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마이너리티 등록 2001.09.19(수) 제377호

[마이너리티] 일본의 그늘을 지키건만…

불법체류 재일한국인들의 서글픈 노동… 임금체불에 울고 해고 위협 등에 시달려

지난 9월6일 저녁, 도쿄에서 전철을 타고 1시간 남짓 달려 닿은 가와사키. 역을 빠져나온 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길 한쪽에 ‘노동·법률상담소’라고 적힌 간판이 걸린 작은 건물 한채가 멀리 눈에 들어왔다. 일본의 불법체류 한국인 노동자 20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가나가와 시티유니온(지역일반노동조합)은 허름한 건물 1층에 그렇게 자리잡고 있었다.

영세공장·건설현장·항구 등지에서 일해

문을 열고 들어서자 10여평 남짓 되는 비좁은 사무실에 한국인, 일본인, 동남아시아인 등, 한눈에 봐도 막노동자로 보이는 행색의 각국 노동자 서너명이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다들 임금체불, 해고, 폭행문제로 여기를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물론 한국인 불법체류 노동자들도 많이 찾아옵니다.” 주일 한국대사관 영사과에서 만나 취재진을 여기까지 안내한 방마리아(65·한국계 일본인)씨가 묻기도 전에 눈앞의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방마리아씨는 이곳 가나가와 시티유니온의 집행위원이기도 하다.

시티유니온은 조합원 850명으로, 중소기업 영세공장이나 건설현장, 항구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가나가와 시티유니온의 무라야마(52) 위원장은 “조합원 중 절반은 한국 등에서 온 불법체류 노동자들이고 절반은 일본인 등 합법체류자들”이라며 “이주 노동자든 일본인 노동자든 가리지 않으며 단 한 사람이 와도 누구나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티유니온에 가입한 한국인 노동자 200여명은 대부분 가와사키지역에서 막일을 하며 살아가는 불법체류자들로, 후미진 여관 쪽방에서 집단적으로 살고 있다. 무라야마 위원장은 “한국인 불법체류 노동자는 대부분 건설이나 항만에서, 동남아인들은 영세 가내공장에서 일한다”며 “한국인은 말하지 않고 일만 하면 일본사람인지 아닌지 얼른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일본 사용자들이 한국인을 쓰기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불법체류자는 5만6천명으로 일본 내 전체 외국인 불법체류자 23만여명의 24%를 차지한다. 국가별로 봐도 불법체류자는 한국인이 가장 많다. 불법체류 한국인의 상당수는 여권을 위조하거나 밀항을 통해 일본에 들어가는데, 정상적인 비자를 받아 들어간 뒤 나오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는 경우도 많다. 일본당국이 밝힌 한국인 불법체류자 5만6천명은 출입국 사실에 대한 전산 확인을 거친 것으로, 밀항까지 포함하면 불법체류자는 10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건너와 불법체류자 신세로 사는 이유는 대부분 ‘돈벌이’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화폐가치가 크기 때문에 막노동을 해 일당 1만5천엔(우리돈 15만원가량)만 받아도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큰돈을 쥘 수 있는 것이다.

불법체류 한국인들은 대부분 어디에서 일하고 있을까. 주일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불법체류자의 절반 이상이 유흥업에 종사하고 나머지는 건설현장이나 중소기업 공장 등 주로 3D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 김윤성 영사는 “한국인 불법체류자 10명 중 여성이 6명꼴인데 일부는 식당이나 영세 가내공장에서 일하고 대부분은 도쿄 신주쿠의 유흥업소에 있다”며 “반면 남자들은 거의 다 건설, 하역, 청소 등 막노동에 종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귀금속업자 등 손기술 하나만 가지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생계형 불법체류자도 많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불법체류자들이 주로 살고 있는 곳은 도쿄 신주쿠 주변과 요코하마, 오사카 등이다. 도쿄에서 차로 한 시간 반 남짓 가면 요코하마시 고도부키라는 곳이 나온다. 건설, 항만에서 일하는 한국인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곳에 사는 한국인 불법체류자는 2천여명으로, 다다미 두세장(한두평 남짓)이 깔린, 누우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비좁은 방에 모여살고 있다. “고도부키에서는 새벽마다 인력시장이 섭니다. 인력시장에 나오는 노동자는 일본인도 있고 한국인 불법체류자도 많지만 일본 사용자들은 싼 임금으로 부릴 수 있는 한국인들을 고용하기 좋아합니다. 고도부키에서는 부딪히는 사람이 한국인일 정도로 많아요. 일본말을 잘 몰라도 살 수 있는 곳이죠.” 방마리아씨는 “거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자기와 동행하지 않으면 위험한 곳”이라며 고도부키를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그는 한국인 노동자들은 고도부키에 온 지 2년가량 지나면 대부분 병 들기 십상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일은 힘들고 제대로 먹지 못하기 때문이죠. 곁에 아무도 없고 혼자 살기 때문에 막일을 끝내고 밤에 돌아오면 술 한잔 마시고 그대로 쓰러져 자버립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또 밥도 먹지 못한 채 인력시장으로 일하러 나가고….”

불법체류 한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가장 큰 설움은 걸핏하면 생기는 임금체불이다. 게다가 여러 건설현장을 전전하면서 일을 하거나 새벽 인력시장에서 차에 실려가 일한 탓에 자신이 일한 장소도 잘 몰라 밀린 임금을 앉아서 떼이는 경우도 있다. 방마리아씨는 “고도부끼지역의 늙은 일본인 노동자들은 임금이 비싸 하루이틀 쉬어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2∼3일에 한번씩 일을 나간다”며 “같은 일을 하더라도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일본인에 비해 턱없이 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인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위험하고, 어렵고, 더러운’ 곳에서 일하지만 말이 잘 안 통하다보니 일하다 다치는 일도 수두룩하다. 주의해야 할 사항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위험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인 사용자의 폭행도 심심찮게 터진다. 애초 일당 2만엔을 받기로 하고 왔는데 약속과 달리 1만5천엔만 줄 경우 이에 항의하면 사용자들은 “싫으면 그만두라”거나 “경찰 또는 출입국관리소에 데리고 가겠다”며 협박하기 일쑤다. 시티유니온 무라야마 위원장은 “일본인 사용자는 외국인 노동자한테 맥주병이나 재떨이를 던지기도 하는데 보복이 두려워서인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폭행하는 경우도 있다”며 혀를 찼다. 더욱 우울한 건 폭행을 당하더라도 불법체류 외국인은 강제출국이 두려워 분을 삭이고 마냥 참아야 한다는 점이다.

공포의 강제출국… 양성화 대책 세워야

한국과 일본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일간 출입국 자유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몽준 월드컵조직위원장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일본 내 불법체류 한국인 양성화에 노력하겠다”며 “불법체류 한국인들이 3D업종에 종사하면서 일본 산업의 공동화를 막는 데 기여하고 있는 만큼 이들을 구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당국은 “불법체류자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양국간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 김윤성 영사는 “우리쪽은 일본사람들이 기피하는 건설현장에서 우리 불법체류자들이 대신 일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비자면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쪽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불법체류 한국인 여성을 문제삼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곤혹스러워했다. 시티유니온 무라야마 위원장은 일본당국의 이런 태도를 ‘일본의 두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건설현장이든 항만이든 외국인 노동자가 없다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 외국인 노동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본 산업과 경제가 공동화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으면서 한쪽에서는 이들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 일본입니다.”

도쿄=글·사진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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