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환경 등록 2001.10.17(수) 제380호

[환경] 그날 아침 면봉산은 절규했다

기상청 레이더 건설사업, 경북 북부의 마지막 오지를 강탈하다

단풍이 온 산천을 화려한 빛깔로 채색하는 가을의 절정. 산도 숲도 청명하기만 하다. 그러나 국내의 대표적인 오지로 꼽히는 경북 청송의 보현산 일대에서 대규모의 산림훼손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민간이 아닌 정부기관에서 추진하는 사업으로 산이 두 동강나고 있다.

현장은 경북 청송군 현서면 무계리 산 21번지의 면봉산 일대다. 면봉산은 보현산과 마주하고 있는데, 대구·경북지방에서는 보현산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다. 해발 1124m인 보현산과 해발 1113m인 면봉산의 정상봉은 4km 정도 떨어져 있다. 근처에는 주왕산(721m)과 태형산 등 해발 700∼800m 이상인 산들이 수두룩하다. 청송지역은 이처럼 험준한 산세와 풍부한 먹이사슬 등으로 인해 희귀 야생동물이 자주 나타나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월에는 대구문화방송이 호랑이를 촬영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환경영향평가는 왜 받지 않았나

면봉산은 보현산과 함께 경북 북부권에서 마지막 남은 오지로 온갖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보고로 남아 있었다. 울창한 숲도 숲이지만 면봉산 일대는 경북 제일의 야생동물보고다. 환경부 법정 보호종인 담비, 삵, 수달이 즐비하며 특히 담비는 전국에서 제일 개체 수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에는 한달에만 5번 이상 각각 다른 개체의 담비가 출현한다는 사실이 확인될 정도로 개체 수가 높다. 이런 곳을 기상청은 법적 고려없이 중장비를 앞세워 파헤친 것이다.

10월12일 이른 아침 녹색연합 조사단은 면봉산 일대로 접어들었다. 신갈나무, 굴참나무, 물박달, 서어나무 등 한눈에 어림잡아 보아도 20여종 이상 되는 활엽수림 사이로 도로공사에 투입된 포크레인이 언뜻언뜻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포크레인이 만들어내는 찢어질 듯한 굉음은 온 산을 뒤흔들어놓고 있었다.

대규모의 산림생태계 파괴가 이뤄지고 있는 곳은 면봉산 정상의 청송기상레이더 건설사업 현장이다. 이 사업은 시작부터 환경의 ‘환’자도 고려하지 않고 추진됐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현재 스키장이나 골프장을 건설할 때 볼 수 있는 수준의 대규모 환경파괴가 빚어지고 있다. 산은 정상부터 아래 계곡까지 도로를 건설하느라 흉물스런 생채기로 고통받고 있다.

기상청의 청송레이더 기상대 신설사업은 산 전체를 상하로 잇는 도로건설과 함께 정상 근처 2200여평 규모의 청사 터와 170여평짜리 청사건물 신축을 포함하고 있다. 아랫마을에서 정상근처까지 5.2km의 진입로가 들어서기 위해 4만6950여평의 산림이 사라지게 될 처지에 놓여있다.

이 사업은 99년 여름 수해가 전국을 휩쓴 뒤 청와대에서 수해예방 대책의 하나로 기상청에 예보기상을 강화하라고 지시하는 과정에서 계획됐다. 경북 일대 산악지역이 레이더를 설치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판단했다는 게 기상청쪽의 설명이다. 기상청은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숲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 사업은 2003년 완공 예정이며 기상레이더는 2004년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총사업비는 90억원으로 전액 국고로 추진된다.

기상청의 청송기상대 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현행법에 환경 및 재해 영향평가법에 규정된 환경영향평가를 하나도 거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99년 사업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환경영향평가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으며 기상청과 환경부 사이에 서면 교환이나 면담은 물론이고 전화 한통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기상청쪽은 “환경영향평가법 2조2항에 보면 자연재해대책에 관한 사업은 환경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래서 환경평가를 하지 않았다. 그냥 안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재해대책에 관한 사업이란 재해위험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시설이나 사업일 경우에만 해당한다. 기상레이더를 산 정상에 설치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짓느냐 마느냐로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건교부의 댐건설 사업도 사업목적에 ‘홍수예방’이 들어 있지만, 환경영향평가를 반드시 거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심한 환경부의 직무유기

동강댐의 경우 당초 수자원공사가 작성한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다고 해서 다시 작성했다. 그래서 동강의 자연생태계가 새롭게 부각되면서 댐건설이 백지화하기도 했다. 댐처럼 수해와 직접 연관이 있는 사업도 환경영향평가를 거치는데, 기상레이더와 같은 시설을 설치하면서 환경평가를 하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청송기상대 사업이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고 추진된 것은 기본적으로 기상청의 탈법과 무지에서 비롯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부가 직무유기와 탁상행정의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있었다면 이같은 사태도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임에도 환경부는 지난 3년 동안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특히 면봉산 일대는 야생동물의 보고로 환경부가 앞장서서 조사하고 관리해야 할 지역이다.

면봉산은 늘씬한 줄기가 하늘로 뻗은 온갖 활엽수림이 산 전체를 휘감아 도는 경북의 빼어난 산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 그 빼어난 산림생태계의 가치를 세상에 온전히 드러내 보이기도 전에 참혹하게 파헤쳐지고 말았다. 그 좋았던 산과 숲을 지켜야 할 정부가 앞장서 파헤치고 있는 현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대안은 없었을까?

당초 기상청은 기상레이더 사업 대상지를 영천의 보현산 정상으로 추진했다. 그곳은 행정구역으로는 영천시 땅이지만, 과학기술부 산하의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운영하는 천문대가 있다. 그래서 산 정상부까지 진입로도 이미 나 있고 천문대와 기상대간에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큰 산림훼손 없이 기상레이더를 신설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면봉산 정상까지 도로를 건설하지 않아도 돼 훼손도 막고 예산도 절감하는 꿩 먹고 알 먹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99년 11월 영천시에서 ‘보현산이 영천시의 명산으로 시민정서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기상레이더를 설치할 수 없다고 기상청에 통보해왔다. 영천시의 불가 방침은 ‘명산과 시민정서’라는 일면 그럴듯한 근거였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제는 군색한 변명이었다.

왜냐하면 영천시는 기상청이 기상레이더를 협의해온 99년 9월 이전부터 보현산 천문대를 관광지화해 관광객은 물론이고 차량까지 보현산 정상으로 밀려들며 들끓게 했다. 그래놓고도 정작 기상레이더와 같은 크게 생색 안 나는 시설에 대해서는 매몰차게 ‘반대’를 한 것이다. 물론 영천시의 입장에서는 생색도 안 나고 돈도 안 되기 때문에 반대는 할 수 있다. 그럴수록 중앙정부인 기상청이 인내를 가지고 설득도 하고 타협점을 찾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어야 했다.

그러나 기상청은 채 한달도 노력하지 않고 맞은편 면봉산으로 대상지를 바꿨다. 해당 지자체인 청송군의 동의를 얻어 사업을 일사천리를 끌고 간 것이다. 영천시가 반대한 사업을 대규모의 산림형질 변경까지 감수하면서 청송군이 허가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송군으로서는 산림이 훼손되더라도 영천시의 보현산 천문대처럼 면봉산 정상을 관광지로 조성해보자는 계산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추정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다. 올 초부터 면봉산 아래쪽에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지방도로가 군에 의해 개설되고 있다.

면봉산의 청송 기상레이더 사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나 몰라라 하면 우리의 산림과 생태계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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