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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네트워크] 국경 골짜기마다 포연은 식지않고… 아시아 분쟁지도를 통해 본 분쟁지역의 오늘과 내일
제3세계 어딘들 평온한 땅이 있겠나만은, 아시아만큼 파괴적이며 지속적이고 전면적인 분쟁지역은 이 세상에 없다. 여기 아시아의 분쟁지도에서 드러나듯이 아시아는 현재 전쟁중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평화를 이야기할 만한 구석이 없다. 이 지도에는 정규전에 버금가는 분쟁지역들만 표시한 것일 뿐, 게릴라전 같은 소규모 분쟁은 제외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 지도에 말짱하게 표시된 몇몇 지역은 아시아의 평화지대로 불러도 좋을 것인가? 불행하게도 그 대답은 “아니오”다.
전략없는 전략지대, 동아시아
먼저 깔끔해 보이는 동아시아쪽부터 살펴보자. 여긴 현재 총알이 날아다니지는 않지만 세계적 규모의 ‘전략형 예비분쟁지역’이다. 러시아의 남진정책에 한 축을 이루는 대만은 중국의 팽창정책과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이 맞물린 지점으로 대규모 충돌 가능성이 상존해 있고, 한반도는 극적으로 평화기류를 타고 있지만 여전히 휴전상태며, 일본은 황금경제를 선물로 받은 대신 50년 동안 전쟁의 꿈을 펼칠 수 없었던 억눌린 평화지대일 뿐이다. 동아시아는 비교적 안정된 사회·경제적 조건을 지녀 내전이나 국지전의 가능성은 여느 아시아지역보다 현저히 낮은 편이지만, 냉전 종식과 함께 조정능력을 상실한 강대국들의 세계전략이 난삽하게 뒤얽힌 최전선이고 보면, 돌발적인 상황에 즉흥적인 전략이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전략없는 전략지대’로 위험성을 더해가고 있는 상태다. 최근 국제전략분석가들은 무거운 화두를 잡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과연 미국이 개입할 것인가?” 개전가능지수가 한반도쪽에서 급격히 중국-대만으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는 가운데, 야만적인 전쟁창작력과 동시에 현실적인 전쟁억지력을 지닌 미국의 동아시아방위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는 것도 이 지역안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주단지처럼 받들던 ‘윈-윈정책’을 폐기한 뒤, 별들의 전쟁 같은 추상적인 개념만 남은 현실에서. 그 다음 지도상에서 제법 말짱해 보이는 인도차이나반도. 이 지역은 모조리 숨겨진 ‘은폐형 분쟁지역’이다. 세계전사에서 가장 빛나는 항쟁으로 기록된 베트남해방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이 지역은 여전히 분쟁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관광천국으로만 알려진 타이도 사실은 총성이 멎을 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회교분리독립을 외치는 무장회교도들의 투쟁은 남부 국경지대를 피로 물들여 왔고, 은둔의 나라로 숨어지냈던 라오스에도 베트남전쟁의 유물인 몽족반군들- 베트남전쟁 동안 CIA가 반사회주의혁명의 파수꾼으로 조직했던 소수민족- 이 사회주의 정부 타도를 외치며 30년 동안 산악게릴라전을 벌여오더니 최근에는 도심으로 진출해 폭발물 세례를 퍼부어 사회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캄보디아의 내전 종식은 반가운 일이긴 한데, 정치적 불안정을 틈탄 소규모 무장세력들이 준동하는 가운데 주변국들의 간섭과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여전히 전망은 불투명한 상태다. 킬링필드의 원흉으로 크메르루주를 몰아붙였던 미국은 자신들이 학살한 최소 50만명의 양민들에 대해서는 시치미를 떼고, 크메르루주에 군사지원을 했던 영국과 유럽은 입을 다물고 있는 판에, 국제사회는 크메르루주를 전범재판에 부치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이 코미디 같은 현실 속에서 캄보디아의 평화를 예감할 수 있을는지…. 나머지, 지도에서 아라비아반도가 비교적 말쑥해 보이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역시 분쟁의 뿌리가 넓게 퍼져 있음을 알수 있다. 여긴 원유를 파내는 대신 오일달러로 문제들을 덮어놓은 ‘매장형 분쟁지역’이다. 이 지역은 회교의 원리를 통치수단으로 내세운 군주들이 민주화와 부의 평등이라는 보편적인 추세를 거부하며 압박으로 체제를 유지해 온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교육받은 시민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봉건적 1∼2세대 군주들의 수명이 다해가는 시점임을 주목해 본다면, 체제 변화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가 현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그늘에서 안락한 시절을 보냈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대사우디아라비아 전략에서 이미 1세대 오일군주를 버렸다는 분석들이 나돈다. 미국이 왕실을 보호해주며 오일을 뽑아가는 한편 대회교권 교두보로 삼아왔던 전통적인 사우디전략을 수정해서 민주화 체제로 변환시킬 연구- 또는 음모- 를 시작했다는 조짐들이 지난 걸프전을 전후해 다양하게 감지되었다. 그 연구는 혁명의 가능성에서부터 반혁명 정책 그리고 민주화진행단계까지 포함한 총체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변혁의 폭발력
걸프전 당시, 해방군의 이름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상륙한 미국의 여군들이 여성의 운전금지를 무시한 채 자동차를 끌고 시가지를 돌아다닌 사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우디에는 즉각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사우디 여성들은 환호했으며 인권을 내세운 여성엘리트들은 운전자유를 요구했고 사우디 정부는 “남편이나 남동생이 옆자리에 앉는다면 좋다”는 놀랄 만한 ‘민주적’ 조처를 취했다. 미국의 이른바 10년짜리 대사우디아라비아 민주화전략은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일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변혁기를 맞는다면? 그 폭발력은 중동아시아 전체를 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것이며, 이미 바레인과 카타르 같은 풍요로운 도시국가들에서도 이념을 내건 무장투쟁들이 펼쳐지고 있는 현실은 아라비아반도의 미래를 가름해 보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렇게 지도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시아 전체는 분쟁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들어 있다. 아시아 어느 모퉁이에도 안착된 평화는 없다는 말이 되고 만다. 아시아 네트워크는 아시아의 분쟁지도를 꼼꼼히 들여다보며 아시아의 평화, 그 가능성을 찾아 길을 떠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탐색으로, 그동안 수없이 보아왔던 미국의 전쟁 대신 한때 냉전의 양극을 이루었던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한 체첸상황과, 아시아의 진주로 불렸던 스리랑카를 피로 물들이며 타밀타이거를 세계 최대의 테러리스트 반열에 올려놓은 타밀-싱할리 민족분쟁, 그리고 50년이 넘도록 민주·민족분쟁을 치르고 있는 최장수 분쟁국 버마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고자 한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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