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독자편집위원회의 마지막 회의가 열렸다. 2기 위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 기사예고제 실시, 기자청문회의 상설화 등 많은 성과를 남겼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논란을 빚었던 기사는 373호 표지이야기 ‘폭풍의 아들 이종범’이었다. 대부분의 위원들, 특히 여성위원들이 굳이 표지이야기로 할 필요가 있는 아이템이었는지 의문을 표명했으며 ‘이종범 현상’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윤운규 위원은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기사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변현단 374호 문화면의 ‘이타적 유전자’와 과학 ‘너무나 인간적인 식인풍습’은 아주 잘 소개된 내용이었다. 이번 표지이야기 ‘상처받은 통일운동’은 기자들의 날카로운 예봉을 의심하게 한다. 표지 제목에서와 같이 ‘오만과 편견’을 가진 자들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는 부분이 부족하고, 통일을 진정으로 주도해내갈 수 있는 자들이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과감하게 던지지 못해서 참 안타까웠다. ‘움직이는 세계’에서 보증금 에피소드는 루마니아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흔히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비일비재한 것들이다. ‘통신원 NG 리포트’에서는 취재에서 겪은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차라리 흥미진진하지 않겠나. ‘박노자의 북유럽탐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박노자 교수가 그리는 북유럽은 독자들에게 때로는 환상을 던져주고 있다.

천현주 370호 논단 ‘우리 안의 복거일’을 읽고 정말 우리말 사용법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또한 사후피임약을 다룬 371호 표지이야기도 동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솔직히 우리의 현실에서 피임약의 수입을 허용하느냐 마느냐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전에 국민들의 성에 대한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372호 기자가 뛰어든 세상 ‘결혼게임의 심판을 보다’를 읽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랑으로 한 가정을 만드는 결혼이란 것을 외관상의 조건에 먼저 꿰맞춘 뒤에 한다는 것이 참 삭막하다고 느껴졌다.

남우희 370호 표지이야기는 외국 지성 소개에 지면을 많이 쓴 것도 좀 그렇고 윤건차 교수의 분류를 또 보여준 것도 그렇고 지식인문화의 쇄신을 촉구하기에는 많이 모자란 것 같다. 374호 ‘상처받은 통일운동’은 너무 준비없이 쓴 것 같다. 진중권씨 글을 이번호에 넣은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여러 각도에서 나온 글들로 풍성하다면 몰라도, 이번호 같은 데서 진중권씨의 ‘이죽거리는’ 글은 별로 필요없는 것 같다.

이희진 요즘 들어 거의 모든 기사들이 현상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먼저 사후피임약 기사는 정말 호기심만 잔뜩 부풀려놓았던 것 같다. ‘에이즈는 없다’라는 기사는 어떤 시각을 흡수해야 하는지 헷갈리기도 하고 좀더 자세히 에이즈에 관한 전반을 알고 싶으므로 특집으로 다시 한번 되짚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휴대폰에 관한 특집기사는 주로 새로운 휴대폰의 기능이나 상투적 문화에 초점을 맞춘 것 같고 전체적으로 쉽게 읽어내려가기 어려웠던 점이 마음에 걸렸다. ‘시사SF’가 비약적으로 괜찮아진 것 같다. 이번 달의 시사SF는 전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움직이는 세계’가 전체적으로 예전보다 조금 쉬워진 것 같아 좋다. 372호 공포를 다룬 표지이야기에 독자의견이 하나도 안 올라와서 무척 난감했다는데 난 괜찮게 읽었다. 지나치게 가볍거나 흥미 위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적절한 무게와 분석을 두고 잘 썼다고 생각한다.

2002월드컵 때문에 2002부산아시안게임이 가려져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조명했으면 좋겠다. 이제 수능도 얼마 안 남았고 면접봐야 하는 수험생도 많다. 그러니까 수험생들을 위해 지나간 중요사건들을 되짚어주는 코너를 일시적으로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하철 보부상’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물건 파는 사람 따로 있고 지키는 사람도 따로 있어서 의외로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더라.

