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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인종의 식민지는 계속된다 [아시아네트워크 | 채팅아시아]
아시아 해방의 달에 생각해보는 각국의 민족주의 언어정책… 소수자들이 고민과 분노를 나누다
채팅 참가자 : 쉬린(인디아계 말레이시아인), 카이루딘(아랍계 싱가포르인), 린치웨이(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채팅방 주인 : 유니스 라오(Eunice Lau) 채팅 날짜 : 2003년 8월6일 유니스 : 아시아 네트워크 채팅방에 오신 모두를 환영합니다. 8월15일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이고 그로부터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식민지 상황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죠. 그러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아시아 각 나라들이 지독한 민족주의로 무장하면서 사회 내부 소수인종들이 박해를 받는 새로운 식민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오늘 참여자들이 모두 이른바 ‘소수’들이니 여기 채팅방에서 마음껏 자유를 구가해봅시다. 특히 언어와 문화 같은 걸 중심에 놓고 경험들을 나눠보았으면 좋겠어요.
당신 국가의 언어정책을 인정하는가
치웨이 : 난 뿌리 없는 중국인, 문화적 정체성 같은 게 없는. 학창시절부터, 내가 중국인임을 드러내면 비난을 받았으니. 인도네시아인일 때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지. 쉬린 : 난 인디언이지만 (타밀) 영어와 말레이어밖에 몰라. 영어를 마치 모국어처럼 사용해왔는데, 학교를 마치고 보니 좋은 직업에는 반드시 훌륭한 영어가 따라붙는 거야. 해외파들에게 ‘쨉’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지. 말레이어만 중요하게 다루는 학교에서 영어를 워낙 ‘개판’으로 배웠으니. 부모를 원망했지! 그렇더라도 인디아 유산은 자랑스러워해왔고. 카이루딘 : 난 아랍하고도 예멘 3세대인데 동남아시아에서 아랍어를 배운다는 일이 참 어려워.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말레이어를 모국어처럼 배웠고 무슬림이니 저절로 말레이인 싱가포르로 살아가고 있어. 유니스 : 지금 각자가 살고 있는 사회의 언어정책을 인정하는가? 쉬린 : 시스템 속에서 살아왔으니 크게 할 말은 없지만 말레이시아는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은 점은 불만스러워. 싱가포르를 잃어버린 것도 그런 배경이야. 말레이어만 강조할 게 아니라 영어도 중요하다는 뜻이야. 내 경우엔 집에서 영어를 쓰니까 비교적 행운인 셈이지만. 치웨이 : 인도네시아 언어정책, 절대로 인정하지 못해.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살려면, 나와 다른 문화, 언어, 인종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건, 만약 한 정부가 책임 있는 시민을 강조한다면, 그 시민들의 문화, 인종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지. 사회란 건 ‘오케스트라’ 아냐? 모두 바이올린만 연주한다면 어떻게 음악이 나오겠어? 유니스 : 거, 기막힌 표현이네! 그럼 당신 부모세대에게는 그런 언어정책이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가령 직업을 구한다든지 하는 데 어려움 같은 건 없었을까? 쉬린 : 전체는 잘 모르지만, 양쪽 말에 다 정통했던 우리 부모에게는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애. 영국 식민 시절 영어가 잘나갔으니. 카이루딘 :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영어를 썼다니 우리쪽에도 별 문제가 없었고. 할아버지가 식민통치 시절 법원 영어 통역자 노릇을 했으니, 그 시절에는 괜찮았다는 건데 문제는 해방되고부터야. 말레이어가 서툴다보니 결국 말레이시아쪽에서는 살 수 없었던 거지. 치웨이 :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인들은 개인 사업을 하거나 외국 기업들과 연을 대면서 살았지. 우리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어도 할 수 있고 또 개인사업을 했으니 별로 영향이 없었다고 해. 중국어 사용금지가 중산층 위로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어차피 중국인들이 정부 관리로 진출하는 경우도 없었으니. 유니스 : 가령, 말레이시아에서는 오히려 말레이어 우선정책으로 영어를 못하는 말레이계 사람들이 직업을 갖는 데 오히려 손해보는 역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쉬린 : 사실이야.
아, 그 지겨웠던 학창시절!
