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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우중 체포, 멀지 않았다 체포결사대 3인이 프랑스에서 보낸 열흘… (주)대우 현지법인의 도피지원 사실 확인
무엇보다 경찰병력이 대우자동차를 장악하고 연일 화염병이 등장하는 격렬한 항의시위가 계속되는 비상한 상황에서 프랑스로 간다는 것이 나를 비롯한 유만형(대우자동차 해고자), 박점규(민주노총 조직차장) 동지 등 세명의 체포결사대원의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파업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한 김대중 정부의 폭력성을 세계에 알리고, 체포결사대의 활동이 국내에서 투쟁하는 대우자동차를 비롯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이라고.
숱한 난관을 뚫고 드골 공항에 도착
그러나 비행기 이륙과 함께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내리는 순간에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우리 세명의 체포결사대원은 굳은 각오와 결의를 다지면서 붉은 머리띠와 김우중 체포 현수막을 고쳐 맸다. 그러나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내내 괴롭히던 그 불안감은 기대로 뒤바뀌었다. 공항을 가득 메운 프랑스 언론사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고 인터뷰를 하며 ‘이번 활동이 뭔가 큰 반향을 불러올 것’이라고 직감한 것이다. 공항에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로 잘 알려진 홍세화 선생뿐 아니라 프랑스 신자유주의 반대노동자·시민단체의 연대활동을 조직해오던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ATTAC)의 피에르 루세와 노동총연맹 가운데 하나인 연대단결민주(SUD)의 베르벤 여사를 비롯한 프랑스 활동가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뜨겁게 우리를 환영했다. 특히 ATTAC는 우리를 위해 파리 외각에 18평짜리 허름한 아파트까지 마련해놓고 있었다. 비록 아침 저녁은 라면으로, 점심은 길거리에서 샌드위치로 때웠지만 그들의 배려 덕에 우리는 10일 동안 그곳을 근거지로 방세 걱정없이 의욕적인 활동을 벌일 수 있었다. 프랑스 언론의 반응은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프랑스 <국영2TV> <국영3TV>를 비롯한 여러 언론매체의 인터뷰가 쇄도했다. 때로는 인터뷰 약속이 겹쳐 우리 세명의 결사대원이 각각 다른 언론사를 상대로 인터뷰에 응해야 할 정도였다. 홍세화 선생조차 무척 놀라워했다. 그는 “얼마 전 엘프라는 석유회사의 부회장인 알프레드 시르뱅이 공금횡령 혐의로 4년간의 도피생활을 하다 체포되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과 95년 프랑스 톰슨전자를 대우가 단 1프랑에 사들이려다 전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실패한 일 등이 프랑스 언론이 체포결사대를 주목하는 이유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주요언론과 인터뷰 등 홍보활동을 벌인 우리는 파리 도착 3일째인 2월25일부터 본격 활동에 나섰다. 한국 정부의 노동자 탄압과 김우중 체포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플래카드와 피켓, 유인물을 들고 거리로 뛰어든 것이다. 약간의 어색함과 함께 두려움이 다시 엄습했다. 그러나 생라자르광장, 라데팡스역, 인권광장 등을 돌면서 마주친 프랑스 국민들의 반응은 오히려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전철을 타면 먼저 악수를 청하며 “유인물을 달라”고 했다. 길 건너편에서는 “코레”(한국)를 외치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에게 다가와 “여러분을 지지한다”고 연대의 정을 표시하거나 “꼭 김우중이 잡혔으며 좋겠다. 힘을 내라”며 모금함에 돈을 넣는 파리 시민들도 줄을 이었다. 몇몇 시민들은 “아직도 한국 정부가 그렇게 노동자를 탄압하느냐”면서 우리가 전시하고 있는 사진과 선전물을 유심히 쳐다보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 봤다. 여러분의 정의감에 공감한다”며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적지않았다. 함께 거리활동에 나선 프랑스 노동단체 관계자들도 시민들의 이런 반응이 “뜻밖”이라며 “우리도 앞으로 기업주가 부도 내고 도망치면 잡으러 가야겠다”고 한수 배웠다는 태도를 보였다.
