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2003년06월04일 제462호 

이라크에 심은 ‘예스 코리아’

〈한겨레〉의약품 캠페인에 참여한 의료진과의 동행기… 온정의 땀방울에 ‘슈크란’으로 화답하는 풍경들

이라크 바그다드로 떠나는 5월24일 아침 아들놈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놓았다. 4만1160원. 용돈을 모은 거란다.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약과 빵을 사주세요.” 여섯살짜리 딸내미도 한마디 거든다. “살과 뼈도 사가야지.” 언젠가 신문에 실린, 살점과 다리뼈가 떨어져나간 제 또래 아이 사진이 자못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손을 내밀다가 아들놈이 덧붙인 한마디에 그만 움찔해졌다. “그런데 아빠, 이 돈 내면 잡지에 내 이름도 나와?” ‘영악한 놈. 제 애비 닮아서 온갖 생색은 다 내려고 하다니. 그래 나온다, 나와! 신서초등학교 2학년 1반 김재희.’

살과 뼈도 사가라던 여섯살배기 딸


사진/ 이라크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라크 여성들은 진료 중에도 결코 차도르를 벗으려고 하지 않았다.


영악함이 적자생존의 법칙인 세상에서 ‘강자’는 의외로 많았다. 요르단 암만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한 상사주재원은 얘기 끝에 ‘인간방패’가 나오자 대뜸 한다는 소리가 “이라크 사람들이 정말 고맙게 생각하죠. 앞으로 인간방패들이 사업을 하면 잘 될 겁니다. 건설업이 유망해요. 다리 좀 놓아주시죠”였다.

얼마 전 신문사 후배는 모르는 나무 이름을 묻는 아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애야, 이 세상 모든 나무는 소나무와 비(非)소나무 두 종류로 나뉜단다. 이건 비소나무다.” 그의 칼 같은 이분법을 빌리자면 세상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두 가지로 분류되고, <한겨레21>의 ‘이라크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캠페인에 동참한 의료진은 전자에 속하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본인들은 “착한 척 하는 게 어찌나 힘이 드는지”라며 킬킬 거렸지만.

꼬박 이틀이 걸려 26일 도착한 바그다드의 ‘알 마시텔’ 진료소는 격전지였음을 보여주듯 아직도 총탄자국이 선연했다. 의료진은 이곳을 양방·한방·치과·약국 4군데로 나눠 진료활동을 펴고 있었다.

기다리는 환자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보니, 의사 우석균(42)씨와 김나연(28)씨는 생후 2년6개월 된 여자아이를 진료하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가져온 컴퓨터단층촬영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본 우씨는 “엉망으로 찍었군”이라고 내뱉은 뒤, 이라크인 통역을 통해 “미안하다”는 소리를 연발했다. 가진 장비라고는 청진기 정도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부담 때문이었을까. 우씨는 그 뒤 들어온 환자를 위해서는 자신의 책상마저 치워버리고 눕힌 뒤 직접 허리근육을 강화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체중과다로 관절이 상한 여성에게는 “몸무게에 비해 관절이 약하다”고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김씨는 조용한 몸가짐과는 달리 예과 1학년 때 이미 ‘오지의 의사’를 결심하고 아프리카 진료를 위해 프랑스어를 배웠을 정도고 강단진 여성이다.

치과의사 정상호(37)씨는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45도를 넘나드는 날씨에다 치과장비가 뿜어내는 열기 때문이다. 이마에서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이 엉뚱하게 환자 입을 향해 떨어지기도 해, 치위생사 정영예(38)씨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수시로 꺼지는 전력사정 때문에 발전기를 돌리는데, 용량이 적어 선풍기를 돌리는 것은 아예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두 정씨는 1997년 장애인 진료에서 맺은 인연으로 바그다드까지 함께 왔다. 또 다른 치위생사 권미선(24)씨는 의료진의 막내로, 재기 넘치는 입담으로 자칫 침체되기 쉬운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권씨는 또 바그다드를 떠나기 전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하고는 가진 짐을 모두 현지인들에게 나눠주는 후덕함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 의사 우석균(오른쪽)씨가 한 여성환자를 진료한 뒤 손짓을 해가며 증세를 설명하고 있다(왼쪽). 치과의사 정상호(왼쪽)씨가 정영예씨의 도움을 받으며 환자의 이를 치료하고 있다. 정씨의 티셔츠는 흐르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의료장비라고는 청진기가 전부였지만…