카이루딘 :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해봐. 왜 말레이계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영어를 못할까? 근데 문제는 단순히 언어정책 탓만이 아니라는 거야. 거꾸로 중국인은 말레이어를 곧잘 하는 걸 보면. 이건 부미푸트라 정책- 말레이계에게 모든 분야별로 특권을 주는- 의 결과가 아니겠냐는 거야. 그런 정책이 말레이계의 의식이 되어버린. 쉬린 : 사실은 말레이계에게는 모든 게 쉬워. 권력과 정치적 도구인 언어에서부터 말이야. 그러니 힘들게 일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거지. 카이루딘 : 우리 부모는 싱가포르가 찢어져 나온 뒤로는 말레이시아에 가질 않아. 바로 그 ‘말레이시아 의식’ 탓이야. 우리 아버지는 마하티르 총리의 개혁정책 지지자였지만 그 극단적인 민족주의인 ‘말레이시아화’ 정책에는 반대했다고 하더군. 유니스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양쪽 정부 모두 사기쳤던 거지 뭐. 말레이시아는 스스로에게 말레이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 미래가 보장된다고 했고, 싱가포르는 말레이어를 거부한다면서 대신 영국 표준말을 빌렸으니. 둘 다 모두 극단적이긴 마찬가지 아냐? 쉬린 : 헤헤헤… 맞는 말이야. 그러면서 둘 다 극단적인 서구화를 시도했으니. 치웨이 : 물 논쟁이 좋은 예잖아.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떠벌리면서도 그깟 물 문제 하나 풀어내지 못하는 걸 봐. 말레이시아는 감성적인 말레이 용어를 쓰고 싱가포르는 딱딱한 표준 용어를 쓰니. 유니스 : 아무튼 어떤 말을 쓰든 간에, 당신들은 지금 각자 정부의 융통성 없는 언어정책 탓에 소수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인가? 쉬린 : 예스 마담! 난 그냥 2등 국민이야. 아니 3등 국민. 정부는 말레이계나 오랑 아스리(원주민)가 아닌 내게 아무런 지위를 주지 않으니. 이런 판에 중국인들은 섞여 살아보겠다고 엄청나게 애를 쓰고 있다지? 인디언들은 농담밖에 몰라. “다 밀어내거나 아니면 우리가 떠나자.” 아니면 떼돈을 번 뒤 다른 나라로 가서 살자고. 카이루딘 : 학교에서는 진짜로 힘들었어. 지지 않으려고 공부했던 기억뿐이야. 아직도 학창시절만 생각하면 치가 떨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어. 한놈이 내게 했던 말인데 들어볼래. “넌 내가 본 말레이 중에 가장 잘생겼어. 말레이는 너처럼 잘생긴 경우가 드물어.” 쉬린 : 아, 그 지겨웠던 학창시절. 죽고 싶었어! 치웨이 : 지금은 정부가 중국어 사용금지 정책을 버렸지만, 그 전에는 차별이 극심했지. 난 영리해서, 그 차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뿌리를 강하게 키웠어. 하하하! 대학시절 논쟁이 벌어지자, 한 친구가 대뜸 하는 말이 ‘중국으로 꺼져라’였어. 그 길로 말 다했지, 뭐!
한국의 영어공용화론에 대한 생각
유니스 : 참, 말이 난 김에 하나 물어보자. 언어정책이라고는 필요도 없는, 수천년 묵은 전통어 하나만으로 통일된 국어를 사용해온, 그래서 복에 받쳐서 그러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사회에서 일부가 심심찮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자는 말들을 하고 있는가 본데, ‘소수’들인 당신들 생각은? 치웨이 : 세계시민으로서 교류하자는 의미 같은데 문제는 뿌리와 조화겠지. 그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라는 게 어때? 다양한 언어에 다양한 문화! 카이루딘 : 영어로 다 끝날 것도 아냐. 한 인종의 언어를 유지하면서 다른 쪽의 뿌리를 알자는 거지. 그런 면에서 영어만이 신앙이 될 수는 없어. 쉬린 : 영어를 하라고 해. 다만 우리들 유산을 잃지는 말고. 유니스 : 그럼 당신들은 그 유산을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인가. 비록 당신 정부가 일방적인 언어정책을 구사하고 있지만? 쉬린 : 완벽하진 않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고 여겨. 카이루딘 : 언어정책은 내 유산에도 정확하게 영향을 끼쳤다고 봐. 말레이어 강도를 낮추며 영어를 ‘주어’로 쓰게 되면서부터 학교에서 영어로 된 식민지 버전의 영어 역사를 배웠는데, 마치 외국 역사를 배우는 기분이었으니. 요즘 말레이로 된 역사책을 다시 보니 말레이시아 역사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살아나는 거야. 해서 지금 아랍 역사를 공부하는 중이지. 쉬린 : 그건 정말 중요한 부분 같아! 유니스 : 화제를 좀 옮겨볼까. 부모님들은 식민지 시절이 어땠다고들 해 2차대전 뒤 해방되고부터 시절과 비교해서. 쉬린 : 지금보다 훨씬 나았다고들 하던데. 