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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사랑한다면 달러를 팔자 러시아 젊은이들이 제안한 ‘골리앗 미국을 쓰러뜨리고 이라크 침략의 방조자가 되지 않는 길’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시작된 지 이미 몇주가 지났다.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했듯 전쟁은 미국 침략에 대한 민중적 저항의 성격을 띠게 됐다. 후세인 독재정권 아래 소외당해온 남부의 시아파나 후세인으로부터 오랫동안 박해받아온 공산당 지지자들도 반후세인이 아닌 반미항쟁 대열에 합류했다. 후세인이 만들어낸 기형적이며 억압적인 개발독재 국가가 반민중적이지만, 미국에 의한 재식민화와 석유자원의 약탈은 그것보다 민중에 더 치명적인 ‘역사의 막다른 골목’이라는 사실을 그 반대자들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이라크인 입장에서 지금의 전쟁은 1919년 반영(反英) 독립운동, 그리고 괴뢰 친영(親英) 왕권을 타도한 1958년 혁명의 계승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국제적 문맥을 살펴보면 또 다른 의미가 보인다.
‘알카에다’보다 위험한 친유로화 반란
그렇다면 침략의 진정한 동기는 무엇인가 물론 석유자원 획득과 중동에 대한 군사적 제패가 중요한 동기다. 그러나 그 이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 있다. 이라크는 2000년부터 석유 수출 등의 일체 대외 거래를 달러에서 유로화로 전환했다. 이것은 다른 자원 수출 국가의 대외 거래 화폐의 선택에도 큰 영향을 준 결정이었다. 러시아와 같은 석유·가스·목재의 주요 수출국이 대외 거래를 이미 유로화로 결제하는 상황에서, 알제리·리비아·베네수엘라 등도 달러 사용의 폐기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북한이 달러 대신 유로화를 주요 대외 결제 화폐로 정한 것도 이와 같은 세계적 경향을 반영한다. 이라크가 달러를 배격한 바로 그 시점부터 미국의 이라크 공격 계획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일개 제3세계 국가가 기본통화로서의 달러를 팽개쳤다고 해서 미국이 군대까지 움직이겠는가라는 회의론이 나올는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적인 유로화 강세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달러 남발이 뒷받침해주는 미국의 경제가 일촉즉발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례 경상수지 적자폭이 이미 국민총생산의 5%에 이르며, 국가의 재정적자가 3천억달러에 이르는 등 미국 국민은 실제로 벌어들인 돈의 훨씬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이와 같은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상황에서 그래도 아직 파산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세계 최대 제국의 화폐인 달러가 세계적 기본통화 위치를 점하고 있는 관계로 추가적 달러 남발을 통해 적자를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세계에서 약 절반의 수출입 거래가 달러를 기준으로 이뤄지고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 외환보유고의 3분의 2가 달러다. 그러나 국제금융계에 대한 유럽연합의 영향력 강화는 미국의 이와 같은 ‘제국의 잉여소득’(imperial premium)을 크게 위협한다. 사실 이라크가 선두에 선 제3세계의 ‘반달러 친유로화 반란’은 미국에게 1천개의 ‘알카에다’보다 더 위험하다. 만약 달러가 유로화에 밀려 가치가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20~30% 정도로 평가절하된다면, 미국의 국채와 증권에 투자된 엄청난 외국돈이 빠져나와 미국이 드디어 국가 파산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라크의 유로화 선택이 미국의 침공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일각의 러시아 국제금융 분석가들이 쓰는 표현은 “지금 이라크에서 달러와 유로화가 전쟁을 치른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뉴욕과 프랑크푸르트, 파리의 금융가 사이에서 치러지고 있는 이 전쟁에서 달러가 뭔지 유로화가 뭔지 모르는 어린 아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라크 시민들이 이유 없이 침략군의 폭격과 포화에 죽어간다는 사실이다.
‘달러 사재기’는 이라크 학살 지원
동시에 미제 맥주나 담배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중동에서는 불매운동의 결과로 맥도널드 등의 매상고를 약 10~20%로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 일각의 활동가들이 침략전쟁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달러에 직격탄을 날리기로 했다.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자, 달러를 팔자”(http://www.sell-dollars.com/rus/index.html)라는 주제의 사이트에서, 그들은 “달러 사재기는 미국의 이라크 학살의 재정적 지원이다”라고 설명한다. 미국의 천문학적 경상수지 적자가 메워지기 위해 하루에 10억달러어치의 미화와 국채가 외국에서- 상당부분은 러시아와 같은 신흥시장에서- 팔려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재원들을 막아야 미국이 이라크와 같은 ‘반달러 정권’을 더 이상 징벌할 만한 재정이 없어진다는 것이 사이트 운영자들의 분석이다. 철저하게 자본화한 요즘 러시아의 젊은이들인 그 운동가들은 미제의 학살을 혐오하는 반전정신뿐 아니라 경제감각에도 호소하고 있다. 또한 2003년 1~2월에 유로화에 비해 6%나 떨어진 달러로 사재기해봐야 결국 본전도 못 뽑는다는 것이 그들의 경고다. 현재 러시아 국민이 은행이 아닌 자택에서 현금으로 갖고 있는 달러는 약 5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 달러를 유로화로 바꾸자는 운동이 본격화된다면 여파가 상당하리라 예상된다. 러시아의 경우 미국 침략에 대한 개인적 반대의지를 전국적 규모의 “달러 팔자”로 표명해도 어렵지 않은 이유는 유로화로의 전환이 이미 대세기 때문이다. 러시아 대외 거래의 40%가 유럽연합을 상대로 이루어지는 반면, 미국과 이루어지는 거래는 8%에도 못 이른다. 외채·투자의 차원에서도 러시아는 미국이 아닌 독일과 프랑스에 종속돼 있다. 종합적으로 대유럽 의존성이 강한데다 최근 미국경제의 거품이 얼마나 큰지 언론보도를 통해 눈치챘기에, 이라크 침략이 없다 해도 러시아인들의 달러 보유 기피의 현상은 어느 정도 나타났을 것이다. 침략 개시 이전에도 러시아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율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 외환보유고도 달러가 주를 이루는데다 대미수출 비율이 20%나 되니 ‘달러 제국주의’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타격을 입히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경제 악화가 한국경제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행갈 때 달러 대신 유로화를
[참고 사이트] 1. ‘달러와 유로화의 전쟁’으로서의 이라크 침략에 대한 윌럼 클라크 교수(홉킨스 대학교)의 설명: http://www.ratical.org/ratville/CAH/RRiraqWar.html 2. ‘달러와 유로화의 전쟁’에 대한 또 하나의 설명(버클리대학교 스콧 교수): http://ist-socrates.berkeley.edu/~pdscott/iraq.html 3. ‘마약, 석유, 전쟁: 아프간, 콜롬비아, 인도차이나에서의 미국 간섭’- 미제의 대외전략을 해부한 스콧 교수의 신간저서 머리말: http://ist-socrates.berkeley.edu/~pdscott/dowpref.html 4. 이라크의 유로화로의 전환에 대한 기사:
http://www.rferl.org/nca/features/2000/11/01112000160846.asp 5. 미국상품 불매운동 사이트: http://www.adbusters.org/campaigns/boycott_america/ 6. 미국상품 불매운동의 또 하나의 사이트: http://www.boycottamerica.org/ 7. 러시아의 유로화로의 전환을 다루는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기사:
http://www.iht.com/articles/85238.html
박노자 ㅣ 오슬로국립대 교수·<아웃사이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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