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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아시아 네트워크 | 등록 2002.08.21(수) 제4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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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네트워크] 사방에서 물어뜯기 누가 아룬다티를 ‘몹쓸년’이라고 했는가? 아룬다티는 <변변찮은 것들의 신>을 써내기 3년 전부터 이미 논쟁에 휘말렸다. <밴디트퀸>으로 더 유명한 풀란 데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셰칼 가풀스 필름’에 맞서 심한 싸움을 한 탓이었다. “풀란 데위의 경험을 섹스와 난동에만 초점을 맞춘 흥밋거리로 전락시켰다. 풀란에 대한 배반이다.” 아룬다티의 말에 귀기울이는 이들은 적었고, 추악한 법적 논쟁이 벌어지면서 아룬다티는 많은 이들을 잃었다. 결국 영화만 떼돈을 벌었다. 그로부터 아룬다티는 온갖 부류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먼저 힌둣와(Hindutva) 지원자들은 아룬다티를 “빨갱이 허섭스레기 같은 년”이라고 했다. 아룬다티가 바지파이 총리의 집권당을 ‘힌두광신주의자’, ‘군국주의자’, ‘남성우월주의자’ 집단이라 비판해온 탓이다. 아룬다티가 반쪽 기독교 가문 출신이란 것도 비난거리가 되었다. 자본주의 지배계급에 해당하는 개발주의자들은 아룬다티를 ‘러다이트’(산업혁명 때 실직을 염려해 기계파괴운동을 벌인 직공단)에 비유하며 ‘발전의 적’으로 몰아붙였다. 이들은 아룬다티가 지식 부족으로 개발에 따른 이익을 계산할 줄도 모르면서 “오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난했다. 기득권이 있는 일부 권력자들은 아룬다티를 평화·환경·인권운동가로 인정하면서도, 그런 윤리적인 것들이 결코 국가의 이익을 창조하지는 못한다며 점잖게 타이르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폭탄이 필요하다. 개발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다. 결국 가난한 이들은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을 늘 품고 다니는 무리들이다. “아룬다티는 계급과 상관없는 인물이니 가식적으로 참여하지 말라”는 운동권 주변의 비판도 있다. “아룬다티가 선정적으로 사안을 과장하는 탓에 오히려 운동에 지장이 있다.” 대개 아룬다티의 유명세나 개인 스타일에 비난의 초점을 맞춘 것들이었다. 환경역사가 라마찬드라 구하 같은 이는 지난해 아룬다티를 이렇게 모욕하기도 했다. “아룬다티는 쇼우리의 왼쪽이다.” 쇼우리란 자는 한때 개혁운동가였는데, 사회가 붙여준 도덕성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며 집권당에 붙은 인물로 사회운동 진영에서 크게 비난받았다. 라마찬드라는 아룬다티를 “무책임한 여자”라고 했다. 아룬다티가 나르마다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한 걸 꼬집으며 “대법원과 헌법만은 비판할 수 없다”고 우겼다. 심지어 자신도 핵무장 반대를 외치면서, 유독 아룬다티가 핵무기를 반대하는 건 눈뜨고 볼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간디주의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마땅한 무기가 없었는지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온 ‘전통’이라는 이빨을 들이대며 으르렁거렸다. “아룬다티는 지나치게 현대주의자”라는 것이다.
프라풀 비드와이(Proful Bidwai) 전 <타임 오드 인디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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