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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기획 등록 2003.10.22(수) 제481호

[기획] [아시아의 모계사회 | 중국 모쒀족] 여인천하에 아빠는 없다

어머니 성 따르고 재산도 딸에게 물려줘… 사랑이 지속되는 동안만 남녀관계 유지

중국에서 윈난(雲南)성은 소수민족이 많은 지역으로 유명하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25개 민족이 윈난성에 살고 있다. 윈난성 동북쪽에는 호수면의 해발 고도가 2700m에 이르는 루구호가 자리잡고 있다. 백두산 천지보다 위에 자리잡은 루구호 일대에 모쒀족이 살고 있다. 모쒀족은 철저하게 사랑에 기초한 남녀간의 만남을 불문율로 여긴다. 철저하게 사랑이 지속되는 동안만의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모쒀족은 지금까지 모계사회의 풍습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성(姓)을 따르고, 재산은 어머니에게서 맏딸에게로 대물림된다. 여자들은 당당하고도 자유로운 생활을 누린다.

딸이 없으면 맏며느리가 가장 노릇

모쒀족은 모계사회답게 철저히 여자 중심으로 생활을 영위한다. 여자는 어느 가정에서나 가장 구실을 하며 ‘다부’라 불린다. 대부분 맏딸이 집안의 가장이 되지만 맏딸보다 더 능력이 있고 똑똑한 동생이라면 다부가 될 수 있다. 딸이 없을 경우 맏며느리가 가장 노릇을 한다. 우리 조상들이 대를 잇기 이해 데릴사위를 얻었듯이 모쒀족은 데릴며느리를 얻는 것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으면 자매의 딸을 다부로 삼기도 한다. 이들은 다부를 중심으로 대가족을 이루며 함께 살아간다. 한 가정에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자매형제들, 할머니의 자녀들 그리고 외손자들이 있다.

모쒀족은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따로 두지 않았다. 철저하게 사랑이 지속되는 동안만의 남녀관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부일처제와는 다른 방식의 ‘프리섹스’가 이뤄진다. 청춘 남녀가 마을의 축제나 잔치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으면 여자(아샤)는 밤에 남자(아주)가 자신의 처소로 올 수 있도록 대문이나 창문을 살짝 열어놓는다. 남자는 해가 저물기를 기다려 여자 집에 들어간다. 긴 밤을 보낸 남자는 동이 틀 무렵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 집안을 위해 일한다. 이렇게 두 남녀가 각자 자기 어머니의 집에서 살면서 밤에만 만나는 일종의 혼인을 쩌우훈(走婚) 또는 아샤혼이라고 부른다.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진지하게 사귀고 싶다면 먼저 선물을 주고받는다.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이 만든 허리띠나 공예품 등을 주고, 남자는 여자에게 가락지나 팔찌, 귀걸이 등의 장신구나 전통의상 등을 선물한다. 그렇게 둘만의 언약식과도 같은 아샤혼이 시작된다. 또 이 둘의 관계가 지속되면 남자는 술, 담배, 차 등의 선물을 들고 여자의 집으로 인사하러 간다. 이 선물을 ‘꾸정례’라고 한다. 이를 받은 다부는 조왕신을 모신 부엌 중앙의 화덕 위에 꾸정례를 바친다. 이로부터 이 남자는 여자 집안에서도 인정받는 아주가 되고 공공연하게 여자 집을 출입할 수 있다.

모쒀족의 여자가 아샤혼을 치를 수 있는 나이는 13살이다. 하지만 대부분 10대 후반부터 관계를 시작한다. 한번 아샤혼을 맺었다고 해서 의무감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쿨’하게 헤어질 수 있다. 만일 여자의 마음이 변하면 밤에 문 열어두는 것을 그만두어 남자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남자의 맘이 변하면 여자의 집에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상대를 찾는다. 인기 있는 여자는 평생 수십명의 남자를 집으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 사람과의 아샤혼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중년에 접어들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의 집에 들어간다. 남자들은 자신 앞으로 땅도 집도 없기에 여자조카의 부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친정에서 살기보다는 여자의 집으로 가서 자신의 자녀들과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쿨한 남녀관계… 아버지 호칭 없어

모쒀족들에게 이혼의 아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샤혼 관계에 있던 남녀가 헤어져도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들의 아이는 이제까지 어머니의 집에서 나고 자란 것처럼 계속해서 어머니의 집에서 자라면 된다. 그래서 모쒀족 출신의 한 수필가는 부계사회에서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아이들이 겪는 정신적인 고통을 모쒀족 아이들은 겪지 않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아이는 어머니와 외삼촌인 쮸쮸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교육을 시킨다. 함께 살지 않는 아버지의 존재는 미미하다. 아버지란 호칭도 따로 없다 외삼촌과 마찬가지로 쮸쮸일 뿐이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축제나 연말연시에 옷가지 등의 선물을 보내는 정도고 자신은 누이의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윈난성= 사진·글 백지순 | 사진가 bekjis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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