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 2002년03월13일 제400호 

국민경선 좀먹는 조직표

한국 정치사상 첫 실험인 국민참여경선제, 그 출발은 좋다. 이변이 계속되면서 일단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주와 울산의 투표 참여자 상당수가 “국민에게 선택권을 줬다”고 호평했다. 투표장 열기도 뜨거웠고 자발적인 박수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점도 많이 드러났다.

먼저 조직표의 위력이 강해 경선결과가 유권자 일반의 정서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선거인단 가운데 민주당 대의원 몫 20%와 일반당원 몫 30%가 문제였다. 50%의 선거인단 선정은 사실상 지구당 위원장 개인이 좌우할 수 있다. 지난 3월9일 제주 경선에서 조직표를 앞세운 한화갑 후보가 선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5년 동안 한 후보의 제주도지부 후원회장을 지낸 고진부 의원(서귀포·남제주)이 공개지지를 선언한 뒤 지역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조직력이 위력을 발휘했다. 한 후보쪽은 여론조사에서 저조한 성적이 나오자 막판에 문희상 의원을 내세워 민주당 연청 소속 선거인단 60명을 상대로 집중적인 표단속까지 벌였다. 수도권 한 초선의원은 “일반국민 선거인단은 신청자를 무작위 추첨하지만 대의원 및 당원 선거인단은 몇몇 지역을 빼고는 모두 지구당 위원장 마음대로 선출하고 있다”면서 “국민 일반의 정서와 다른 결과가 계속될 경우 경선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여론과 동떨어진 조직표가 후보 선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이 반복되면 경선제 자체가 외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장 당직자들은 “당원 선거인단도 국민선거인단처럼 당원명부를 놓고 무작위 추첨하도록 의무화하거나 참여를 원하는 모든 당원과 국민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돈선거 시비도 문제다. 민주당 안에서는 김근태 후보의 경선자금 양심고백 이후 후보들의 돈 씀씀이가 조심스러워졌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 선거인단 동원 등에 돈이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대선후보들은 지난 9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선거자금옴부즈만’의 자금공개 합동서약식 요구를 거부했다. 정대화 교수(상지대)는 “후보들이 애초 시민단체의 공개검증 약속에 모두 서명해놓고 뒤늦게 구체적인 자료를 주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면서 “수입지출내역서 제출 약속을 계속 어길 경우 시민단체도 공개 대응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경선전에 중대한 흠집이 생길 수 있다.

후보자들 사이에 비방도 경선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 민주당 조직국 한 관계자는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유인물이 나도는 등 일탈행위가 계속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선거인단으로 제주 투표에 참여한 이연화(34·회사원)씨는 “후보연설 과정에서조차 상대 후보를 헐뜯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애초 지지후보가 비방연설을 하는 것을 듣고 다른 사람을 찍었다”고 말했다. 여성 선거인단은 특히 비방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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