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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통일로 등록 2002.03.27(수) 제402호

[통일로] ‘평화의 아리랑’을 부르자

정부가 뽑아든 ‘임동원 평양특사 파견’카드… 아리랑축전과 월드컵 함께 성공을 위해

남쪽 정부가 마침내 ‘특사파견’ 카드를 뽑아 들었다.

남북한 당국은 3월25일 오전 10시 동시에 김대중 대통령 특사의 평양방문 합의 사실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파견 시기는 4월 초이며, 특사는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별보좌역이 맡았다. 이런 결정은 양쪽이 더 버티다가는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정부 고위관계자의 귀뜸이다. “북-미 사이에는 지금 마주보며 달리는 기차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명분이나 자존심에 매달려 서로 등을 돌리고 서 있을 경우 자칫하면 남북한 모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임 특보의 평양 파견 결정은 이런 위기의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한반도 위기 재발방지책’에 초점

미국은 올 초부터 숨쉴 틈도 없이 북한에 대해 악의 축 발언,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흘린 핵태세 보고서 공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기 핵사찰 압력 등 전방위 공세를 펼쳐왔다. 임 특보도 지난 3월19일 한 특강을 통해 “1년 안에 상당한 수준의 북-미관계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1994년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위기 때와 같이 한반도에 안보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임 특보는 이번 방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과의 회담을 통해 한반도 위기 재발방지책에 대화의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남북한 사이의 다른 현안들도 폭넓게 협의할 것이다. 북쪽은 체제생존의 사활을 걸다시피 한 ‘아리랑축전’을 성공시켜야 하고, 남쪽도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같은 현안을 비롯해 월드컵 등 국가적인 행사를 별탈없이 마무리지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북한의 먹는 사정도 다시 어려워지고 있어 남쪽은 물론 국제사회의 식량과 비료 지원 등이 시급히 필요한 때다. 서로가 더 꾸물거릴 여유가 없었던 셈이다.

‘전쟁과 평화’는 요즘 남쪽 사람들이 평양에 가서 가장 흔히 듣는 단어들이다. 지금 북한은 전쟁이냐 평화냐의 첨예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한다. 미국의 심상찮은 공세로 평양은 사뭇 전시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지난 3월22일치 <로동신문>이 “우리 공화국은 미제의 전략무기 숲에 둘러싸여 있으며 언제 어디서 핵무기가 날아올지 알 수 없는 항시적인 위협 속에 있다”고 보도한 데서도 그들의 절박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한켠에선 북한 각지에서 올라온 수만명의 주민들이 정권수립 이후 최대 규모의 ‘아리랑축전’을 선보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아리랑축전이 내거는 핵심구호는 ‘평화’다. 북한은 대규모 행사를 통해 국제사회에 평화의 메시지를 극적으로 보여주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한 손엔 총을 잡고, 다른 한 손엔 부채를 들고 춤을 출 수밖에 없는 난처한 국면을 맞은 것이다.

아리랑축전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급박하게 진전되고 있다. 북한 문화성 관리는 3월22일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마지막 종합훈련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사실 북한을 죽 지켜봐온 많은 관측통들은 아리랑축전을 준비하는 북한을 몹시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미국과 창 끝에서 대치한 상황에서 과연 축전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외국인 15만∼20만명 유치 목표

일각에서는 북한 지도부가 대도박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그만큼 이번 행사의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다행히 잘 치른다면 북한은 달러라는 실리도 챙기면서 체제강화는 물론 국제사회에 성큼 가까워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정권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도 있다. 북한은 오는 4월29일부터 두달간 열리는 아리랑축전에 외국인을 모두 15만∼20만명가량 불러온다는 목표를 세워놓았다. 핵심내용은 10만명이 동원되는 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다. 민족의 정서와 넋이 담긴 전통민요 아리랑을 바탕으로 민족의 운명사와 세태풍속을 서사시적으로 형상화할 요량이다. 이 공연에는 북한의 명곡들과 민속무용, 예술체조, 교예, 배경미술, 첨단 장치물과 조명수단 등이 모두 동원된다. 물론 평양을 방문할 외국인들은 체조나 공연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평양 시내, 묘향산, 금강산, 칠보산, 개성 등 다른 명승지도 두루 돌아볼 수 있다. 일부 관광객은 골프를 할 수도 있고, 시중호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도 있다.