잊을 수 없는 파리 시민의 깊은 연대
우리는 프랑스 언론과 파리 시민들의 성원과 관심에 힘을 얻어 에펠탑 앞 거리 선전전(2월27일),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 면담 및 집회(28일),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노동기구에 한국정부 제소(3월2일) 등으로 활동 범위를 점차 넓혀갔다. 프랑스 언론의 관심도 더욱 증폭됐다. <카날 플러스>와 <르몽드> <리베라시옹> 등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매일 우리를 취재하겠다고 찾아왔다. 특히 멕시코의 유력 시사주간지인 <프로세소>(PROCESO)의 파리특파원은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멕시코의 사회운동가들도 당신들 활동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취재를 요청했다. 우리는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 덕을 톡톡히 보면서 소중한 활동 성과물을 하나둘 축적해갔다. 그 첫 성과는 유럽연합 의회 의원이자 인권위원회 담당자인 알랭 크리뱅 의원과의 면담에서 나왔다. 2월27일 오전 체포조를 만난 알랭 크리뱅 의원은 “유럽연합 의회 차원에서 유럽 정부에 김우중씨의 입국금지를 요청하고, 3월12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정기의회에서 한국 정부의 노동자탄압에 대한 공식 항의서한을 채택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우리가 원한다면 유럽의 사회당, 사민당, 녹색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공동 조사단을 결성해 한국에 보내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한편 우리 활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던 ATTAC의 타르타코프스키 사무총장은 프랑스 판사노조와의 면담과 프랑스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권동맹 소속 변호사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발벗고 나섰다. 2월27일 오후 판사노조와의 면담도 우리에게 자심감을 심어줬다. 판사노조 사무실에서 우리를 만난 울리히 샬클리 대표와 에버린 쉬레 마린 사무총장, 에릭 알트 국제담당 판사 등은 “대우그룹 사태의 최대 희생양인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그들은 “소속 판사들의 연대서명을 통해 한국 정부의 노동자 탄압에 대한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한국 정부가 인터폴에 수사협조를 요청하면 프랑스 현지에 있는 김우중씨의 재산을 추적해 확인하는 일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국제인권연맹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는 인권연맹 차원에서 한국에 조사단을 파견, 한국인권단체들과 공동조사를 벌인 뒤 그를 토대로 유엔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에 정식으로 한국 정부를 제소하겠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 등 4만프랑 모금 결의
이런 활동과 프랑스 언론, 파리 시민의 성원은 리옹에 있는 인터폴 사무총국까지도 움직였다. 우리 체포결사대원은 파리 도착 때부터 인터폴 사무총국과 접촉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당시 우리 정부와 검찰은 인터폴에 공식적인 수사요청도 않는 등 김우중씨 체포를 위한 어떠한 실제적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국민들도 “김우중을 안 잡는지, 못 잡는지 모르겠다”고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해명하고 싶었다. 더욱이 인터폴 사무총국과 면담이 성사되면 김우중씨를 체포하지 않을 수 없는 국제적, 국내적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터폴 사무총국은 며칠 동안 우리의 면담 요청에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대대적인 언론보도로 여론의 압력이 거세지자 파리 도착 8일째인 3월2일 마침내 인터폴 사무총국에서 반응이 왔다. 레이먼드 켄달 인터폴 사무총장의 전격 지시로 이날 정오에 인터폴 총국에서 결사대를 면담하겠다는 통지문을 전달해온 것이다. ATTAC 등 프랑스의 많은 진보적 노동·사회단체들은 “인터폴이 정부 관계자나 사법경찰이 아닌 민간단체와의 만남을 가진 전례가 없었는데 한국에서 온 체포결사대가 전 유럽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기 때문에 공식면담을 받아들였다”고 기뻐하며 “프랑스 사람들은 물론 인터폴 요원들조차 놀라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프랑스 방송사들도 주요 뉴스로 면담소식을 크게 보도했고, <국영3TV>는 첫 기사로 3분을 할애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공식면담에서 우리는 “한국 정부가 공식적인 수사협조 요청을 했는지”를 집요하게 물었다. 사무총국 관계자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공식면담이 3월8일 우리 정부가 김우중 전 회장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인터폴에 공식수사협조를 요청하는 결정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니스 별장 전화세를 대우가 대고 있다니…