한의사 고수정(27)씨는 경력 1년의 ‘햇병아리’이지만 항상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알람”(아파요), “남”(누워라) 등 아랍어를 사용해가며 환자들과 마음을 통하려 노력했다. 같이 일하는 김성수(29)씨는 아직 학생이지만 전국한의과학생연합회 대표 자격으로 의료진에 합류한 뒤, 고씨에 앞서 환자들의 상태를 꼼꼼히 파악하는 역할을 맡았다.

약사 김영희(49)씨와 손정석(28)씨는 약국에서 하루 수백건의 약을 나눠주느라 손놀림이 분주했다. 김씨는 부산에서 대형약국을 운영하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의료지원단 소식을 접하고는 “내가 조금만 희생하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바그다드에 오게 됐다. 예비 며느리에게서 “어려운 결심을 하신 어머니가 존경스럽다”는 카드를 받기도 했다. 손씨는 수천만원어치의 약을 사들이고, 5~6군데의 병원에 나눠주면서도 조금의 오차도 없는 치밀함을 보여 동료들의 박수를 받았다.

의료진은 또 바그다드의 초등학생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스케치북·공책 세권·색연필·연필·치약·칫솔이 한 묶음으로 들어 있는 비닐 꾸러미다. 하나에 4달러(4800원)가량 들었고, 초등학교 10여곳 6천여명에게 나눠줬다. 이라크 금수조처로 종이가 없어 1년 가까이 시험도 치르지 못하고, 온 가족이 칫솔 하나를 돌려가며 쓰는 집이 많아 아이들의 이와 잇몸이 허물어져 가는 곤궁한 처지를 고려한 배려다.

의료진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한 변혜진(31)씨는 “처음에는 예방접종을 해주고 싶었다. 설사·폐렴·홍역으로 죽는 아이가 전체 7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방접종은 냉동차가 필요하고, 몇 개월 뒤 다시 맞아야 하는 시간상 제약 때문에 학용품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예방접종 대신 학용품 선물한 속사정


사진/ 의료진에게 학용품을 선물 받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의료진은 물품 주문에서 포장, 배달까지 전 과정에 직접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돈만 대고 학교쪽에 대부분을 맡기려했으나 “어디서 샐지 모른다”는 현지인들의 충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포장은 의료진을 돕는 이라크인들의 ‘대장’ 격인 암마르(29)의 친척집 거실에서 3일 동안 이뤄졌다. 의료진으로서는 익숙지 않은 노동인데다, 밤잠을 줄여가며 하는 작업이라 속도가 더디기만 했다. 그런데도 암마르를 비롯한 이집 남자들은 들락날락거리기만 할 뿐,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풍경은 마치 가내수공업을 하는 이라크인 사장 집에서 한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노동하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아니, 미국이 이라크 대신 북한을 폭격해 한반도가 아수라장이 되고, 석유매장량 세계 2위인 이라크가 전화를 피할 수 있었다면 현실화됐을지도 모를 광경이기도 하다.

5월27일 의료진이 승합차 가득 학용품을 싣고 ‘자마니아 압’ 초등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업시간이 끝났는데도 아이들이 선물을 기다리느라 교실에 머물고 있었다. 엄격한 선생님의 지시 때문인지, 여학생들은 두 손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얹어놓은 채 새초롬히 낯선 이방인을 맞았다. 하지만 선물이 돌아가자 ‘여학생’들은 금새 호기심 많은 ‘어린이’로 돌아왔다. 짝꿍과 공책에 그려진 그림을 비교하다 자그마한 탄성을 질렀고, 떠나는 의료진을 향해서는 “슈크란, 슈크란!”(고맙습니다)을 연발했다.

이라크 어른들은 남녀를 가릴 것 없이 눈빛이 강렬하다. 마치 이라크 하늘에서 작열하는 태양에 맞서기라도 하는 듯하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시선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동자는 해뜨기 직전 한껏 이슬을 머금은 꽃망울 같다. 금세라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버릴 듯하다. 좀체 눈길을 떼기가 힘들다.

