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ww.hani.co.kr/h21![]() |
![]() |
|
기사섹션 : 기획 | 등록 2003.10.22(수) 제481호 |
![]() |
[기획] [피터 아넷 바그다드 제3신] “오지 마라, 여기 죽음이 있다” 피터 아넷의 바그다드 제3신… 안전 장담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호텔에서 짐을 꾸려 나오다
나는 올해 내내 머물던 팔레스타인 호텔에서 짐을 꾸려 나왔다. 그 호텔이 이라크에서 미국의 좌절과 잃어버린 희망의 상징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호텔을 둘러싼 콘크리트 벽이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날마다 부닥쳐야 하는 이곳 경호원들의 신경과민은 더욱 심각해지는 듯했다. 불과 여섯달 전만 해도 팔레스타인 호텔은 환희에 찬 이라크인들이 바로 옆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광장에서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전복시킨, 고삐 풀린 행복의 장소였다. 그곳에 처음 도착한 미군 병사들은 꽃과 악수로 환영받았다. 호텔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었고, 주민들은 미국에서 온 해방군들을 맞기 위해 몰려들었다.
심각해지는 경호원들의 신경과민
여러 이유로 인해 처음의 그 환희는 바그다드의 미군과 이라크 현지인들 사이의 적의와 의심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하여 콘크리트 벽이 팔레스타인 호텔과 도시 안의 모든 미국 관련 시설을 에워싸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점점 더 많은 이라크인들이 이곳에 외국군이 추가로 더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미국이 지명해 구성한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조차도 이곳에 이미 충분한 외국군이 있어 추가 투입은 필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이라크에 있는 쿠르드족이 강력히 반발하는 1만명의 터키군 파병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말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라크인들이 영국의 군사적 점령에 맞서 반군을 조직한 사례를 역사적 모범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라크 사람은 내국인 경찰이 더 많아지고 진정한 이라크군이 꾸려지길 바란다. 비록 그것이 바트당 정권 때의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국의 정치적 결정권을 미국이 구상하듯이 한참 뒤가 아닌 바로 지금 되돌려 받기를 원한다. 이라크에 파병되는 그 어떤 외국군이라도 점령군에 더욱 적대적으로 변하는 이라크의 민심을 비켜갈 수는 없다. 이는 한국이 파병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뿐만 아니라 남부에 있는 영국군이나 폴란드군에게도 하루하루 위협의 정도가 증가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종전을 공식 선언한 5월1일 이후 100명 이상의 미군이 임무수행 중 사망했다. 이는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의 수보다 두배는 많고, 이런 상황은 부시 정권에게 점점 더 정치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미군 고위 장성 사이에는 반군 혹은 테러조직들이 점점 더 대범해지고 정교해진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기에 콘크리트가 필수 물자가 되었고, 이것으로 만든 거대한 블록들이 군 막사와 부대를 에워싸고 보호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애초 현지인들이 환영하고 나아가 협조해줄 것이라는 미국의 애초 가정과 거리가 멀다. 콘크리트 벽은 이웃과의 관계를 개선하거나,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그리 유용하지 않은 물건이다. 팔레스타인 호텔에서의 생활은 이라크 생활에 닳고 닳은 외국인들의 전형적인 환경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감옥 생활을 연상케 한다. 무장한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와 식당, 로비에 상주한다. 주차장은 차량 폭탄의 위협 때문에 텅 비어 있는 거대한 시멘트 바닥이다. 지난 6주 동안 10여개의 외국인 관련 시설들이 폭발물의 표적이 된 만큼 이런 조치는 한편 당연하기도 하다. 긴장은 모든 곳에서 넘치는 불안감과 뒤섞여 더욱 음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며칠 전 호텔에서 식사를 하다 만난 사람은 대형 미국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잘 알려진 영국인 보안 전문가다. 그는 내 테이블로 와서 자신의 “엄습하는 죽음” 이론을 펼쳐 보였다. 마침 그날은 두명의 자살테러범들의 폭탄테러 시도로 미국의 정보 담당자들과 정부 관료들이 묵고 있는 바그다드 호텔이 날아갈 뻔한 사건이 있었다.