우리는 정중히 초인종을 눌렀다. 별장을 관리하는 프랑스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긴 김우중 별장이 아니다. 이미 팔렸다. 난 김우중을 모르고 김우중은 여기에 없다. 들어올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인터폰을 막무가내로 끊어버렸다. 그러나 통신노조를 통해 별장 전화세를 (주)대우의 현지법인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한 우리는 관리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다시 10여분 동안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전혀 반응이 없었다. 대우차 해고노동자인 결사대장인 유만형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 집은 대우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쌓은 재산”이라고 울부짖었다. 순간 내 눈에서도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주저없이 다음 행동에 돌입했다. 대문에 “이곳은 대우노동자의 집입니다”라고 적힌 ‘압류’ 딱지 200여장과 함께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라고 적은 붉은 띠를 둘렀다. 그래도 좀체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다. 우리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별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담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스 경찰특공대가 완강하게 가로막았다.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김우중을 잡기 위해 유럽땅까지 왔는데…. “김우중을 구속하고 도피재산 환수하라”, “김우중 잡지 않고 노동자 정리해고 웬말이냐”는 구호와 함께 우리는 1300만 노동자와 국민이 분노를 담아 계란 100여개를 대문을 향해 던졌다. 그렇게 1시간30여분이 흘렀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분노를 삭이고 언론과의 인터뷰도 할 겸 부근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런데 뜻밖에 이곳에서 또다른 정보를 얻었다. 식당 주인이라는 30대 중반의 프랑스 여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도 한국인 운전기사가 와서 식료품을 사갔다”고 전했다. ‘김우중씨가 머문 흔적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우리는 계속 머물며 김씨를 추적할 것인지 귀국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다. 그리고 3월4일 프랑스 현지 교민들과 간담회와 <리베라시옹>과의 특별인터뷰를 끝으로 일단 활동을 접기로 결정했다. 프랑스에서의 성공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국내 여론을 다시 환기시키고, 3월7일 조업이 재개되는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에게 김우중씨를 반드시 체포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3월5일 오후 3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수십조원을 빼돌린 부정부패 사범을 잡지 않는 정부를 대신해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가 체포조가 돼 머나먼 이국에서 떠돌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김우중과 같은 중대범죄자의 행방조차 모를 정도로 무능한 정부, 어쩌면 알고도 정치적 부패고리가 드러날까 두려워 안 잡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됐다.
2차 체포결사대 파견해 그를 잡겠다
그러나 나는 프랑스에서의 열흘이란 짧은 활동을 통해 김우중씨는 반드시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일단 우리 활동으로 김우중씨는 프랑스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직접 나서 국제적인 협조를 요청하고 인터폴 등과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면 오히려 못 잡는 게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저녁을 라면으로 떼우며 달려온 열흘간의 활동으로 몸무게가 3kg이나 빠졌다. 유만형 단장과 박점규 동지도 상당히 지쳤다. 하지만 우리 체포결사대는 김우중씨가 체포되는 그날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할 것이다. 이번 1차 출국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김우중씨를 체포하기 위한 2차, 3차의 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다. 이미 대우자동차공동투쟁본부와 민주노총 등이 2차 체포결사대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끝으로 체포결사대의 활동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무시해온 국내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크나큰 실망을 감출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하고 싶다. 물론 우리 체포결사대의 활동을 마음속으로 지지·성원해준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황이민/ 민주노동당 기획국장·대우자동차공동투쟁본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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