카이루딘 : 특히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인디언과 아랍인들에게는 그랬다고들 하지. 쉬린 : 예를 들면 우리 이모 할머니들쪽은 인디아보다 영국쪽에 더 가까웠다고 여겼던 모양이야. 그이들은 요즘 같은 횡설수설 영어가 아니라 진짜로 본토 순종 표준영어를 했다는 거지. 이모들 가운데 둘은 서양인과 결혼까지 했으니. 그 다음 우리 극단적인 영국식 할머니, 쿠키와 케이크를 만드는. 그이들에게는 향수 같은 게 있음이 분명해. 카이루딘 : 우우우! 식민통치 시절 인디언들과 아랍인들은 요즘 말레이들처럼 잘 수용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 식민시절이 해방 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고! 유니스 : 어째, 그 말이 좀 이상하지 않나? 카이루딘 : 사실이야. 탈식민지 이후를 보면, 개인에게 집단에 대한 소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잖아. 말레이시아 역사를 살펴보면 요즘처럼 개인이 어떤 땅에 소속 당해 있다는 강박감이 전혀 없었어. 치웨이 : 중국인들도 식민시절 큰 역할을 했다고 하지. 식민통치 당국이 원주민들을 하급인간으로 분류해버렸으니 자연스레 중국인들이 대우를 받았던 모양이야. 난 절대 인정하지 못하지만, 일부 중국인들 사이에는 식민시절이 더 좋았다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야. 사람이 뭐겠어? ‘평등’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그나마 동물들 사이에서도 체면이 서는 것 아냐? 식민통치가 좋았다고 믿는 이들은 그게 누구든 독립 인도네시아에 살 자격이 없다고 봐. 자유를 삶의 편리와 물질로만 따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어. 내 말이 너무 길었나? 유니스 : 쉬린, 그래서 식민통치가 끝난 뒤에는 그 할머니들이 어떻게 되었어? 쉬린 : 세 할머니들은 외국으로 떠났고, 다른 한명은 남아 영어 선생이 되었지 뭐! 그건 언어 탓이 아니었어. 말레이시아가 독립해버리고 말레이 중심사회로 변했으니 어땠겠어? 아, 그러고 또 남은 할머니들도 비록 영어를 썼지만 그래도 말레이시아인이 되려고 노력했다고들 하데. 문제는 다만 말레이계가 아니라고 2등 국민으로 다루는 게 힘들었다는 거야. 유니스 : 부모님들 세대에 비춰 당신들이 더 강한 민족주의 의식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쉬린 : 난 전혀. 부모님들은 식민통치와 전쟁을 거친 말레이시아인이라는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들을 지니고 있는 듯해. 뭔가, 진짜 역사를 지녔다는 식으로. 우린 좀 다르지 않나?
식민주의자냐 민족주의자냐
카이루딘 : 난 좀 다국적주의자인 편이야. 부분적으로는 내 모습 탓인데, 생긴 게 말레이에서부터 중국까지, 또 파키스탄에서 인디아까지, 아랍에서 알제리까지 와글와글 섞인 듯하니 말야. 아랍어에 ‘사람은 그가 지닌 시간의 아들이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님은 그이들 시간의 아들이었겠지. ‘식민주의자냐 아니면 민족주의자냐’ 라는 식의 양자택일 사이에서. 쉬린 : 난 둘 다 아냐! 카이루딘 : 우린 좀 다르지? 우린 잡동사니기도 하고, 정체성 사이에서도 오락가락 하는. 아랍 옷을 걸치고 서양음악을 들으며 아시아 밥을 먹잖아. 쉬린 : 맞는 말이긴 한데, 우리 세대는 더 혼란스러운 거 아냐? 우린 말레이시아인이라 믿으면서 말레이시아인처럼 행동하지 않는… 좀 별난…. 유니스 : 뭐가 말레이시아를 특징적으로 드러내줄 만한데? 카이루딘 : 히히히. ‘로작’ 아냐 (로작: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먹는 종합 과일 샐러드) 쉬린 : 아니, 들켰잖아! 카이루딘 : 자, 모두들 역사 공부 좀 합시다. 식민주의는 어땠고 민족주의는 뭔지를 놓고. 쉬린 : 그 지긋지긋한 공부! 유니스 저 사나이를 좀 말려줘. 카이루딘 : 왜, 내가 아랍계라서 싫다는 건가? 그러잖아도 이제 아들놈과 놀 시간이 돼서 이 몸은 떠날까 하는데 쉬린 : 아랍은 좋은데, 당신이 무서워요! 유니스 : 쉬린이 카이루딘을 무서워하고, 카이루딘이 아들 보러가야 하고, 한 15분쯤 전부터 치웨이는 통신불량으로 사라져버렸으니, 이제 마무리를 합시다. 쉬린 : 재밌었어! 바쁜 시간들 내줘서 너무 고맙고, 유니스 : 잠깐, 쉬린, 그건 내 마무리 멘트인데 카이루딘 : 근데, 우리가 떠들고 놀고 한 이게 정말 한국 잡지에, 그것도 시사주간지에 인쇄된다는 게 사실인가? 거짓말은 아니겠지? 진짜라면, 엄청난 일인데! 아무튼 모두들 안녕. 치웨이 : 끝났다고? 겨우 다시 접속해 들어왔더니! 유니스 : 그럼, 둘만이라도 밤새도록 이야기 나눌까요 치웨이 : 아, 그럴 수만 있다면! 아내가 지켜보고 있어서…. 유니스 : 긴 시간 동안 골치 아픈 주제를 놓고 인내심을 가져준 모두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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