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네트워크 ] 2002년05월22일 제410호 

월요일 새벽의 영광

“두어 시간 걷는 게 뭐, 별 일인가. 이걸 24년 동안이나 기다려왔는데….”

구엘헤르미나 사비어(69)씨는 불편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두 시간이나 걸어 타시토로에 닿았다. 사랑하는 조국의 탄생을 지켜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월요일(5월20일) 새벽의 영광. 유엔 깃발을 내리고 대신 동티모르 국기를 올리는 이 의식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억눌려왔던가. 타시토로에 모인 10만여명의 동티모르인들 가슴에는 저마다 명예로운 대훈장이 새겨졌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벨로 주교는 대규모 축성단을 이끌고 이날 밤을 빛낼 동티모르 국기의 영원함을 기도했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 철천지 원수인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국민투표를 위한 뉴욕협상을 중재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기회주의자로 비난받은 하워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를 비롯해 90여개국으로부터 달려온 축하사절단이 그 영광의 자리를 함께 했다.

“모든 동티모르 시민들에게 영광을 올린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지만 이 순간을 꿈꾸던 모든 이들에게도….” 코피 아난은 동티모르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당신, 당신들의 지원이 이 순간을 가능케 했다.” 이 날을 꿈꾸며 산악을 헤매던 동티모르 독립투쟁의 전설적인 게릴라 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 대통령은 국제사회를 향한 존경으로 화답했다.

어둠의 역사도 이 밤만은 축제의 과정으로 다시 되살아났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투사된 독립전쟁 과정의 이미지들은 자신의 한몸을 역사에 바친, 먼저 간 전사들을 되살려냈다. 눈물로 이들을 기억하는 한 맺힌 여인들의 흐느낌도 군데군데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촛불을 든 학생들은 독립투쟁의 영웅들인 500여명의 옛 산악 게릴라 전사들(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Fretilin)을 위해 ‘존경의 길’을 열면서 새로운 미래를 향한 투쟁을 다짐했다.

굳어진 분위기는 유머 감각이 뛰어난 라모스 홀타 외무장관의 참석 인사 소개에서부터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손님이 왔는데, 누구겠는가?” 능청스럽게 물어보자 청중들은 “빌 클린턴”을 연호했다. “폴 매카트니 같은 스타도 아닌 당신이 어째서 이런 호응을 받을 수 있는지 아시오?” 타시토로에는 폭소가 터져나왔다.

오후 11시30분.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등장, 독립국가의 시민이 되기 30분 전부터 부쩍 성숙해진 동티모르 청중들은 그녀를 뜨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사나나 구스마오 대통령 당선자는 메가와티를 일으켜 함께 손을 잡고 청중들의 환호에 답하면서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5월20일 0시. 유엔 깃발이 내려지고 10여분 뒤 동티모르 국기가 올랐고, 이어서 사나나 구스마오의 대통령 취임선서를 통해 ‘동티모르민주공화국’은 명실상부한 독립국가로 태어났다. 이렇게 500년에 걸친 독립국가의 꿈, 독립국가를 향한 길고도 지루한 여정은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 축제가 끝난 동티모르에는 제2편 ‘생존투쟁’이라는 고단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인파가 빠져나간 텅빈 타시토로에는 21세기 최초의 독립국가 탄생을 통해 인류가 자유의 가치를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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