의료진이 학용품을 다 돌리고도 멈칫멈칫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스팔트를 갉아먹는 전차 캐터필러의 굉음이 들려왔다. 소총으로 무장한 미군들이 학교 정문으로 뛰어들어왔다. 교장과 교사들을 불러내더니, 죄수 다루듯 뭔가를 닥달했다. 학교에서 권총 한자루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사진/ 한의사 고수정(가운데)씨가 성장통을 앓고 있는 한 여자아이를 진료하고 있다(왼쪽). 약사 손정석씨가 처방전을 들고 온 환자들에게 약을 조제해주고 있다.

공공의료 무너지고 ‘돈벌이 의사’ 넘칠까

그렇다고 초등학교, 그것도 여학생만 다니는 곳을 군화발로 짓이기다니. 소나무와 비소나무를 가르는 후배의 명쾌한 이분법은 여기서 다시 한번 힘을 얻었다. ‘아이의 눈망울’과 ‘미군의 장갑차’만큼 대척점에 서 있는 게 어디 흔하겠는가.

하지만 세상에는 판단유보의 회색지대가 더 많은 법. 의료진이 하루 해가 떨어지면 숙소로 돌아와 밥 해먹기 무섭게, 감기는 눈꺼풀을 치켜뜬 채 회의를 한 것도 그 ‘혼돈’을 줄여보기 위한 것이다.

사담 후세인은 어떤가. 석유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추악한 전쟁을 벌인 미국의 희생자인가, 아니면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이라크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독재자인가. 진료소 주변에서는 모두들 ‘노 사담, 노 아메리칸, 예스 코리안’을 외쳐대고 있는데, 이곳이 사담에 반감을 품고 있던 시아파 거주지역이기 때문은 아닌지 하는 의문들이 꼬리를 이었으나, 누구 하나 시원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의사 우석균씨는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답게 이라크의 의료체계를 고민했다. “이라크의 의료수준이 낙후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쟁 전에는 공공의료체계를 통한 의료서비스 공급이 90%를 유지했는데, 앞으로는 미국식으로 의사들이 이윤추구만 몰두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가 몇몇 병원에 무상으로 공급한 약품과 의료장비가 공공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암마르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암마르는 의료진과 함께 일하면서 이미 권력자가 돼가고 있었다. 그를 통해 진료소 일을 도와줄 이라크인 의사와 ‘도우미’들이 공급됐고, 학용품을 나눠줄 학교가 선정됐다. 의료진은 “암마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외쳤고, 이라크인들은 모두 암마르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무기’는 영어다. 의료진과 이라크인을 연결해줄 유일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쥐고 있는 것이다. 암마르는 바그다드를 떠나는 의료진에게서 이라크 의료인 8명과 고가의 의료장비 등 진료소를 통째로 넘겨받았다. 그가 앞으로 자신의 민족을 위해 그 권력을 사용할지, 아니면 일제강점기에는 일어로, 해방 직후에는 러시아어로, 1·4후퇴 때 월남한 이후로는 영어로 개인의 영달을 꾀한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처럼 될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믿고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의료진이 답답해하며 내린 결론이다.

의료진은 바그다드를 떠나는 5월29일 새벽, 코앞에 두고도 가보지 못한 티그리스 강변을 산책했다. 강 수면은 정지된 듯 고요했으나, 물새 떼의 발자국이 어지러운 걸 보니 살아 숨쉬는 게 분명했다. 유프라테스강과 더불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궈낸 이 강은 그렇듯 유장하게 수만년을 흘렀을 것이다.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했지만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문화로 언제나 다시 일어선 것도 이 강이 주는 풍요 덕이다.

그들은 질긴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다

이라크 국경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은 거꾸로 이라크인들의 질긴 ‘생명력’을 증명해 보였다. 풀 한 포기 자랄 것 같지 않은데도 듬성듬성 억센 풀이 자라고 양들은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을 것 같은 그 풀들을 천연덕스럽게 뜯어먹고 있었다. 양들 옆에는 이라크 유목민이 땡볕 아래서 꼼짝도 않고 서 있고.

“그래 이라크는 다시 이라크인의 손으로 건설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설사 이라크인들이 우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국경검문소를 넘는 의료진의 발걸음이 점차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바그다드= 글·사진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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