스의 주간지 <르몽드 디플로매틱> 등과 기사를 교환해 싣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글로벌시대를 맞아 다른 사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선한 발상과 행동으로 연결되리라 생각한다.
이토 지히로(伊藤千尋)/ 아사히신문 기자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