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험담만 안 하면 대화하겠다” 제주평화포럼에서 공개된 북-미 대화내용… 클린턴 시절 그리워하나 재협상 의지도 있어…
“만약 승객을 가득 태운 고려민항이 주체사상탑을 들이받아 폭삭 주저앉힌다면 당신네들 심정은 어떻겠느냐?”(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 “….(침묵)”(이찬복 북한군 상장)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 중이고, 부시 대통령이 보여준 행동은 단호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그레그) “북한군은 강하다. 미국과 싸워 죽을 각오가 돼 있다. 미국이 진정 우리와 대화를 원한다면 먼저 공손하게 나와야 한다. 지도자나 체제에 대해 험담을 계속 늘어놓는다면 미국과는 대화하지 않겠다.”(이찬복) “….(침묵)”(그레그) “우리는 미국과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체결한 뒤 흑연감속로 작동을 멈쳤으나, 미국이 2003년까지 지어주기로 한 경수로 공사가 계속해서 지연되는 바람에 많은 전력 손실을 맛보고 있다. 우리만 손해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이찬복) “미국 상원의원들도 똑같은 말을 하더라. 손해보는 쪽은 오히려 미국이라고….”(그레그) “앞서도 얘기했지만 미국이 우리 지도부나 체제에 대한 험담을 하지 않는다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겠다. 다만 보다 고위급에서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이찬복)
그레그의 설득 먹혔나
그레그 전 대사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가 클린턴 행정부 때를 상당히 그리워했으나, 부시 정권의 등장과 9·11 테러를 지켜보면서 이제 협상을 원점에서 새로 시작할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사실 북한은 그간 최고 지도부에 대한 험담도 참기 어려웠지만 클린턴 행정부 때 맺은 각종 외교적 합의들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헌신짝처럼 차버린 부시 행정부의 처사에 크게 반발해왔다. 대화조차 거부한 게 단적인 보기다. 하지만 최근 임 특보와 그레그 전 대사의 북한 지도부 설득이 상당히 먹혀들어간 듯하다. 임 특보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과거의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미국의 현 정부와 새로운 방식으로 대화해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면서 현안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부시 대통령은 전시 대통령이니 강경할 수밖에 없고 △92년 대선에서 아버지 부시를 이긴 클린턴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부시는 레이건을, 클린턴은 카터와 비슷해 성격차이가 크다는 점을 보기로 들어 북한 지도부에 현실을 받아들일 것을 충고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북한 지도부가 이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최근 북한이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미국과 대화에 나서겠다고 나온 배경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레그 전 대사가 북쪽 주요 인사들과 나눈 얘기는 함께 수행한 한국계 미 국무부 직원을 통해 워싱턴에 그대로 전달됐다. 그레그 전 대사는 미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을 비롯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있을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을 만큼 아버지 부시와는 막역한 사이다. 아들인 현 부시 대통령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의 방북 내용이 앞으로 재개될 북-미대화에 적지 않은 참고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페리 프로세서'의 주역들
그레그 전 대사가 특히 김정일 위원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레그 전 대사는 “김 위원장 개인의 인식 변화가 굉장히 흥미롭다”면서 “그의 주된 목표는 북한을 개방하면서 정권유지를 희망하는, 즉 북한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량살상무기는 북한 정권 유지의 안전장치나 다름없다”면서 “미국을 두려워하고 있는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호신뢰 조처부터 취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가 진정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풀려면 상호신뢰부터 쌓아야 한다는 충고였다. 이 발언은 부시 행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에 일침을 가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 참석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토머스 허바드 현 주한 미 대사는 북한과 대화를 통해 현안을 풀겠다고 강조하면서도 핵, 재래식 무기는 물론 인권문제까지 끄집어내 협상 테이블에 올려질 것임을 내비쳐 그레그 전 대사의 발언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9·11이 바꾼 한반도의 풍경
제주=글·사진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