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집집마다 디지털 카메라 한 개씩은 구비하는 시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순간 간편하게 사진을 찍어 컴퓨터나 CD에 저장하거나 인화해 앨범에 간직한다.

내가 태어난 1960년대엔 사진을 찍는 것은 결혼식장이나 환갑잔치에서 친척들끼리 찍는 가족사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우리 네 남매는 그 귀하다는 앨범을 각각 한 권씩 소장하고 있다. 사진처럼 나무에 자개로 무늬를 넣고 수술로 장식한 두툼한 앨범을 어려서부터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낡아서 앨범을 열 때마다 나무 조각이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오래된 앨범. 사진을 정리하던 아내는 내 앨범을 보면 상당히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나 보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집 살림은 다른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복함의 상징처럼 보이는 앨범을 우리 네 남매가 간직하게 된 사연은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는 돌도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셨다. 응석은커녕 힘든 서울 생활을 견디게 할 어머니의 사진 한 장도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는 맥주 한 잔에 얼큰해지실 때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버지를 뵐 때 느껴진다. 그래서 사진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생기신 아버지는 네 남매의 백일, 돌, 부모님의 결혼기념일과 같은 기념일 때만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우릴 곱게 차려입혀 사진관에 들러 사진을 찍어주셨다.

이제는 앨범을 넘길 때마다 사진들이 떨어져 다른 앨범에 옮겨야 하나 고민도 해보지만 아버지의 사랑 가득한 사진을 담을 만한 앨범은 낡은 이 앨범뿐인 것 같아 그대로 간직하려 한다. 앨범 속에는 솜씨 좋으셨던 어머니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고운 옷을 입고 플래시가 터질 때 나는 “펑” 소리에 놀란 네 남매의 얼굴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