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십년 동안 야당과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고단한 생활을 함께한 ‘동지’들에게 진 빚이 많았다. 이들은 선거 때면 궂은일을 도맡았고, 민주화운동 시절엔 핍박을 받았다. 이른바 ‘동교동 특무상사’들이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금배지’를 달았다. 이훈평·조재환·김방림·박양수 의원과 김태랑 최고위원 등이 대표적이다. 상당수는 각종 공기업체의 장이나 이사·감사 따위의 자리를 얻어 일정한 보상을 얻었다. 그러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대부분은 정권획득 이후에도 당 언저리를 맴돌아야 했다. 자리를 못 잡은 이들에겐 당 직능위원회의 비상근 부위원장 명함이 주어졌다. 비상근 부위원장 직함을 지닌 인사가 700명이 넘기도 했다. 권노갑씨가 논공행상에 따라 이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면서 다독이는 창구노릇을 했다. 민주당에선 자리를 못 잡은 이들이 당사에 찾아와 취직을 부탁하거나 항의하는 장면이 가끔씩 목격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권력 핵심들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정치 브로커 노릇을 했다. 어떤 이는 권력과 돈을 연결시키는 기업의 로비스트로 변신했다. 각종 이권에 개입해 추문을 낳기도 했다. 진승현씨와 연결돼 수억원을 챙기며 브로커 노릇을 한 최택곤씨, 금융감독원 조사 무마조로 2억5천만원을 받아 구속된 황용배 전 마사회 감사가 대표적 사례다. 야당시절 민원실장을 맡아 여당을 공격하는 데 귀신 같은 실력을 발휘한 오길록씨도 돈과 여자가 얽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사법처리됐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부속실장으로 일하며 수억원을 챙긴 장학로씨의 비리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권력의 핵심에 접근하고 싶어도 연줄이 없는 관료나 기업인들이 이들에게 선을 대면서, 수요가 정치 브로커 공급을 창출하는 측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