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아시아 네트워크 | 등록 2001.09.26(수) 제378호 |
[아시아네트워크] 누가 마수드를 죽였는가 판셰르계곡에서 그를 최초로 취재했던 경험으로 떠올려보는 수상한 의문들
“마수드,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따르리다.” 수천명의 판셰르계곡 게릴라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를 떠나보냈다. 워싱턴과 뉴욕을 타격했던 이른바 ‘11일의 테러’ 이틀 전인 지난 9월9일, 아프가니스탄 북부 반탈레반 진영에서는 저널리스트를 가장한 2명의 아랍계 자살공격조로부터 북부동맹군을 지휘했던 마수드가 암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과연 외부인이 잠입할 수 있는가
‘판셰르의 사자’라 불렸던 대소항쟁의 전설적인 게릴라지도자로, 그리고 전 국방장관으로 반탈레반 전선을 주도했던 마수드의 암살은 시기적으로 볼 때, 11일의 테러와 깊은 연관성을 지닌 것으로 추측된다. 동시에 그의 죽음은 미국의 탈레반 축출계획과 더불어 아프가니스탄의 장래를 읽는 중요한 단서임에 틀림이 없다. “마수드가 죽었다면 기뻐할 일이지만, 그의 암살은 오사마 빈 라덴이나 우리와 무관하다.” 탈레반 외무장관 와킬 무타와켈은 즉각 관련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미국·러시아·프랑스의 정보기관은 일제히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며, 11일의 테러와 같은 일이라 단정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마수드를 암살했는가? 영원히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큰 이 두개의 의문을 따라가다보면 몇 가지 수상한 지점이 발견된다. 특히 그동안 판셰르계곡과 마수드를 취재해온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과연 외부인이 잠입해서 마수드를 암살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강한 의문부터 든다. 현재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은 러시아군이 차단하고 있고, 판셰르계곡과 타지키스탄 사이는 탈레반과 동맹한 타지키스탄반군이 장악하고 있어 육로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다. 유일한 통로는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로부터 마수드의 비행기를 타고 가는 길뿐이다. 20년이 넘는 전쟁에 청춘을 바친 마수드 진영의 본능적인 보안의식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폭발물을 들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도, 또 마수드를 만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까다로운 검색도 모두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1997년 마수드가 카불을 포기하고 다시 판셰르계곡으로 들어간 뒤, 외신기자들 가운데 처음으로 판셰르계곡에서 그를 인터뷰할 당시를 회상해보면, 폭발물을 들고 간다거나 설치하는 건 만화 같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카불 시절 몇번 만난 적이 있어 서로 잘 아는 사이였음에도, 당시 경호원들은 10여일간 진영에 묵게 하며 모든 것을 확인했고, 마수드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판셰르계곡으로 갈 때도, 인터뷰를 할 때도 심지어 카메라 렌즈나 몸통까지 모두 분해해서 확인할 정도였다.
외세에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왜 그렇게 일찌감치 미국·러시아·프랑스의 정보기관들은 일제히 오사마 빈 라덴의 소행이라고 단정해버렸는가? 북부동맹군 내부에서도 관련 정보기관들이 수사를 안 한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9월11일 이후, 뉴욕과 워싱턴이 아직 연기에 싸여 있는 동안, 미국 정부가 보여준 것처럼 수사도 않고 범인을 발표하는 미국식 단정수사방식을 흉내내자면, 마수드의 성향과 정치적인 태도를 짚어보는 것으로 수사를 대신할 수 있을 법하다. 마수드가 지녔던 절대적인 카리스마가 탈레반 이후를 상정한 외세들에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 미국이 구상하는 인물 라바니 전 대통령은 이미 시민들 사이에 조랑말만 지닌 인물 정도로 인식되는 수준이고, 최근 미국이 느닷없이 다시 빼든 84살 먹은 쫓겨난 임금 자히르 샤는 이미 까마득히 잊혀진 인물인 것을 눈여겨본다면 그렇다. 마수드가 지녔던 민족주의와 저항의식이 외세들에는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한 러시아에 저항했던 그를 모를 리 없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마수드가 지녔던 정치·전략가로서의 지혜가 외세들에는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아 대소항쟁을 했던 그가 탈레반을 지원하는 파키스탄을 배척하고 러시아와 손잡은 것을 미국이 또 모를 리 없다면. “아프가니스탄의 완전한 해방은 외세가 없는 땅을 뜻하고, 그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서 잠정적으로 어떤 외세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 노을지는 판셰르계곡에 앉아 마수드가 했던 말이다. 어쨌든 이제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남은 것은 다시 외세가 득실거릴 아프가니스탄의 어두운 미래다.
이슬라마바드=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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