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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의 반전과 성전 발리테러로 치명타 입은 무슬림 원리주의 세력에겐 새로운 기회
지난 3월20일 미군과 영국군이 이라크를 공격하고부터 자카르타는 가히 전쟁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지는 분위기였다. 만나는 이들마다 어김없이 전쟁 이야기를 화두로 꺼내들었고, 신문과 방송은 종일토록 전황 속보를 날렸다. 수백명에서 수천명씩 무리지은 시민단체들은 날마다 미국 대사관 앞에서 ‘징검다리 시위’를 벌여왔다. 그래도 아시아 반전운동의 심장부 노릇을 해온 자카르타 시민들은 뭔가 성이 차지 않은 듯했다.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유럽과 미국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반전시위를 바라보는 시민들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로 자카르타 정서를 대신했다. 그동안 종교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이미 몇 차례 대규모 반전시위 계획을 놓고 공수표를 날린 탓에, 3월29일 토요일 밤까지만 해도 연합시위 조정자격인 히다얏 누르와히드(번영하는 정의당 당수)가 기자들에게 밝힌 ‘최소 20만명’이라는 말을 곧이듣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3월30일 일요일 아침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 오전 8시가 지나면서부터 각종 깃발과 휘장을 앞세운 시민들이 인도네시아 호텔 앞 로터리를 빼곡히 메웠고, 10시 무렵 거대한 인파를 이루며 미국 대사관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찰과 시위조직이 각각 25만명과 100만명으로 다른 집계를 내놓았으나, 그 수치와 상관없이 사람으로 물결을 이룬 것만은 분명했다. 시위대는 유엔빌딩 앞에서 “무능한 유엔, 행동으로 사죄하라!”며 종전을 촉구했다. 그러고는 이어 미국 대사관 앞에서 “부당한 전쟁 즉각 중지!”를 외치며 미국을 성토한 뒤 일정을 마쳤다. 과연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다운 자부심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반전운동을 문화행위로 끌어올린 아침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반전 기운에 휩싸인 자카르타도 헤집어보면 반전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성가신’ 소리가 없지도 않다. 이슬람수호자전선(FPI) 같은 급진적 무슬림단체를 중심으로 ‘성전’을 외치는 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탓이다. 일주일 전 이슬람수호자전선이 성전 참여자를 공개 모집하면서부터 불붙은 논쟁은, 급기야 무슬림 온건주의를 대표해온 최대 종교단체 나흐드라툴 울라마(NU)의 외곽 치안대(Banser)가 지원자 파병을 내걸고 가세하면서 종교판과 정치판 양쪽 모두를 긴장시키고 있다. 나흐드라툴 울라마 본영에서는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치고 나섰지만, 조직 내 동부 자바 치안대 지도자 무스두키 토하는 “이미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1500명 조직원들을 반드시 이라크로 파견한다”고 밝혀 심상찮은 사태를 예고했다. 무슬림 논리로 내건 성전인데다,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에 대한 부당성을 시민들이 전폭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상태라 자원자 파견 문제가 호락호락 건드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데 정부와 종교단체 모두의 고민이 서려 있다. 이라크 전쟁은, 발리 폭탄테러 사건으로 치명타를 입은데다, 군부가 대놓고 세를 불리고 드는 판에 설자리를 잃어버렸던 원리주의 무슬림 세력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의 시간’으로 다가온 셈이다. 자카르타를 휘감은 ‘반전’ 물결 앞에 역류하는 ‘성전’ 물결. 물은 같은 물이로되 섞일 수 없는 두개의 물줄기가 어디로 향할지 자카르타 시민들은 다만 이 물이 정체해서 섞여버리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슬람의 바람이고 세계 시민사회의 바람이다. 자카르타=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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