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 2003년05월14일 제459호 

한화갑과 ‘천신정’ 에게 열쇠가 있다

민주당 한화갑 전 대표와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속칭 ‘천신정’) 등 신주류 강경파 의원들의 엇갈리는 행보가 관심을 끈다. 지금이야 한 전 대표가 ‘천신정’의 신당추진론을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비판하며 날을 세우지만 이들은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상당기간 깊은 연대관계를 유지했다.

2000년 12월 정동영 당시 최고위원이 여권의 실력자 권노갑씨를 공격함으로써 촉발된 쇄신운동의 와중에 한 전 대표는 이들과 비교적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동교동계 일각으로부터 ‘배후’로 의심받을 정도였다.

2001년 말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시기와 특대위 개혁안을 놓고 당내 논란이 한창일 무렵, 한 전 대표는 김근태·정동영 의원이 주축인 ‘쇄신연대’와 함께 비주류연합을 형성해 범주류와 맞섰다. 쇄신연대의 ‘주력부대’는 ‘천신정’ 등 바른정치모임 소속 의원들과 조성준 의원 등 한 전 대표의 측근 의원들이었다. 당시 범주류의 중심에는 한광옥 대표와 이인제 상임고문이 있었고, 권노갑 전 최고위원 중심의 동교동 구파가 외곽에서 지원하고 있었다. 정균환 총재특보단장도 의원 63명이 가입한 ‘중도개혁포럼’을 이끌며 범주류의 기반을 형성했다.

그러나 쇄신연대는 한 전 대표가 줄기차게 주장했던 2단계 전당대회론을 포기하고 조기전당대회쪽으로 방향을 선회함으로써 둘 사이는 멀어졌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그 사람들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친구들이다. 다시는 그 사람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겠다”고 혀를 찼다는 게 한 측근의 전언이다.

대선주자 경선을 앞둔 시기에 천정배 의원은 이른바 ‘4자연대론’을 주장했다. ‘이인제 대세론’에 맞서 노무현·한화갑·김근태·정동영 4사람이 연대하자는 것이었으나 현실화되지 않았다. 당시 노무현 상임고문은 한 대표를 찾아가 단일화 담판을 시도했으나 거절당하기도 했다. 이번엔 한 전 대표가 노 대통령에게 신당문제를 놓고 담판을 벌이자고 요구한다.

민주당 신당론의 방향은 한 전 대표와 신주류 강경파들이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들이 경쟁관계에서 협력관계로 돌아서는 순간, 민주당 내 중도세력이 가세하면서 다수파를 차지할 수 있다. 신당론도 순풍을 타게 된다. 반대로 이들이 끝내 타협을 이뤄내지 못하고 각자 제 갈 길을 가게 되면 민주당은 분당의 길로 접어들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들 사이엔 민주당의 정체성과 역사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 호남과 탈호남에 대한 시각의 차이, 정치적 전망에 대한 계산의 차이 등 넘어야 할 봉우리가 겹겹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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