북한이 바라는 대로 20만명의 외국인이 평양을 찾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정작 주목할 대목은 북한이 분단 이후 이처럼 활짝 문호를 연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무슨 대규모 이념대회를 여는 것도 아니다. 북한 전역을 관광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 가운데 집단체조와 아리랑 공연은 대표적인 상품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번 축전을 성공적으로 치른다면 평양과 평양 사람들의 모습이나 의식은 적지않게 바뀔 것이다. 무엇보다 그간 오랫동안 침체돼 있던 북한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상당한 자신감을 회복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이 올림픽을 치른 뒤 사회 전반이 부쩍 성장했듯이 북한도 그럴 것이라는 분석이다. 평양의 외관도 많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뭐니뭐니해도 이번 축전 성패의 척도는 달러 수입의 규모다. 북한은 내심 이번 축전에서 1억달러가량의 순수입을 올릴 요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미 정해놓은 패키지관광 비용은 체류일수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한 사람당 한국돈 200만∼300만원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당국이 가장 고심한 대목은 가격이었다. 터무니없는 관광비용을 정했다간 관광객이 다 도망갈 사태를 걱정해서다. 북한 지도부는 이번 행사 결과를 면밀히 분석한 뒤 체제에 끼치는 악영향이 미미할 경우 후속 개방조처까지 준비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평양을 찾느냐다. 이는 곧 외화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올 초부터 일본·중국과 유럽연합(EU)의 나라들을 돌면서 설명회를 여는 등 관광객 유치에 안간힘을 쏟아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전반적인 참가 규모는 안개 속이다. 어쩌면 성패의 관건은 남쪽 당국이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남쪽 관광객이 평양 땅을 밝기 위해서는 사전에 양쪽 당국이 만나 협의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변안전 보장, 출입국 영사, 이동경로, 돌발사고 예방 문제 등등.

대북관계에서의 마지막 도전

사실 남쪽 정부는 아리랑축전이 대북관계에서 마지막 기회이자 도전이라 생각하고 있다. 잘만 치르면 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지난 8·15 행사 때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면 대북정책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그냥 접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남쪽 정부가 아리랑축전을 외면할 경우 올해 남북관계는 끝”이라고 잘라 말한다. 아리랑축전 성공의 척도를 관광객 수로 볼 때 일본이나 중국, 유럽연합 등에서 오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남쪽 관광객 규모를 뛰어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이들 관광객은 남쪽 사람들이 아리랑축전에 얼마만큼 관심을 보이고 참여하느냐에 따라 관광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쪽 관광객의 향방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어쨌든 한국 정부로서도 이제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쪽에서 가장 신경쓰는 대목은 행사내용과 돌발사고다. 북한도 이를 의식해 공연내용 중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목은 상당수 고치거나 없앤 것으로 알려졌다. 남쪽 정부는 무엇보다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골몰하고 있다. 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월드컵을 잘 치르려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간 왕래·교류협력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아리랑축전은 매우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정부가 남쪽 관광객을 보내 북한을 도와줄 필요가 있느냐는 거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남쪽 정부의 이런 처지를 감안해 이산가족 상봉이나 금강산 관광특구 지정 등에 성의를 보이는 것이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이들은 아리랑축전이 월드컵 분위기를 흐리기 위한 맞불성격이 강하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월드컵에 고위급 축하사절단을 보내는 등의 화해 제스처가 필요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과연 대통령 특사인 임동원 특보가 이 모든 난제들을 푸는 돌파구를 마련할지 주목되고 있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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