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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 앞에 선 진보정당 권영길 후보 TV 토론 효과로 두 자릿수 득표율 노려…“이 후보 지지기반도 흔든다”
30년에 가까운 공백기를 거쳐 진보정당의 실험이 본격화한 것은 87년 6월항쟁 이후다. 당시 사회 전역에 불어닥친 민주화 열풍 속에 한겨레민주당, 민중의 당 등 진보정당이 탄생했지만 실제 선거에서의 성적은 비참한 수준이었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했다. 92년 14대 대선에 나선 백기완 후보는 23만8648표(1.0%), 97년 15대 대선에서 출마한 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는 30만6026표(1.2%)를 받아 모두 1%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16대 대선은 어떨까
숙명적 과제 ‘사표의식’
막상 토론회 뚜껑이 열리자 이런 기대는 현실로 나타났다. 권영길 후보는 지난 12월3일 열린 첫 텔레비전 토론회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네거티브전을 펼치는 이회창·노무현 두 후보 틈바구니에서 참신한 공약 제시와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정치 냉소주의에 젖어 있는 국민에게 ‘후련하다’는 인상을 줬다. 지난 97년에 이어 두 번째 대선 출마지만, 권 후보에게는 이 토론이 정치적 데뷔 무대인 셈이었다. 이상현 민주노동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미디어대책위원장은 “언론에서 ‘권영길 신드롬’이라고까지 했을 정도로 텔레비전 토론 다음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린 사람이 권 후보다. 5년 전 군소후보로 참여했을 때와 견주면 혁명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 지지기반은 울산, 부산으로 이어지는 노동자 밀집지역(블루칼라벨트), 수도권의 화이트칼라, 학생 등이었다. 지역으로 보면 영남, 계층은 노동자·학생, 세대로 보면 20·30대에 국한돼 있었다. 이론적으로라면 진작 주요 지지층이 됐어야 할 저소득·저학력층, 도시빈민, 농민, 여성에게 민주노동당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이겨내야 할 숙명적 과제는 이른바 ‘사표의식’이다. 특히 우리나라 대선은 결선투표 없이 한번의 선거로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최악을 막기 위해 차선을 선택’하는 경향을 뚜렷이 보인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개혁·진보적 성향이 일정부분 겹치는 노무현 후보와 차별성 부각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권 후보의 선전이 곧 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낮추는 것은 아니라고 민주노동당은 주장한다. 20·30대의 경우 지지층이 어느 정도 겹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후보단일화를 거치며 어느 쪽으로든 거의 정리됐다고 본다. 신장식 위원장은 “현재 지지율 추이를 보면 노무현 지지자만이 아니라, 이회창 지지자들도 우리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권 후보의 폭발력이 커질수록 이회창쪽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 대선에서 권 후보의 선전은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폭넓은 염증과 그에 따른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갈망, 두 차례의 민간정권을 거치며 일반 민주주의적 권리와 인식이 넓어지면서 국민이 ‘진보’라는 가치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게 된 점, 민주노동당의 구체적이고 간명한 공약과 텔레비전 토론 등 다양한 동력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의 돼지저금통 모금에서 나타나듯, 사회·경제 개혁은 정치개혁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국민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선 이후 정치개혁 이끌 것
민주노동당은 만약 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권 후보 지지율이 5%가 넘으면 둘 사이의 정치적 연대가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중대선거구제나 정당명부제 전면실시 등의 정치개혁을 실행할 현실적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로 이어지며, 보수세력 일색인 정치판에 근본적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상현 위원장은 “이 후보가 당선되고 노 후보가 떨어지면 민주당은 붕괴하면서 개혁진보세력이 더욱 커다란 지각변동을 겪을 것”이라고 점쳤다. 민주당 내 보수세력이 떨어져나가면서, 민주노동당을 아우르는 강력한 진보야당의 필요성이 대두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조봉암의 역사적 실험이 16대 대선을 계기로 반세기 만에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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