“미군은 국경치안이나 책임져라”
“우리가 다음이다.” 그가 감정을 넣지 않고 말했다. “저항세력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라크에서의 외국군의 시도를 허물어뜨리려고 작정했다. 자살테러를 어떻게 막는가? 그들은 막을 수 없는 자들이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엄습하는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나는 그 보안 전문가의 비관주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이라크 재건 사업에 간여하는 수백명의 미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기에, 장밋빛 그림보다는 암울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직업상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의 전망이 적중하는지 혹은 빗나가는지 알기 위해 팔레스타인 호텔에 더 머물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호텔을 떠나는 것이 꺼려지기도 했다. 나는 그곳에 관한 많은 추억이 있다. 그 호텔의 옥상에서 나는 이번 전쟁의 전반부 반가량을 나는 지난 4월8일 미군 탱크가 근처 줌후리야 다리를 건너다 팔레스타인 호텔에 로켓 발사 공격을 했을 때도 이곳에 있었다. 포탄은 17층의 로이터 지국을 강타해 카메라 기자 타라스 프로츄크와 호세 쿠소가 사망했다. 미국 당국은 아직도 그들의 사망을 설명할 뚜렷한 이유를 대지 못하고 있다. 호텔에서 나와 이라크인 거주지역에 살면서 나는 세탁과 룸서비스 같은 작은 사치는 포기했다. 그 대신 나는 더 많은 이동의 자유와 현지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더욱 정확한 그림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티그리스강 동쪽 기슭 근처에 있는 카라다 지구의 한 조용한 거리에 자리잡은 작은 집을 세냈다. 바그다드 외곽에 농장을 가지고 있는 양봉업자이기도 한 이라크인 집주인이 바로 옆집에 산다. 그는 부인과 어린 딸이 있고 둘째아이는 다음달쯤 태어날 예정이다. 나의 또 다른 이웃은 이곳에서 여러 해 동안 살아온 레바논인 사업가다. 내가 사는 카라다 지구는 비교적 부유한 상업지역이라 대다수 주민들은 미국이 벌이는 재건사업의 성공 여부와 자신들의 이익이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조차 사람들에게 공존하는 모순적인 이중적 감정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안정과 정치적 정통성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바라지만, 또 한편으로는 조속한 독립을 갈구한다. 이라크인들은 미국이 약속한 민주주의를 믿지만, 그것이 지금 바로 오기를 원한다. “물론 미군은 필요하다. 그러나 바그다드에서는 아니다. 우리 얼굴에 맞닥뜨리는 곳은 싫다”고 이곳 재계 유력자인 말릭 주베이디가 말했다. “미국인들은 도시의 치안은 이라크인에게 맡기고 지방에 가 국경 치안 같은 임무를 책임져야 한다. 우리가 전쟁이 계속된다고 느끼는 이유는 미국인들과 다른 외국인들의 존재가 너무나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붙여지는 후세인의 사진
외국군이 이라크 내정에 개입하는 데 따르는 위험은 폭발테러가 있었던 세곳의 위치를 보면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그 세 지역은 바그다스 서쪽 수니파 도시인 팔루자, 바그다드 내부의 사드르 시티(옛 사담 시티), 남부 지역의 시아파 거점 카르발라시이다. 얼마 전 팔루자에 찾아간 나는 35년 전 베트남 베트콩 지역에서 벌어진 미국의 군사작전이 떠올랐다. 이곳의 명칭 ‘수니 삼각지대’는 그 사이공 북쪽의 ‘철의 삼각지대’라는 이름과 유사함 울림이 있다. 팔루자에서 미군들은 대로를 순찰하며 길가에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지뢰와 폭발물을 찾고 있었다. 헬리콥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고, 주민들은 이 기세에 억눌린 듯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지난 5월 이후 십여명이 넘는 미군들이 팔루자에서 살해되었다. 또 그 충돌에서 많은 주민들이 사망했기에 긴장은 여전히 팽팽하다. 유프라테스강 기슭에 자리한 마을의 한쪽 모퉁이에 누군가 새로이 사담 후세인의 사진을 붙여놓았다. 이전에 그 광고판에 있던 거대한 사담의 사진이 지워진 바로 그 위에 말이다. 팔루자는 사담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고 평가받는 곳이다. 이곳 출신 다수의 인사들이 사담 정권의 정보나 군 관련 업무에 종사하였다. 미군에 대한 분노는 종파의 차이를 넘어선다. 최근 그 분노가 바그다드 내부 사드르 시티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통해 표출되었다. 사드르 시티는 얼마 전까지 사담 시티로 알려지던 바그다드 내부 슬럼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수많은 사담 후세인의 초상화나 동상이 시아파 성인이나 현재 지도자의 모습 등으로 대체됐었다. 그 벽화 중 하나는 노동자광장 로터리에 있는 대형 광고판인데, 이곳에는 이슬람 학자인 무하마드 바크르 알 사드르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사드르 시티의 폭동은 이라크에 주둔하는 모든 외국군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례다. 그 폭동사태는 젊은 반미 시아파 성직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의 추종자들에 의해 시작됐다. 그의 아버지와 삼촌들은 사담 후세인에 의해 살해됐고, 그들의 모습이 바로 노동자광장 광고판에 새로 그려진 얼굴들이었다. 젊은 무크타다는 카리스마를 갖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했고, 그의 세력은 보수적인 옛 시아파 인사들을 넘보는 수준이 되었다. 사건은 한 자살테러범이 사드르 시티에 자리잡은 이라크 경찰서를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테러범은 차를 타고 경찰서 문을 부수며 들어와 강력한 폭탄을 터뜨렸고 자신 외에 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몇 시간 뒤 미군은 두어 블록 떨어진 무크타다 알 사드르의 본부를 에워싼 뒤 무력을 이용해 내부에 들어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무장해제했다.
