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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정치 등록 2003.06.11(수) 제463호

[정치] 신당 깃발에 먼지 쌓이네

구주류 결사항전·참여정부 인기급락 등에 발목… 정치개혁 과제 제시해 국민적 지지 얻을 건가

민주당 신당 논의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고 있다. 5월16일 신주류 중심으로 ‘신당추진모임’이 결성됐을 때만 해도 대세가 기울며 ‘일사천리’ 로 내달릴 것 같던 신당추진이 첫 고비인 당무회의에서부터 막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신당추진에 반대하는 구주류의 저항이 예상밖으로 거센 데 비해, 신주류는 ‘자중지란’을 겪으며 대오가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마저 하락하면서 신당추진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구주류는 민주당 101명 의원 가운데 15명 안팎 정도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균환 원내총무와 박상천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정통성을 지키는 모임’에 참석하는 숫자다. 그러나 이들은 당무회의에서 신당추진위 구성안이 안건으로 올라오는 것 자체를 원천봉쇄할 정도로 강력한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신주류가 신당추진위 구성안 통과를 강행할 경우 정대철 대표의 의사봉을 탈취하는 작전까지 짜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6월4일 당무회의에서는 구주류쪽 중앙당 실국장들이 대형현수막 2개를 내걸고 몸싸움까지 벌이는 극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송영길 의원은 “당에 위계가 없다”며 실국장들에게 회의장을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가 주먹다짐 직전까지 치닫기도 했다.

당무회의 표결을 둘러싼 내부 동요

신기남 의원은 “어차피 설득이 안 되면 표결할 수밖에 없으며, 표결하면 통과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무위원 83명 가운데 50명 이상이 신주류쪽에 동조하는 것으로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결을 강행할 경우 절차적 정당성에 흠집이 생기면서, 이후 구주류가 ‘임시전당대회 소집을 통한 무효화’ 등 신당추진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신주류로서는 ‘상처뿐인 영광’인 셈이다.

이에 비해 신주류쪽은 강온파 사이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김원기 고문 등 온건파는 “튀는 행동과 노선에 대해서는 나도 염려한다”고 말하는 등 강경파 견제에 나섰다. 김경재 의원은 더 나아가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배제론’을 펴고 있다. 이에 반해 강경파 의원들은 온건파 의원 중심의 신당추진이 신당의 정신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불신감을 드러내놓고 있다.

강경파 의원들은 믿었던 우군들마저 자신들을 향해 비판의 화살을 날리자 “신당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질 경우 일체의 당직을 맡지 않는다”는 취지의 ‘백의종군 선언’을 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노 대통령의 인기가 급전직하하면서 신당추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 취임 100일을 맞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3월29일 조사 때에 비해 14.1%포인트 떨어지는 등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10~20%씩 급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바로 신당에 대한 지지도와 직결되고 있다. 한 일간지 여론조사 결과 개혁적 신당창당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52.2%)이 바람직하다(20.1%)는 의견을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당논의 초기만 해도 50% 이상의 국민적 지지를 받던 것에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이는 수도권 의원들 사이의 동요로 나타나고 있다. 호남당으로 민주당이 온존하는 상태에서 신당이 출범한다면 수도권에서 호남표가 분열할 것이 분명하고 몇백표 차이, 심지어 몇십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수도권 총선의 특성상 분당으로 인해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범구, 김영환, 심재권, 김성순, 조한천 의원 등 수도권 출신을 중심으로 하는 의원 9명이 6월5일 정대철 대표를 만나 6월9일로 예정된 당무회의를 연기할 것을 요청한 것도 이런 동요와 무관하지 않다.

탈당카드 약발 떨어지는 등 뾰족 수 없어

문제는 이런 교착국면을 돌파해낼 묘수가 없다는 것이다. 신당추진에 힘이 붙을 때는 신주류 강경파들 중심으로 ‘탈당 불사’ 등의 강수를 구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깊게 발을 들여놓아 탈당카드를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동조할 의원이 손가락을 꼽는다”는 게 신주류 한 의원의 얘기다.

이에 따라 신주류 의원들 사이에서는 “아예 구주류의 요구를 다 들어줘버리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구주류의 요구가 무엇인지 불명확한 상태인데다, 만일 상향식 공천 포기나 공천권 보장 등을 내걸 경우 신당의 취지 자체가 퇴색해버려 받아줄 수도 없는 사정이다.

이에 따라 신주류쪽은 표결을 강행하기보다는 계속 신당추진위 구성안 상정을 시도하면서 구주류쪽의 반대하는 모습을 부각시키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정치개혁의 과제들을 좀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내세움으로써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퇴행성’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해찬·배기선·이강래 의원 등이 빈번하게 접촉하며 ‘기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신당논의가 지지부진해지면서 국민적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상황이라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단정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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