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정치] 줄타기 정치, 권위가 안 서네! ‘정치 9단’ ‘술수와 곡예정치의 달인’ ‘기다림의 정치’….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를 거론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수사들이다. 사실 98년 정권교체 이후 김 명예총재의 정치행보는 이런 수사들과 크게 무관하지 않았다. 4·13총선을 전후해 ‘DJP 공조’를 둘러싸고 오락가락했던 행보는 김 명예총재의 퇴행적 정치행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김 명예총재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절대 같이 안 할 것”이라며 공조파기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공조복원은 아무리 사정해도 안 들어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총선참패 뒤 5월 이한동 자민련 총재의 총리 취임에 동의하며 슬그머니 공조복원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리곤 말뒤집기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우리 당에서 총리를 냈다고 공조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나라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상관없이 협력할 것”이라고 변명했다. 총선을 앞두고는 시민단체로부터 공천부적격자 명단에 오르자 ‘음모론’을 제기하며 빠져나가는 ‘정치 9단’다운 면모도 보여줬다. 특히 김 명예총재는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둥이 홍위병을 동원해 류 사오치를 제거하는 과정을 기술한 <마오쩌둥 비록>을 들먹이며 간접적으로 청와대를 시민단체의 배후로 지목하는 등 선거전략으로도 활용했다. 4·13총선 패배 이후 정치행보는 특유의 ‘침묵과 기다림’이었다. 대외적인 공식활동은 자제했다. 당사에도 거의 얼굴을 비치지 않은 채 대부분의 시간을 신당동 자택에 칩거하거나 골프로 소일했다. 그렇지만 확고한 공조복원에 목을 맨 청와대와 민주당을 상대로 DJP 회동을 거부하면서도 8월 개각 때는 산자부장관과 농림부장관 자리를 보장받는 등 자기 몫은 놓치지 않고 챙겼다.
반면 지난 7월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주는 국회법 개정안의 날치기 시도는 여야를 넘나든 JP의 줄타기 정치의 전형이었다. 그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골프회동을 하면서 “정치판에 영원한 적은 없다”며 밀약설을 흘렸다. 김 명예총재와 이 총재의 접근에 깜짝 놀란 민주당은 이틀 뒤 국회법 개정안의 날치기 처리를 강력하게 요청해온 자민련의 요구를 들어주는 무리수를 뒀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반발에 부닥쳐 결국 실패했고, 이런 줄타기 행태는 무려 2달 이상 국회를 장기파행으로 몰아넣어 국민의 비난을 받았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