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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독자와 함께 등록 2003.02.12(수) 제446호

[독자와 함께] 나쁜 여자, 행복한 여자

[444호 특집, 그뒤]

“넌 정말 착하구나.” 그동안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걸 칭찬으로 알고 살았다. 가끔씩 칭찬을 듣기 위해 내가 맺고 있는 관계의 ‘판’을 깨지 않으려 애쓰기도 했다. ‘나 혼자 불편한 게 낫지’라면서. 그런데 어느 순간 ‘착함’은 굴레가 됐다. 단지 나 혼자 손해보는 걸 떠나서, 스스로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관계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웃는 얼굴로 이어보려고 한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 누더기로 변해버렸다. 난 정말 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단지 ‘노’라고 말 못했을 뿐.

취재를 하면서 만난 ‘나쁜 여자들’은 이런 내게 신선한 깨달음을 줬다. 그들이 왜 ‘나쁨’을 선택했는지, ‘나쁨’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들으면서 난 이마를 탁 쳤다. ‘난 그동안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우리 사회는 ‘착한 여자’를 집단적으로 조장하고 강요해왔으며, 나 또한 그 안에서 별 문제없이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 ‘착함’을 선택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나쁜 여자 전성시대>는 스스로를 계몽시킨 기사인 셈이었다.

<나쁜 여자 전성시대> 이후 쏟아진 뜨거운 반응은 대부분 이와 비슷했다. “기사를 읽고 잠이 안 왔다. 그동안 잘못 산 것 같다.” “이제부턴 나쁜 여자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독자들은 공감을 넘어 전향의 의지까지 내비쳤다. 우리 부모님이야 고이 기른 딸애가 ‘G·SPOT’처럼 음란한 술집에 드나들고, 마스터베이션 잘하는 법이나 배워 나쁜 물이 흠뻑 들까 걱정했지만 말이다.

물론 이 기사는 ‘나쁜 여자’들의 성생활과 가족관계에 치중하다 보니 일터에서 ‘나쁜 여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한계가 있다. 승진 같은 사회적 성취에 대해선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조직 내 처세술은 어떤지, 동료·선후배 여성들과 맺는 연대의 구체적인 양상은 어떠한지 등 중요 핵심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어떤 독자는 ‘불쌍한 남자’도 꼭 다뤄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쁜 여자’만큼 ‘불쌍한 남자’도 대세를 이루려면 아무래도 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남자들도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눈치보지 말고 이기심을 발휘해 행복해질 방법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나쁜 여자’든 ‘착한 여자’든 목표는 모두 ‘행복한 사람’에 있는 것이므로.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38000/2003/02/0210380002003021204460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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