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편집위원회 ] 2001년05월29일 제361호 

당신들은 거만했어!

홈페이지 등 독자와의 소통 제기한 3차회의… ‘n개의 성’을 읽고 슬펐다?

인터넷에서 ‘www.freechal.com/hanifriend’를 치면 ‘한겨레21의 친구’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사이버 공간에 ‘멀리 함께 갈 독자들의 모임’을 만든 장본인은 바로 김현성씨다. 지금은 2기 독자편집위원들만의 모임으로 시작하지만 앞으로 1기 편집위원들을 초청하고, 더욱 외연을 확대하여 일반 독자들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신윤동욱 기자의 팬임을 자처하는 이희진씨는 아예 홈페이지(cafe.daum.net/syuk)까지 만들어놓고 앞으로 신윤 기자의 모든 기사를 ‘씹을’ 작정이다. 홈페이지 이름은 ‘슈팅스타 신윤동욱’.

“<한겨레21>은 그동안 너무 거만했다. 좀더 자상하게 독자들과 함께 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번 회의에서 편집위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물론, 베트남 양민 학살문제 같은 의제는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함께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홍구 교수나 박노자 교수같이 일정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필자들은 공개강의 등을 통해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독자편집위원 홈페이지는 그 작은 시작이다. 이번 회의는, 잡지는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중요한 것은 쓰는 이와 읽는 이의 지속적인 소통, 바로 그것이다.

지난 기사들에 대한 평가에서 360호 표지이야기 ‘n개의 성’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소재 선정과 접근 방식이 신선했고, 우리의 성관념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사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의 병역문제나 성 역할 전환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노후문제를 다룬 359호 표지이야기는 너무 정보제공 위주로 흘렀다는 비판을 받았고, 358호 ‘죽을 권리’는 주제가 일관되지 못하고 기사들이 너무 산만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윤운규 소파 개정 이후 미군문제에 대해 제대로 조명한 기사를 찾아보지 못했는데, 이는 우리의 냄비근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360호 이슈추적 ‘독극물 방류도 공무?’는 다시금 그 문제를 상기시켜주는 좋은 기사였다. 360호 표지이야기 ‘n개의 성’ 중 하리수 인터뷰를 읽고 상당히 슬펐다. 그는 차라리 확실한 상품이 되겠다고 말했다. 당당히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말하는 사람이 상품으로 전락하는 모습이 슬프다. 트랜스젠더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사회적 인식이 안타까웠다.

류재수 358호 표지이야기 ‘죽을 권리’는 안락사를 다뤘는데, 깊이있는 접근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글 말미에 가면 ‘사회적 타살’로 초점이 옮아가는데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들의 횡포를 다뤄주면 좋겠다. 의료사고가 나도 민간인들은 뭐가 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변호사를 선임하면 수백만원 정도의 수임료를 먼저 줘야하는데, 정작 재판은 지지부진할 때가 많다. 공무원사회에도 이기주의가 팽배한데, 우리 사회의 이기주의에 대해 한번 파헤쳐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변현단 내가 예쁜 여자를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웃음) 이번 360호 표지이야기 ‘n개의 성’은 굉장히 신선했다. 지금까지 기사에서 ‘부드러움’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이 기사는 눈에 띈다. 표지모델 하리수는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들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병역문제도 해결이 안 된다. 이 문제는 인권에 관련된 문제인데, 제대로 제기하지 못한 것 아닌가. 그리고 ‘생식기로 할 일을 나누지 말라’라는 기사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으나 단순히 성 역할의 전환에 중점을 두고 말았다. 게다가 전업주부 남편의 침대 안 고민 이야기는 불필요했다. 그보다는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중요하다. 360호 월드컵 특집은 재미있었으나 다른 시사주간지에서 다루는 방식과 똑같았다. 월드컵에 들떠서 문제점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또한 스포츠로서의 월드컵을 차분히 바라볼 필요도 있다. 골프 등 가진 자들은 개인적인 스포츠를 좋아한다. 축구는 집단적인 스포츠이다. 우리에게 축구, 특히 월드컵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다양하게 바라봤으면 좋겠다. 360호 문화면 ‘슬픈 음악, 파두를 아시나요’는 정말 좋은 기사였다. 앞으로는 음악, 시 등 정서적으로 확실하게 어필하는 것을 다뤄줬으면 좋겠다.

