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박노자 교수의 북유럽 탐험 | 등록 2001.10.31(수) 제382호 |
[박노자의북유럽탐험] 진짜 깡패국가, 사우디 상상하기 힘든 ‘멸균실’ 수준의 수구 왕권… 석유·무기 판매에 눈이 먼 미국은 눈을 감았다
지난 9월의 테러 참사와 이에 뒤따른 일련의 사건들은, 노르웨이 지식인사회에서 빈 라덴의 고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중동에서의 미국의 예속 국가(client state)인 사우디에서 빈 라덴과 같은 골수 반미주의자들이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지지기반을 가지는가, 사우디 등의 ‘석유왕국’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의 폭발적인 성장에 대해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과 같은 친미적인 정권이 사우디를 비롯한 ‘석유 왕국’들을 과연 오랫동안 지배할 수 있는가 등이 중요한 화두가 됐다.
노르웨이의 ‘석유왕국’ 논쟁
지금 노르웨이에서 이루어지는 이 ‘석유왕국’ 관련 논쟁의 중요한 자료 기반을 제공해주는 것은, 베르겐시(市)의 상업전문대학 산하 에너지연구소 주임교수인 오이스테인 노렝 (Oeystein Noreng)의 <석유와 이슬람>이라는 저명한 저서이다.( “사우디의 갑부인 빈 라덴이 왜 미국을 그토록 미워하는가?” 표면적으로 보면, 미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의 갑부 출신이 결사적인 반미주의자가 되는 것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노렝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사실상 미국을 떼어놓고 사우디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할 수조차 없을 만큼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리고 빈 라덴의 반미주의 세력 출현으로 상징되는 현재의 위기도, 결과적으로 미국의 사우디 정책 실패의 위기로 봐야 할 것이다. 알사우드 왕조를 중심으로 사우디의 부족들이 통일 왕국을 이룬 1932년부터, 신생 국가의 ‘보호자’ 역할을 그 당시의 중동의 패권 제국이었던 영국이 맡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세계의 새로운 패권자인 미국이 사우디를 ‘전략적인 관심지역’으로 지정하고 사우디 왕국을 실제적인 ‘보호국’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부터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군기지를 사용하고 사우디 군대의 훈련과 무기 공급을 거의 독점해온 미국은, 실제로 아라비아 반도에 대한 군사적인 통제권을 장악하게 됐다. 사우디 왕국 경제의 기간을 이루는 석유산업도 미국 재벌들의 통제하에 놓여져 있었는데, 아라비아 반도의 석유가 처음 탐사된 1930년대부터 일제 석유산업을 장악한 기업은 독점 이권계약을 따낸 미국의 액손 (Exxon)과 스탄다르트 오일(Standard Oil) 등의 합작회사인 알암코 (ARAMCO; Arabian American Oil Company)였다.
세계 최고의 미국 무기 구입자
알암코가 사우디에 의해서 국유화된 1988년까지 세계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산업은 실제로 미국 대자본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었다. 대신 나라의 살림을 관리하다시피한 미국 자본은 예속 왕조와 부족 귀족층의 호화판 생활을 보장할 만한 로열티를 지불했다. 그 로열티의 일부는 대규모 공사 계약을 따낸 한국 건설업체의 주머니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홀연히 세계적 갑부로 부상된 왕조의 주요 구입항목은 다름이 아닌 미국 무기였다. 1947∼91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약 6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각종의 미국 무기를 사왔다. 중동의 권위주의적 정권 중에서도 정부 예산의 약 36%를 국방에 투자하는 사우디는 국제적으로 ‘군국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걸프전쟁 이후 1995∼97년간에 130억달러 상당의 미국 무기를 사들인 사우디 왕국은, ‘세계 최고의 미국 무기 구입자’라는 명예(?)를 차지하게 됐다(참고로 미국 언론이 ‘위험한 국가’로 분류하는 이라크의 군사 예산은 사우디 국방부 예산의 5분의 1도 되지 못한다). 노렝 교수의 말대로 사우디는 오랫동안 미국 석유 기업과 군산 복합체의 ‘황금알을 낳는 닭’이었다. 미국 자본으로부터 받는 석유 로열티를 다시 무기 대금으로 미국에다 바치는 ‘효자 정권’으로서, 사우디는 여러 예속 정권 중에서도 특출했다. 아랍 민족주의와 좌익·반제운동의 노도가 휩쓰는 50∼70년대의 중동에서 사우디와 같은 친미적 보수주의의 ‘오아시스’를 보존하기 위해, 가장 수구적인 세력과 경향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 지도층 사이에서 이루어진 판단이었다. 