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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상업화, 홀로코스트 이스라엘을 부자로 만든 상징상품… 왜 미디어들은 유대인 학살을 ‘유일한’ 것처럼 강조하는가
유럽인의 미주침략과 비교해보라
이는 세계사에서 전대미문의, 미증유의 사건이라는 전제, 인류가 저지른 어떤 가혹행위와도 견줄 수 없다는 테제, 히틀러가 자행한 범죄 가운데서 가장 흉악하다는 주장 등을 업고 아무런 비판 없이 ‘기존 사실’로 받아들인다. 어릴 때부터 교과서와 영화 등의 매체로부터 주입된 홀로코스트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외경(畏敬)도 한몫하지만, 홀로코스트에 대해 그 뜻을 약간이라도 상대화시키는 듯한 기미를 공석에서 보이면 곧장 ‘홀로코스트 부인주의자’(Holocaust-denier)의 딱지를 지닐 수도 있다. 딱지가 붙으면 더 이상 학술·대중 매체에서 발언권을 갖기가 힘들다. 마치 중세 유럽의 지식인들이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예리한 발언으로 독신죄(瀆神罪; 기독교의 신을 모욕하는 죄목)에 걸려 사회로부터 ‘출척’(黜陟)당한 전근대적인 현실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미국의 ‘주류’ 교과서와 각종 매체들이 주입하는 것처럼, 제2차 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이 정말 “세계사의 전대미문의, 유일한, 무비의 대형 범죄”였을까 물론 제2차 대전 때 유대인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학살은 특출하게 끔찍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500년 동안 유럽 절대왕권과 자본주의 국가들이 비(非)서구권에 대해 저질러온 학살은, 제2차 대전 때 유대인의 비극을 훨씬 뛰어넘는 경우들이 많다. 유럽인들이 미주대륙의 토착인구에 쓴 무기와 이들을 노예화한 것, 그리고 새로운 유행 질환과 알코올에 의한 대학살이 그 예다. 500년 전 유럽인들이 미주를 침략할 즈음, 현재의 미국 영토에서 약 1500만∼2천만명의 인구가 살았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인디언 인구는 약 25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토착인구가 거의 70∼80배로 줄어든 배경에는 수많은 계획적 학살과 강제 퇴거, 새로운 유행병에의 노출과 각종 학대가 있었다. 인디언 종족섬멸(estermination)이 처음부터 미국 정책의 목표였다는 것은, 학계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보다 오랫동안 더 많은 희생자를 낸 인디언 학살의 역사야말로 더 큰 주목을 받아 배상과 사과 등의 조치로 바로세워져야 되지 않을까 그러나 사과와 배상은커녕 인디언 학살에 대한 언급조차 ‘주류’ 매체에서는 찾기 어렵다.
무시된 집시와 공산주의자의 아픔
유대인 학살을 이토록 신성화시킨 배경에는 미국인의 인종주의적·반공주의적 사고의 패턴과 함께, 무엇보다 실리 계산이 깔려 있다. 인디언이나 집시에 대한 각종 차별이 아직까지 심하고, 공산주의가 아직까지 ‘주류사회’에서 악마시(惡魔視)되는 마당에, 그들에 대한 범죄를 ‘세계사의 최악의 학살’로 지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인디언은 적지 않은 배상요구까지 뒤따를 수 있기에 보통 껄끄러운 문제가 아니다. 이와 달리 대부분이 현재로서 ‘백인 중산층’으로 간주되는 유대인들이야말로 ‘모범적인 희생자’(model victim)의 역할을 맡을 만한 적임자가 아닌가 그들에게 배상을 지불하는 쪽이 미국이 아닌 독일이라는 사실도 작용한다. 노르만 핀켈슈타인(Norman Finkelstein)이라는 뛰어난 미국 유대인 학자가 보여주듯 유대인들을 ‘가장 존중돼야 하는 희생자’(the worthiest victim)로 만드는 데서는 유대인 로비의 힘도 크게 작용했다. 유대인 로비단체들은 홀로코스트의 신성화로 큰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핀켈슈타인의 2000년도 베스트셀러 <홀로코스트 산업>(The Holocaust Industry)에 따르면, 1967년까지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세계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대인 거부(巨富)들이 소유하는 매체에서조차 홀로코스트를 ‘역사상 최악의 비극’으로 만들 시도를 하지 않았다. 수많은 나치 범죄자들을 처벌하지 못한 서독과 미국의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저항 없이 수용소에서 죽은 희생자들을 ‘나약한 비겁자’로 보는 당시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적 통념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7년의 ‘6일전쟁’에서 전체 아랍권을 군사적으로 제압할 능력을 발휘한 이스라엘이 그해 이후에 미국의 가장 가까운 맹방이 되자, 유대인 계통의 매체에서 홀로코스트 이야기들이 대량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유대인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계 최악 비극의 희생자’로 묘사해야만, 세계 최악인 이스라엘의 인권침해 경력에 대한 비판을 막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 로비단체들의 탐욕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들로서 ‘홀로코스트 산업’의 모독적인 비극의 이용에 분노해 이 같은 ‘성역깨기’에 나선 핀켈슈타인의 여정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국제적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저서는 미국 매체에서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거나 ‘반유대주의적 서적’으로 취급받아, 자신이 근무한 뉴욕의 한 대학교에서의 직장을 잃기도 했다. 유사 근대적 사회에서, 그가 말 그대로 ‘이단’으로서 ‘출척’을 당한 셈이다. 그러나 수없는 역경이 있음에도 그는 당당하다. 그가 ‘홀로코스트 산업’의 진실을 이야기한 것은 오랫동안 매체와 교육이 만든 성역에 눌리고 속은 세계인의 ‘정신적 해방’의 문제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롯한 현재의 온갖 학살 희생자들의 ‘권리찾기’ 문제이도 한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비극을 방패삼아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는 이스라엘의 만행을 저지하는 것이 그의 주된 목적이다.
<자료링크> >>핀켈슈타인 교수 사이트(http://www.normanfinkelstein.com/),>>미국의 홀로코스트 사이버 박물관(http:/www.ushmm.org), >>홀로코스트 역사교수 자료 사이트(http://fcit.coedu.usf.edu/holocaust/people/people.htm), >>홀로코스트 생존자 증언 도서관(http://www.remember.org/), >>홀로코스트 역사 포털 사이트(http://www.holocaust-history.org/), >>미술을 통해 홀로코스트 배우기(http://art.holocaust-education.net/).
박노자 ㅣ 오슬로국립대 교수·<아웃사이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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