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3년05월14일 제459호 

어느 교장선생님을 기억하며

457호 표지이야기, 그 뒤

1987년 6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민주화 열기가 연일 시위와 집회를 통해 분출되던 때였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같은 캠퍼스에 대학이 있어 그 영향권 안에 들어 있었다. 때때로 하굣길에 돌맹이에 맞아 다치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최루탄 가스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피부병에 걸린 애들도 있었다.

6월 초순 어느 날이었다. 대입 모의고사를 치르느라 쥐죽은 듯 고요한 교정에 갑자기 한떼의 대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대학 교내에서 집회를 마친 ‘형’들이 거리로 나가려다 전경들에게 막히자, 우리 학교 교문쪽으로 몰려든 것이다. 곧 시위대와 전경들 사이에 투석전이 벌어졌고, 요란한 굉음과 함께 최루탄 수백발이 운동장에 쏟아졌다. 시험은 중단됐다. 우리들은 창가로 달려가 투석전을 구경했다. 그때 한 친구가 소리쳤다. “야, 저기 좀 봐!”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점잖게 양복을 차려입은 ‘노신사’ 한분이 서 계셨다. 그는 시위대와 전경들 사이에 서서 전경들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두 팔을 들어 X자를 그리는가 하면 학교 건물을 가리키며 공부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하지만 그분이 애쓴 보람도 없이 또다시 최루탄이 터졌고 시위대쪽에서는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노신사는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아슬아슬하게 화염병과 돌과 최루탄을 피했다. 본관 건물로 돌아온 그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채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우리의 교장선생님이셨다.

그분은 10여년 뒤 내 결혼식을 주례해주셨다. “옳은 것을 위해 살라”는 그분의 말씀을 쉽게 잊지 못하는 것은 그분이 평소 보여주신 모습 때문일 것이다. 교장선생님은 아직까지 이렇게 존경과 애정의 대상으로 남아 계시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나오는 잘못된 권위는 우리 교육을 황폐화시킨 공범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기사가 나간 뒤 많은 분들이 의견을 보내주셨다. 질책과 격려가 뒤섞였지만,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의 교장선생님들이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장선생님, 힘내세요!

이춘재 기자cjlee@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