실제로 군사·경제·외교적으로 미국의 ‘보호국’ 신세였던 사우디는, 세계의 어느 친미적 예속 독재정권과도 비교가 안 되는 만큼 심한 수구적 노선을 취했다. 국회도, 정당도, 정치적 운동들도, 독립적 언론도, 노조도, 파업도 전혀 없는 사우디는 박정희나 전두환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멸균실’ 수준의 수구적 왕권이다. 후진성이 영구화된 이 ‘수구주의의 이상향’을 유지하는 것은 가공할 만한 억압 체제이다. ‘인권’의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우디에서는, 정부에 대한 비판의 한마디로 사람을 불구자로 만들거나 공개 참수하는 것이 다반사다. 최근 20년 동안 1200명 이상을 참수한 사우디의 사형수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민주와 인권의 보호자’를 자칭하는 미국은, 사우디의 인권문제에 대해 눈을 아예 감고 있다. 노렝 교수에 따르면, 천문학적인 석유·무기 판매 이득에 눈이 먼 미국은 바로 이 차원에서 치명적인 정책적인 오류를 범했다. 왜냐하면 민주적인 민의 수렴기구가 전혀 없는 왕국에서 높아져가는 불만은 결국 폭발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인기 모을 것”
1990년대는 알사우드 왕조에게 전체적 위기의 시기였다. 줄어드는 석유 소득과 인구 증가로 1인당 국민소득이 약 3배로 떨어졌고, 1990년 걸프전쟁 이후 7천명의 미군 주둔은, 사우디 주민들의 종교적·민족적 감정을 극도로 자극했다. 이슬람의 세계관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인 미군들이 이슬람의 성지 메카가 위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을 치고 주둔하는 것은 종묘·사직의 자리에 미국대사관이 자리를 잡는 정도의 심한 모독이다. 결국 여러 가지 불만요소의 결합체로서, 이슬람 원리주의운동은 급속히 인기를 모았다. 미국의 매체들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거의 ‘악마적인’ 광신주의로 서술하고 있지만, 노렝 교수는 군비 절감과 고가 외제 소비재를 즐겨 쓰는 지배층의 풍토 정화, 국부의 정당한 분배와 대미관계에서의 주권 회복,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운동을 ‘민중 요구의 상당부분을 반영하는 운동’으로 분석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좌익운동을 통해서 분출될 수도 있는 이와 같은 요구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종교운동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은, 종교 이외의 사회생활을 사실상 금지시켜버린 억압 정책의 당연한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우디 왕국의 억압의 결과로 민중의 요구에서 비롯된 이슬람 원리주의라는 종교적 운동도 제 소리를 전혀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결국 빈 라덴과 같은 급진적인 운동가들은 국외인 아프가니스탄으로 망명하여 최후의 수단인 테러를 사용하게 됐고, 대부분의 온건파 원리주의자들은 체포와 고문의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인기를 모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렝 교수의 예측에 따르면, 장기적으로는 원리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확실히 증가될 것이고, 그들에 의한 정권 탈환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노렝 교수의 결론은, 현상 유지를 위해서 사우디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은 미국의 ‘수구주의 지원’ 정책이야말로 사우디 반(反)정부 정치운동이 종교적·우파적 색채를 띠는 결정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많은 노르웨이 지식인들에 따르면, 원리주의가 득세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서방쪽이 ‘테러’(원리주의)와의 전쟁 대신에 진지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미군주둔, 고가 무기의 대량 판매와 같이 원리주의자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미국의 정책이 재고·수정되지 않는 한 차후의 테러 위험이 어차피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바로 이와 같은 판단은 노르웨이 지성인들의 반전운동에 하나의 정책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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