“미국의 욕심은 절대, 절대 이뤄질 수 없다”
미군들이 떠난 뒤 지역 민병대 세력들은 그 거리를 봉쇄했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온 미국의 순찰차 한대는 자신들의 본부가 침범당했다며 분노한 시아파 군중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이후 일어난 충돌에서 각각 두명의 미국인과 이라크인이 사망했다. 하루 뒤 금요기도에서 이라크인들의 유해를 담은 운구 행렬이 사드르 시티를 관통해 행진했다. 나는 성직자의 고위 측근인 세이크 압델 하디 알 다라지를 사드르 시티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자신의 극렬한 반미적 견해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미국은 전 세계를 테러와 무지로 이끄는 테러집단 이상 그 무엇도 아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자신을 민주주의 옹호자라 부른다”고 수염을 기른 그 성직자는 이야기했다. “미국의 이라크에서의 욕심은 절대, 절대 이뤄질 수 없다. 나는 미국인들에게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라.” 잠재적으로 더한 폭발의 가능성을 갖는 곳이 시아파 카르발라시다. 이 도시에는 웅장한 금빛 모스크들와 열광적인 신자들이 있다. 나는 몇년간 이 시아파 도시 케르발라를 여러 번 방문했다. 이 도시는 사담 후세인에게 그랬던 만큼 미국인들에게도 정치적으로 골머리를 앓게 하는 곳이다. 첫 걸프전 이후 케르발라에서 있었던 시아파 소요를 잔인하게 진압하고 이어진 종교 대학살에서 수천명을 살해한 사담과 달리, 미국인들은 그저 질서유지 정도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 질서유지조차 어렵다. 이슬람의 주요 시아파 성지가 케르발라에 자리잡고 있어서 각양각색의 종교운동 단체가 이곳에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는 이란의 더 근본적인 시아파 견해를 추종한다. 최근 금요기도에서 일어난 종교간 싸움에 의해 세명의 미군이 살해된 것에서 드러났듯 이런 복잡한 수렁에서 주로 기독교 신자인 미군들은 엄청난 위험 부담을 안고 이동하고 있다. 내 오래된 기자 친구인 카림 코바르는 이전투구를 거듭하는 시아파 분파들과 수니파, 쿠르드족이 6개월 안에 내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올해 전쟁이 시작되기 전 많은 대학자들이 새로운 이라크 건설의 가장 큰 장애물은 종교갈등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갈등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카림은 미국과 다른 외국 군대의 질서회복 노력이 이 내전에 휘말리는 결과로 치닫고 있다고 본다. “그들은 이 안에 빨려들어갔다가 뱉어내어질 것이다. 고역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다”라고 카림은 내다본다.
폴란드 군인의 민간인 사살
그동안 온화한 행동으로 신문기사의 제목이 되는 일이 드물던 폴란드군조차 벌써 문제를 겪었다. 한 폴란드 군인이 바그다드 외곽 남쪽 힐라 근처의 아부 알 완 마을에서 정기 순찰을 돌던 중 한 남자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 놀란 나머지 총을 쏘고 그를 사망케 하였다. 알고 보니 죽은 자는 동네 의료기관의 경비요원이었다. “연합군은 이 마을에서 공격받은 적이 없다. 그들은 왜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이 대하는가? 왜 무고한 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가?”라고 죽은 남자의 형제 중 하나인 세하브 하미드는 기자들 앞에서 절규했다. 폴란드군 당국자들은 그들의 병사가 잠재적 위험에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고 해명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 이 살인과 복수의 악순환이 이라크에서의 미군 작전을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그 다음으로 심각하게 우려되는 곳은 모술이 중심에 자리잡은 북부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이웃 터키가 오랫동안 탐을 낸 지역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는 겨우 터키를 달래 이라크 치안 유지 목적으로 파견한 1만명의 병사를 모술이 아닌 바그다드에서 서쪽과 북쪽에 자리잡은 ‘수니 삼각지대’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터키가 모술과 그 도시에 사는 다수의 쿠르드족, 이란과 터키 국경과 나란히 자리잡은 북서쪽 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자명하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자치권만을 누려왔지만, 터키는 이라크 쿠르드족이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국가를 수립할 가능성에 대해 무척 우려하고 있다. 그런 경우 터키 내부 쿠르드족의 심각한 동요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군이 모술에 도착하는 것은 터키인뿐만 아니라 그곳에 파견된 다른 외국군 모두를 화약고로 내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위험의 가능성이 이라크 도처에 도사리는 상황에서 미국은 유엔이 새로운 안보리 결의안을 통과시켜 이전에 돈과 도움을 주길 꺼려 했던 나라들의 참여를 촉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그러나 카라다 내 이웃들에게 이런 거대한 정치적 사안들은 하루하루 삶의 무게보다 더 중요하게 다가오지 못한다. 한주 전에 이라크 미군 최고사령부는 전력 공급이 이전보다 훨씬 원활해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내가 새로 입주한 집에서 전기는 지난 48시간 동안 5시간만 들어왔을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정자들에게 신뢰를 가지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