최근 ARS를 통해 성금 모집하는 방송프로그램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모금이 단순한 오락성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이 문제와 함께 기부금문제 전반을 한번 다뤄줬으면 한다. 그리고 드라마 <푸른 안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드라마는 굉장히 잘 짜여진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불륜의 잣대로 남녀문제를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각자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겨레21>에서도 되짚어보는 게 어떨까. 사랑에서의 집착과 소유욕, 그런 문제들을 제대로 짚어보자. 여름이 다가오는데, 개고기 먹는 문화를 재미있게 다뤄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김홍신 의원이 개고기를 법제화하려 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는데, 북한에서도 개고기를 재료로 한 음식이 30가지나 된다고 알고 있다. 개고기는 한민족의 고유한 음식인 것이다.

김장효숙 아시아의 5월을 다룬 359호 아시아 네트워크가 좋았다. 우리의 5월도 치열했는데, 아시아에서 5월의 의미를 새롭게 알 수 있었다. 버클리 음대를 다룬 358호 문화면 기사는 조금 미흡했다는 생각이 든다. 버클리대 문제만을 음악란에 싣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더 좋은 음악이나 공연을 소개해줬으면 좋겠다. 스포츠면을 좀더 다각화해볼 필요가 있다. <시사저널>에서 외국인 선수들의 언어장벽 같은 문제를 다룬 적이 있었는데 참신했다. 그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봤으면 좋겠다. ‘기자가 뛰어든 세상’을 좋아했는데,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다. 응급실 체험 같은 것은 기자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신선했으나 점점 그 난의 의미가 뭘까 궁금해졌다.

우리나라의 ‘결혼문화’에 대해 한번 다뤄봤으면 한다. 결혼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들의 광고가 많이 나온다. 요즘 ‘맞춤형’으로 남녀를 선택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 조건을 보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어떤 식으로 결혼이 이뤄지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도 페미니즘 웹진이 생겨서 대학 내 예비역 학생들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여성문제에 대해 지방대학들은 아주 보수적인 곳들이 많다. 대학 내 여성운동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한번 다뤄볼 필요가 있다. 총여학생회가 결성되는 것 자체가 ‘큰 성과’일 정도로 여성운동이 힘든 대학들도 있다.

김현성 정치면은 일간지 수준의 정보만을 준다. 과거 정권들에서는 <한겨레21>이 권력을 과감하게 비판했고, 큰 반향을 얻었다. 지금도 좀더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온정적 보수주의를 주장하고 나섰는데, 그 문제를 철저히 검증하는 것은 어떨까. 문화 기사는 개별적인 사안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주는 기사가 나왔으면 한다. 너무 지나치게 개별적으로 나오는 것 같다. 우리 문화의 큰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려줬으면 좋겠다.

최근 ‘에코파시즘’이란 문제가 떠오르고 있는데, 한번 다뤄볼 필요가 있다. 동강문제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동강 주민들인데, 시민단체들이 별로 관심갖지 않는 것 같다. 새만금문제도 내부 농민이나 어민들을 너무나 무시한다. 시민운동의 운동방식이 대부분 지나친 대국민홍보나 이벤트에 치우치고, 내부 지역민의 고통을 못 다룬다. 이건 마이너리티로 다뤄볼 수 있을 것이다. 기자가 뛰어든 세상으로 대리운전을 해보는 건 어떨까. BMW 등 고급 외제차도 몰아보고, 그 사람들의 밤문화도 체험해본다면 재미있을 것이다.

이희진 359호 ‘우아한 노후’라는 표지이야기는 대안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러나 그 주에 <부산일보>에서 3일 연속으로 이 문제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보는 관점은 약간 달랐지만 대안 같은 건 거의 똑같았다. 좀더 신선한 대안을 아울렀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얼마 전 부산에서 장애인체육대회가 열렸다. 이희호 여사가 왔는데, 경호문제 때문에 정작 행사의 주인인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못 들어가는 사태가 빚어졌다. 귀빈들의 특권은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 이런 문제를 다뤄줄 순 없을까. 그리고 ‘움직이는 세계’에서 세계의 언론논쟁을 다룬 기사가 실렸는데, 우리나라 언론논쟁은 어떻게 진행돼왔는지 잘 모르겠다. 체계적으로 소개해줄 필요도 있다. 언젠가 마약중독자 치료 지원이 미약하다는 기사가 모 신문에 실린 적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경찰들도 마약사범 초범 몇점, 상습법 몇점 등을 정해놓고 실적을 따진다고 한다. 그래서 대체로 초범을 잡으면 점수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 적발해도 치료소에 잘 안 데려다준다는 것이다. 행정당국도 중독자를 병원에 입원시켜도 재정적인 도움을 별로 안 주기 때문에, 보통 중독자들은 3∼6년 정도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1∼2개월 치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마약사범 같은 밑바닥 사람들을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한 재정지원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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