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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네트워크] 아시아여! 민중이여! 아셈회의, 신자유주의 종교의 선교장이자 더 많은 유럽국가의 이익을 위한 결투장
“세계화가 없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더 손해를 볼 것이다.” 웬만한 아시아 중소국의 1년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재산을 지닌 빌 게이츠가 지난 9월 중순 멜버른의 세계경제포럼에서 한 말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로 불리는 타이 농민들이 1년 동안 뼈빠지게 농사지어 한국 돈으로 한 10만원쯤 벌고 있는 현실을 놓고 볼 때, 참으로 난감하기만 하다. 이 가난한 농민들에게 뭘 더 뺏을 게 있다고 세계화를 내세워 협박하는가.
유럽좌파가 득세한 이 계절에…
옆의 아셈지도를 잠깐 보자.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유럽쪽 회원국 열다섯 나라가 지출하는 1년치 군사비용이 어림잡아 1500억달러인 모양인데, 이건 1년 동안 지구상에서 굶어죽는 사람 3천만명에게 1인당 밥값으로 560만원씩 지급할 수 있는 돈이다. 1인당 하루 1달러, 100억달러만 있으면 해마다 3천만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해왔다. 또 이 열다섯 나라의 연간 수출액 2조1500억달러는 40억 전 인류에게 한해 동안 1인당 60만원어치의 물건을 팔았다는 계산서인 셈이다. 이 액수는 아시아 회원국 전체의 국내총생산(GDP)을 웃도는 엄청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의 ‘동반자’인 아시아 회원국들이 5천억달러의 부채를 지고 허덕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쯤 되면 “빌어먹을지언정 엎드려 잔받기는 싫다”던 선조들의 기백 같은 건 흘러간 옛 노래고, 그저 상냥한 미소나 짓고 빌린 돈의 만기나 연장할 수 있다면 아셈회의는 더 바랄 것이 없지 않겠는가. 한쪽에서는 인구 1천명당 500대나 되는 컴퓨터를 지녔고 다른 한쪽은 6대를 지녔는데 무슨 정보화시대니 국제경쟁을 논할 것이며, 어떤 형태의 상호협력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아시아 국가들이 지금부터 매년 갑절씩 성장을 해도 유럽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년이 걸린다는 비관적인 현실, 이게 세계화의 결실이고, 이게 서로 메울 수 없는 간격을 지닌 아셈회의의 실체다. 제3차 아셈회의.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결론은 유럽 중심의 국제질서를 확대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선교장이고, 좀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결투장이지 않겠는가? 신자유주의. 국가간에 그리고 사회 내 계층간에 극심한 불평등구조를 생산해내는 이 치열한 경쟁의 교리는 케인스 학파가 풍미했던 50여년 전 유럽에서 이미 그 뿌리를 내렸다고 보는 게 타당할 텐데, 얄궂게도 오늘날 유럽에서 좌파가 득세한 계절에 극치를 이루며 유일한 종교로 부상해버렸다. 말하자면 사회민주주의나 마르크시즘의 그늘 아래서 희한하게도 시장의 자유로운 기능을 확대하고 정부의 개입을 축소하는 한편 노동운동가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진부한 유행병이 유럽 전역에 퍼져 있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냉전 기운이 가신 아시아는 갑자기 밀어닥친 세계화란 화두를 잡고 안방까지 내준 뒤 유럽의 생산과 소비시장으로 충실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 결과, 재화의 총량으로 따져 두어 세기 전 부국과 빈국의 차이가 수치상 1.5배 정도였던 것이 이제는 60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불과 반세기 만의 일이다. 1971년 25개였던 최빈국의 숫자가 지금은 48개로 늘어났다. 게다가 100여개국 이상에서 15%의 시민들이 15년 전과 비교해서 오히려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국제적인 부자 358명의 재산은 온 지구상의 시민 45%가 지닌 총액과 동등해져버렸다. “불평등을 기뻐하고 능력과 재능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깨닫자.”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철녀로 명성을 쌓아가던 동안 세상은 20년 만에 불평등의 한계치를 넘어서고 말았다. 자유로운 투자와 자유로운 무역 그리고 자본의 자유로운 순환을 내건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주류 자본국들의 종교가 되었고, 불평등을 미화시키며 살인적인 경쟁을 유일한 미덕으로 강조하는 이 독단적인 교리에는 연민의 정도 책임질 일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화를 중단할 수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대신 어떻게 세계화를 통해 이익을 얻고 세계화의 위험성을 줄이느냐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자.” 타이의 통상장관 수파차이가 지난 7월 런던에서 ‘밀레니엄라운드의 전망’이라는 연설을 통해 드러낸 아시아의 통증이다. 1997년 금융위기라는 직격탄을 맞고 혼수상태에 빠진 아시아의 이 경제장관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좀더 평등한 체제를 요구하며 “시장의 자유화는 금융서비스와 정보기술 같은 선진자본국들이 우월한 부문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이 실속을 지닌 농업과 섬유부문에도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애달프게 호소했다. 그러나 어디서도 흔쾌한 반응은 없었다. 신자유주의 정신에 역행하는 어떠한 평등도 아시아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던 셈이다. 이제, 주말쯤이면 아셈회원국 정상 25명이 각기 다른 이익을 꿈꾸며 서울의 호텔에서 파티를 열 것이고, 같은 시간 우리는 거리에서 세계의 분노한 시민들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시장은 시장에 있을 뿐 절대로 인간의 본령을 침범할 수 없다.” 화난 시민단체들의 구호는 시애틀에서 워싱턴에서 프라하에서 타이 치앙마이에서처럼 다시 한번 서울에서 메아리칠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신자유주의의 희생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더 많은 희생자들이 분노하며 새로운 세상을 위해 뭉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아시아 네트워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제3탄을 맞아 축전을 띄운다. “부디, 세계 시민의 소리에 귀기울여 주소서. 아셈정상회의의 영원한 잔치를 원한다면….”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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