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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정부로부터 망명하고 싶다” 전자주민카드 재도입 겨냥한 대기업들의 스마트카드 컨소시엄 발족에 시민단체들 싸늘한 반응
지난 6월3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는 정보인권 관련 시민단체들을 긴장시키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삼성SDS, LGCNS 등이 참여한 ‘스마트카드 컨소시엄’이 발족한 것이다. 스마트카드는 마이크로칩이 내장된 차세대 카드로, 현재 신용카드 등으로 사용하는 마그네틱 카드보다 훨씬 많은 용량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 사업성이 높은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삼성, LG 등 대기업들은 침체에 빠진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에 활력을 줄 것이라며 큰 기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스마트카드 컨소시엄이 지난 1995년 논란 끝에 무산된 전자주민카드 도입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기술진에 끌려다닌 공무원들
전자정부는 DJ정권이 햇볕정책 못지않게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사업이다. DJ정권은 임기 안에 전자정부 기반 조성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11개 중점사업을 선정해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사업 성과를 내려다보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특히 담당 공무원들이 IT 기술에 박식한 민간 기술진에 끌려다님으로써 이 사업이 시장과 기업의 논리에 따라 교묘하게 변질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감사원이 지난해 6∼9월 실시한 전자정부 11개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면 몇몇 사업에서 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중앙인사위원회가 삼성SDS와 함께 추진한 인사정책지원시스템은 그 대표적 예다. 중앙인사위원회는 2000년 8월 입찰 공고를 내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내용의 사업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삼성SDS와 사업자 계약(계약금 10억5천만원)을 맺는 과정에서 삼성SDS가 개발한 PDSS패키지를 이용하는 것으로 사업내용이 변경됐다. PDSS패키지는 삼성그룹 내에서 사용하던 인사관리 프로그램이다. 삼성SDS 관계자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미 안정성이 검증된 PDSS패키지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는데 중앙인사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앙인사위원회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전자정부 사업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바람에 단기간에 안정성이 보장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삼성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1개 중점사업 모두 대기업이 독식
감사원 지적에 대한 중앙인사위원회의 해명은 좀 궁색하다. 중앙인사위원회 관계자는 “애초 인사정책지원시스템을 31개 정부기관에 사용하는 것으로 계획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를 고려하지는 못했다”며 “만약 이 시스템을 사용하려면 소유권이 교육부에 있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교원인사관리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된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유지·보수는 18개월 동안 삼성쪽에서 무료로 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비용 문제는 당분간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SDS는 행정자치부가 추진한 전자결재시스템 사업에서도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도록 제안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됐다. 전자결재시스템도 애초 행자부가 사용하고 있던 나라21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으로 계획됐으나, 삼성SDS는 2002년 7월 제출한 사업수행 계획서에서 삼성이 개발한 에이큐브(ACUVE)를 사용하도록 제안했다. 삼성SDS 관계자는 “사업의 효율성을 위해 에이큐브를 제안했는데, 감사원이 소유권 문제를 지적해 소유권을 완전히 행자부에 넘겨줬다. 따라서 사용권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삼성SDS는 효율성을 명목으로 몇몇 사업에서 사업 내용 변경을 제안했는데 담당 공무원들이 이를 견제하지 못했다”며 “대기업들은 국책사업에서 효율성과 사업적 이득에 중점을 두게 마련인데 이번 사업에서도 담당 공무원들이 이를 막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정경제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정정보시스템은 행정의 필요성과 무관하게 추진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재정정보시스템은 정부 회계에 복식부기를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사업”이라며 “복식부기 도입이 애초 2003년에서 2005년 이후로 미뤄졌는데도 이 시스템 구축 사업은 애초 계획대로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단식부기 결산도 가능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복식부기가 도입될 경우 이 시스템을 보완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LGCNS 관계자는 “복식부기가 도입될 경우 프로그램의 일부를 보완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털어놨다. 전자정부 11개 중점사업을 대기업들이 독식한 것은 전자정부 사업의 또 다른 한계다. 전자정부특별위원회(위원장 안문석 고려대 교수)가 지난 1월 발간한 <전자정부백서>에 따르면 삼성SDS와 LGCNS는 중소 IT업체와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해 5개씩 나눠가졌다. 나머지 1개 사업 역시 제휴한 두 업체가 차지했다. 하지만 삼성SDS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741억원)과 시군구행정정보시스템(808억원) 등 굵직한 사업을 챙겨 LGCNS보다 짭짤한 재미를 봤다. 이처럼 대기업의 독식 현상에 대해 전자정부 기반 사업을 주관하던 전자정부특위도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로비가 오고 갔을까
하지만 IT업계의 얘기는 다르다. 한 IT 중소업체 대표는 “중소기업도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요구한 기간 내에 완벽하게 전자정부 사업을 수행해낼 수 있었다”며 “그러나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비교 우위에 있는 영업력을 앞세워 전자정부 사업을 독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업력은 무엇을 의미할까. 또 다른 업체 대표는 “영업력은 자금과 인맥을 동원해 로비를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DJ정권이 주요 업적으로 내세우는 전자정부 사업에 과연 로비가 작용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전자정부 담당 공무원들과 대기업들만이 알고 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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