류재수 371호 과학 ‘농약을 내쫓는 해충의 천적’은 재미있고 새로운 실험이며 먹을거리문화에 큰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 373호 정치면 ‘JP 또 몸풀 때가 됐군’은 항상 때가 되면 좌고우면하여 가냘픈 목숨을 연장하려는 태도를 잘 지적했다. 373호 사람과 사회 ‘농약에 찌들어 살란 말이냐’는 농촌 출신이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농부증을 다뤘다. 농부들은 그런 줄 알면서도 탄광에 들어가는 광부와 같은 심정으로 농약을 친다. 농림부와 농협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농부증을 직업병으로 인정해 산재 혜택을 줘야 한다.

경륜·경마·복권·카지노 등 사행산업의 모든 것을 다뤄봤으면 좋겠다. 성과급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으며 낙하산 인사와 형식적인 공직개방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

윤운규 370호 표지이야기 ‘말하라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기사는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다. 현재 지식인들의 위기 아닌 위기의 원인과 대응책을 적절히 제시해준 좋은 기사였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씨가 “보수파는 압도하고 있으되 보수주의자는 극히 드물었던 것이고 진보주의자는 많되 진보파는 아주 적다”고 했던 말은 한국 지식인 지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374호 기자가 뛰어든 세상 ‘내 양심을 몽땅 벗긴다’라는 글을 읽으면서 ‘60억 인류에게 60 양심’이라는 부분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일상 생활 속에 숨어 있는 철학의 문제를 살핀 점은 높게 살 만하다.

정일웅 370호 성역깨기 ‘여성성직자는 더 투쟁해야 하나’가 좋았다. 그동안 성역깨기의 기사가 다른 기사들과 별다른 차별성을 가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는데, 370호의 기사는 종교계라는 성역과 그 속의 남녀차별이라는 또 하나의 성역을 기사화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371호 특집 ‘휴대폰 너 어디까지 왔니?’는 휴대폰 요금인하와 관련된 주장이 활발히 제기되고 호모텔레포니쿠스가 등장하는 현 상황에서 참으로 시기적절했다고 본다. 단순히 휴대폰의 기능적 성장뿐 아니라 그것의 정치적 관계, 문자메시지의 문화적 코드, 요금인하와 관련한 기사까지 내용이 풍부한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374호 과학 ‘너무나 인간적인 식인풍습’은 개인적으로 무척 반가운 기사다. 학창 시절에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많아 식인풍습에 대해서도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나 많은 것이 오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알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대신 알려주니 참으로 반갑고 괜히 고맙기까지 하더라.

실업계 고교문제와 검정고시문제를 다시 거론하고 싶다. 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걸고넘어지려고 애초부터 작정했다. 이 땅에서 고졸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루었으면 한다. 학벌카스트라 하면 늘 서울대, 연·고대와 그 주변의 이야기만을 다루는데 그것이 아니라 고졸과 대졸의 넘어설 수 없는 장벽에 대해 다루었으면 한다. 지난 회의에는 검정고시의 평일시행문제만 이야기했는데, 검정고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도 개선해야 할 것이 많다. 검정고시는 모든 교육정책의 사각지대다. 검정고시의 난이도는 매번 시험마다 크게 차이가 난다. 일정한 수준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검정고시 응시자가 많으면 시험을 쉽게 출제하여 응시자 병목현상을 해소하고, 또 응시자가 적으면 시험을 어렵게 출제하여 응시자 수의 적정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검정고시 합격 뒤에 대해서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고졸사원을 요구하더라도 검정고시 통과자는 제외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일반 공장의 경우 고졸사원과 중졸사원의 봉급이 월 5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중졸사원이 검정고시를 통하여 고졸자격을 취득하더라고 고졸사원급의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다(독자편집위원회 커뮤니티 www.freechal.com/hanifriend).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