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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독자와 함께 등록 2003.03.05(수) 제449호

[독자와 함께] 왜 ‘아내폭력’이었나

447호 표지이야기, 그 뒤

표지이야기 ‘방망이는 말한다- 때리는 남자들 육성고백’을 유심히 읽은 독자들은 눈치챘겠지만, <한겨레21>은 ‘가정폭력’이라는 말 대신 ‘아내폭력’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남편이 아내를 때린 것을 우리 사회는 줄곧 가정폭력이라고 불러왔다. 법의 정신과 명칭도 이를 가정에 대한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왜 그럴까

그래야 더 큰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근절의지가 설득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내라는 지위는 독립적 인격체기 이전에 가정을 지키고 유지하는 종속적 인격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정은 유지되고 보호돼야 한다. 세 가지는 마치 삼각대처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아내폭력을 떠받치고 있다. 세 가지 고리 가운데 하나만 끊어도 아내폭력의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가정이라는 추상적 대상이 아니라, 한 여성이라는 구체적 사람을 향한 폭력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아내폭력’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재성 기자와 함께 한 취재과정은 기획부터 취재원 선택, 용어사용에 이르기까지 크고작은 토론회를 방불케 했다. 우리는 논쟁하고, 설득하고, 타협하고, 망설이고, 고민하고, 배려했다. ‘산전수전공중전’ 끝에 기사가 마무리됐다.

기획단계부터 “커밍아웃할 남자가 있을까”라는 주변의 우려를 홀로 용감하게 불식시킨 이재성 기자는 역시 홀로 용감하게 뒷감당을 해야 했다. 그는 취재기간 내내 전국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나는 <한겨레21> 기자들을 포함해 만만한 주변 남자들을 닦달하며 취재원을 찾아헤맸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단 한명의 남편도 커밍아웃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때리는 남편들의 육성고백으로 방향을 틀었다. 육성고백이라면 가해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담아내야 하는데, 깊이 있는 속내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남편들은 “때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조차 힘들어했다. 일단 인정한 뒤에는 할말을 다했다는 표정을 짓거나, “자꾸 얘기하면 비참해진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 과정을 털어놓는 것으로 ‘표지이야기 그 뒤’ 이야기를 대신한다.

*하지만 독자들께서는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길. “여자인 당신이 뭘 알아”라거나 “여자라서 편협하다”는 말을 잊을 만하면 익명의 독자들로부터 듣는 ‘여기자’의 기사를 읽느라 그동안 힘드셨죠 앞으로 ‘남기자’가 쓴 여성기사를 읽으실 기회가 많아질 겁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38000/2003/03/0210380002003030504490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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