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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공격할까, 설령 공격해도… 전쟁의 망령을 바라보는 이라크 민심… “미국이 공격해도 변할 것은 없다”
12년이나 겪은 전쟁, 뭐가 새로운가
이라크 정부가 여론을 통제하고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라크 밖에서 전쟁론을 제기하고 이라크 남부지역에 대한 영국·미국의 공습이 있던 시기, 이라크에 머물다 돌아온 전영창(34)씨는 “바스라 지역에 미국의 공습이 있었지만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미국이 전쟁을 걸어오면 맞대응하면 될 것 아닌가 하는 덤덤한 반응이 전부였다”며 이라크 분위기를 전해준다. 사실 이라크 남부지역이 미국의 공습을 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확전설이 피어오른 것도 벌써 오래된 이야기다. 알 것을 다 알지만 덤덤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공격한다면 맞을 수밖에
설령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고 한들 이라크 민심이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벌써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 이라크인들은 전쟁 속에 살아왔죠. 걸프전은 끝난 적이 없어요. 지금도 미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공습을 감행하고 있잖아요? 이 판에 확전이 된들 뭐가 달라지겠어요?” 항공기 관제사로 일하다가 경제제재로 일자리를 잃고 국경 택시를 모는 칼리드는 답답한 속마음을 털어낸다. 이라크인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는 ‘전면전이 터질 경우의 행동수칙’이 있다. “전쟁이 터지면 밖에 나돌아다니지 말라. 괜히 미국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 방공호도 대피소가 될 수 없다. 집이 제일이다. 미국의 정밀한 레이더망에 의해 이미 공격목표가 정해져 있다. 미국도 이라크의 파멸을 바라지 않기에 정해진 목표물 중심으로 공격할 것이다.” 이런 식이다. 일부는 전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위대한 영도자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함께 침략자들을 섬멸할 것이다. 그들에게 죽음을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충성부대는 이라크에서도 그리 큰 비중을 갖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긴 터널을 벗어나고 싶은 갈망
이라크 민심이 동요하지 않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이라크군은 경제제재로 발목이 묶인 이래 특수부대 일부를 제외하면 오합지졸이다. 전문가들은 무기도 구식이고 제대로 훈련도 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미국이 공격하면 맞을 수밖에 없다. 달리 방도가 있겠는가? 286과 슈퍼컴퓨터의 대결이 아니겠나.” 그래서 이라크 사람들은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자포자기의 심정일 뿐이다. 맞을 매니 빨리 맞고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사람들…. 일부에서는 겉으로 태연한 척하며 전의를 불사르고 있는 이라크 지도부가 명예로운 투항을 준비 중이라는 유비통신도 번져간다. 이라크를 등지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온 난민 신청자들도 전쟁이 터지면 이라크가 속수무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도 친미는 아니다. “반체제 인사들이 사담 후세인 제거를 이야기하지만 다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정치 협잡꾼들일 뿐 믿을 만한 인물이 없어요.” 난민 신청 중인 자밀 아흐마드(42)는 비리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반체제 주요 인사들을 차기 사담 후세인으로 세우려는 것은 미국식의 또 다른 폭거라고 말한다. 지금 미국 부시 행정부와 후세인 정권은 분주하다. 10월15일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이미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바스당은 신임 투표를 위해 민심 추스리기에 나섰다. 11월에는 미국의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부시 행정부는 아랍 국가들한테 당근과 채찍을 들고 군사·외교 정지작업에 열중이다. 성과도 있었다. 미국에 기지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터키는 11월 선거를 내년 봄으로 연기했다. 11월 설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그동안의 현지 취재 결과 미국의 대이라크 침공은 10월15일 이후 11월 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최악의 지도자가 최악의 무기를 보유하고 미국과 우방을 위협하는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 사담 후세인 체제를 축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할 것이다”고 부시가 도전장을 내밀자 “이라크 영공과 영토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방어할 충분한 준비가 돼 있다”며 사담 후세인은 응전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제 미국은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 대이라크 전면 공격의 D-데이가 잡힐 것이다. 명분 없는 긴 전쟁의 터널을 하루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것은 이라크인들 모두의 갈망이다.
암만=글·사진 김동문 통신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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